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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재 Oct 31. 2020

dissolve

그러니까, 그런 느낌이 중요한 거지. 상대방의 첫인상 같은 것들, 

복잡해지는 생각을 잠재우고자 TV를 켰다. 방송에서는 거리의 고양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이 나오고 있다. 끝나갈 즘 누군가를 인터뷰한 영상이 마음속 깊숙이 남는다.

늦은 밤 골목길 한편에서 고양이 사료를 들고 있던 사람에게 "길 고양이들을 돌보시는 이유가 뭔가요?"라는 질문에 "'이유'요?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제 마음이 그럴 뿐인걸요. 원하시는 답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쑥스러운 듯 웃는 인상의 누군가는 이내 자신이 할 일을 끝마친 듯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나간다. 카메라는 텅 빈 골목길의 모습을 오랫동안 비춰낸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자리에 앉아 옆자리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분위기가 어수선해?"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메신저로 보내겠다는 눈짓을 보낸다. "우리 회사에서 상호 존중을 위해 직급을 없애고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잘 알고 있을 테고, 얼마 전 내부에서 반발이 있었나 봐. 호칭을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고 위계질서가 무너진다나,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돌리고 싶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 와서 마음대로 내일부터는 다시 직함으로 불러야 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직원 모두의 투표에 맡기기로 결정을 한 것 같아. 나도 일찍 출근한 덕분에 알게 된 건데 자세한 건 전체 메일로 공지를 할 건가 봐." 

동료의 글을 보고 별게 다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오후 업무 시작을 알리자 사내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문구가 보인다. 

대충 내용은 동료가 알려준 대로였다. 금일 퇴근 전까지 전자투표를 통해 현상유지를 할지. 아니면 이전처럼 직급으로 호칭을 변경할지. 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잠시 동안 물끄러미 컴퓨터의 화면을 바라봤다. 이내 로버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들 메일 확인했지? 퇴근 전까지 빠짐없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합시다." 아마도 로버트는 다시 직급으로 체제를 변경하기를 원할 것이다. 초기에만 해도 부장이란 말 대신 로버트라는 호칭을 아주 맘에 들어했다. 하지만 두 달쯤 지나자 싫증이 난 것인지. 아니면 부장님이라 불러주던 것이 그리워서인지 못마땅해하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을 한번 살펴본 뒤 전자투표를 진행했다. 당연히 유지하는 쪽에 투표를 했다. 메신저를 통해 동료에게 "투표했어?" 동료는 "당연하지." 우리는 확실하지 않으나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내부 반발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말이다. 

며칠 뒤 투표 결과가 사내 게시판에 부착됐다. 6:4 정도의 비율로 유지하자는 입장 쪽이 더 크게 나왔기 때문에 현상 유지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발표이다. 

사무실로 들어가 인사를 하자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맞아주었지만 로버트만큼은 왠지 모르게 침울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 역시 왠지 모르게, 아니 확실하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내일부터는 일주일간의 휴가를 받게 되었다. 짧게나마 외국에 다녀올까 했지만 결국 국내 여행지로 선택을 했다. 친구는 나에게 "웬일이야. 혼자서 국내 여행은 안 한다고 하더니" "그냥, 멀리 갈필요 있나." 친구는 내심 서운한 듯한 말투로 "내가 제주도에 함께 가자고 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혼자서 제주도에 간다고 하는 거야. 거기서 누구 만나기로 한 거 아니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네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되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머리도 비울 겸 잘 다녀와" 퇴근을 하고 곧장 집으로 와 여행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라고 할 것도 없지만, 

저녁을 먹으며 채널을 돌리던 중 뉴스 채널에서는 연애 정보회사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리모컨을 가만히 내려둔 채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열일곱 시간의 경찰 조사를 끝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수많은 취재진들 사이로 고개를 숙인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취재진들의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다. "회원권 환불을 위한 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진행하실 생각이신가요?" 이내 리모컨을 잡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일순간 화면이 어두워지고 고요함이 거실 안에 채워진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민지 씨와 보낸 가상현실 속의 기억이 삭제되어야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어버린 후로 모든 업무가 정지되었고 덕분에 기억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아직도 가끔씩 일 년 전의 날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꿈을 꾼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가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민지 씨가 내게 해 준 제주도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향하는 곳이 민지 씨가 말하던 마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당시 마을 이름을 말한 것도 아니고 그곳의 지명 등을 대략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제주도를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서는 며칠 동안 검색을 하기 바빴다. 

다행히도 향하는 첫날부터 날씨가 좋았다. 공항으로 향해가는 순간부터 여행의 설렘은 시작된다. 비행기는 이윽고 구름 사이를 가르며 비행을 시작한다. 얼마 가지 않아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린다. 창밖 너머로 제주도의 모습이 아주 작게 비쳐 보인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사람들은 분주함을 더해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창가 쪽에 앉았기 때문에 서둘러 일어날 필요는 없다. 통로를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아가기 시작하고 끝이 보여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야자수 나무가 나를 반긴다. 

정말 제주도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차를 빌리고 주소지에 적힌 시골마을로 이동을 했다. 계획은 없다. 쉬면서 생각을 비워내고 오는 것이 전부다. 마을의 입구에 주차를 하고 캐리어를 끌며 나아갔다. 한적한 시골 동네의 모습이다. 걸어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자 작은 해변과 먼발치에서 숲이 보인다. 맞게 온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집을 빌려주는 이장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젊은 남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서울에서 오기로 한 김용재라고 합니다."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 네 안녕하세요.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곳은 쉬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에는 정말 좋은 곳이에요. 오래전부터 비어있는 집들을 개조해 여행객분들에게 제공을 했는데 홍보를 하지 않다 보니 아시는 분들만 찾아오는 그런 곳이랍니다." 얼굴에는 자부심이 드러난다. "네 정말 좋은 곳 같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젊은 분이시라 조금은 놀랐어요." 웃으며 말하는 나의 말에 "아 원래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이에요. 몇 년 전 제주도로 내려온 후부터는 제가 진행을 하고 있어요."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며 지나가는 사이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새 건문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자 "요즘은 기존에 있던 집들을 무너트리고 이렇게 새 건물 들을 짓고 있어요. 이제는 마을을 더개발해 홍보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거든요. 머무르게 될 집은 오래되었지만 이 마을에서 손에 꼽는 아름다운 집이랍니다." 말대로였다. 집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관리가 잘된 것처럼 보인다. 집 뒤편에는 귤나무가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 짐을 풀고 창문을 열자 시야에는 바다와 숲의 모습이 그대로 담긴다. 키를 받은 뒤, 간단한 게 인사를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짐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어쩌다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것도 혼자서 말이지.' 그날 저녁에는 남자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대문 앞에서 벨을 누르자 철제 대문 특유의 소리를 울리며 문이 열린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의 아버지는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우리 동네에 잘 왔어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묵고 있는 집과 마찬가지로 오래된 집이지만 정돈이 잘되어있는 그런 집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마을 곳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뒤 만들어진 동네 지도를 받았다.  작게 그려진 지도에는 숲으로 가는 길. 바다로 가는 길. 조금만 걸어 나가면 나오는 조그마한 카페 등이 그려져 있다. "카페가 들어온지는 얼마 안 됐어. 조그만 동네에 차리면 장사가 될까 했는데 어떻게 알고 손님들이 찾아들 오더라고. 요즘 세상은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이 틀린 말은 아닌가 보네"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시대가 그만큼 발전한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여행도 '가상현실'로 대체된다는 기사를 보고서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모두들 나의 말에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말이 되나, 여행을 그런 일들로 대신하면 우리처럼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나 있으려나, 세상이 점점 좋아지는 건 찬성인데. 그런 일들은 반대하고 싶어" 옆에서 나의 이야기를 듣던 남성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도 어린 시절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버지가 이따금 이야기를 해주셔서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꽤 오래전에 가족분들이 이 마을에 여행을 온 적이 있어요. 아까 집으로 걸어오던 길에 새로 지어진 건물 보셨죠? 그 건물 자리에는 정말 예쁜 집이 있었어요. 집을 허물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아무튼 그 집에 머무르던 꼬마 아이 이야기인데요. 혼자서 집을 나선 뒤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이 한참을 찾아다닌 적이 있어요." 남성의 아버지는 오래 전이 일들이 떠올랐는지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요즘 같아선 한 시간도 안돼서 찾았겠지만 그래.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직도 그 친구는 일 년에 한 번씩은 이곳에 찾아오고 있어. 이름이 뭐라고 했는데, 나이가 들다 보니 자꾸만 잊어먹게 되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남성의 어머니는 "민지, 민지잖아요. 그것도 기억 못 해서 어떡해요. 얼마 전에 왔을 때도 선물을 주고 갔는데 민지가 들으면 서운해하겠어요" '민지'라는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몸의 회로가 정지된듯한 기분이었다. "방금 민지라고 하신 것 같은데, 혹시 성이 김 씨인가요?" 나의 말을 듣고는 "어떻게 알았어요? 김 씨인지, 모두들 나를 쳐다본다. 잠시 동안 머뭇거리다 "아 흔한 성씨잖아요. 그래서 그냥.."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오자 꽤 늦은 시간이 흘러 있다. 서울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별들이 밤하늘에 수놓은 듯 반짝이고 있다. 그나저나 맞게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민지 씨가 왔다 갔다니, 어쩌면 마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한다. 정작 만났더라면 아무 말도 못 했을 게 뻔하지만 말이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골목길을 걸어 나아가 집의 입구에 다다르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는 살금살금 다가가 "여기서 뭐하니?"라는 말을 했다. 고양이가 놀라 도망칠 줄 알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고양이는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깜짝 놀라지 않았니?" 신기하네. 도망갈 법도 한데,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예쁘게 생겼다. "네 이름은 뭐니?" 고양이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이내 짧은 울음소리를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나간다. 그 모습은 마치 '포도'를 처음 만나던 날을 연상 캐 했다. 떠나가버린 고양이의 빈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집으로 들어온 뒤에도 바닥에 누워 한참이나 같은 생각들을 했다. 민지 씨가 얼마 전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 그리고 포도는 잘 지내고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한데 뒤섞여 머릿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다. 

일주일 동안 마을에 머무르며 특별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바다 앞에 앉아 쉬거나 이따금 숲에 들어가 산책을 했다. 그마저도 어려울 땐 마을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오자 남성은 나를 찾아와 인사를 하러 왔다는 말을 한다. "어때요? 괜찮은 일주일이었나요?" 나는 "물론이죠. 시간 내서 꼭 다시 올게요. 잘 지내요"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마을 입구에 세워둔 자동차가 보인다. 짐을 넣고 잠시 동안 바닷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다시 차로 돌아온 시간은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차를 타려고 하자 먼발치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백발의 노인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나 역시 그 모습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를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던 노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는다. 

여행을 다녀온 날 저녁 친구들을 만나 공항 근처 시장에서 샀던 초콜릿을 건넸다. 다들 초콜릿을 먹지 않으니 여자 친구들에게 주겠다는 말을 한다. "고마워. 여자 친구가 좋아하겠다. 그런데 너도 이제 정말 연애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우리 중에서 이제 너만 남았어. 우리 다 같이 여행 가기로 했잖아" 나는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늦은 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에 머리가 아픈 건지, 술을 먹은 덕분인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민지 씨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설령 내가 만났던 상대방의 모습이 진짜 민지 씨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이제 그런 것쯤은 중요하지 않을 뿐이다. 

 편의점에 들러 숙취음료를 사기로 했다. 점원은 발그레해진 나의 볼을 보더니 "즐거운 일이 있었나 보네요" 나는 웃는 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계산을 끝마치고 나오며 "주말 잘 보내요."라는 말을 했다. 

단지를 걸어가는 사이 비닐봉지엔 나도 모르게 담게 된 고양이 사료가 들어 있다. 

자리에 도착하자 익숙한 행동을 취했다. 캔을 따고 적당한 곳에 둔다. 그리고 '포도'가 오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지만 여전히 모습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마음속으로 '잘 지내고 있지. 그럴 거라고 믿어'라는 말을 더할 뿐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간다.

걷는 걸음 사이사이에는 여러 감정이 묻어난다.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미련이자 다른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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