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습상담도 하냐고?

by 곰고미


‘교사는 좋은데, 교직은 나랑 정말 안 맞는다’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대학원에 입학했다.
처음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고, 유익했고,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것 같아 교직을 그만두길 잘했다 싶었다.


그런데 상담을 공부하며 ‘나’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내 안에서 자주 맴돌던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재미있게 공부하고, 학교생활을 즐기며,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였다.

박사과정 중 집단상담 시간에 ‘학교를 그만둔 것, 교직을 그만둔 것이 후회된다’는 마음을 자각하고 펑펑 울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표현보다 ‘뛰쳐나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이셨던 스님이 잠깐 시간을 내어 나와 대화를 나눠주셨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스님의 말씀만 마음에 남아 있다.


“부처님도 출가하실 땐 집을 뛰쳐나오셨지만,
다시 돌아가실 땐 붓다로 돌아가셨다.”


교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지만,
‘나’를 알고 다시 돌아간다면 전과는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돌아갈지 아닐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상담자가 되겠다고 교육분석을 받으며 — 다시 교직으로 돌아가기 위한 임용 공부를 시작했다.
번아웃으로 온갖 증상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불면증 때문에 앉아 있을 수도 없어, 누워서 태블릿을 넘기며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한 영상에서, 대학원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관세음보살님의 전생 이야기를 들었다.
‘이랬다카더라’는 설화 정도로 가볍게 듣고있었다.
어떤 영상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아주 먼 옛날, 한 부유한 상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장사를 떠나기 전, 아이들을 돌봐줄 새어머니를 맞이했다.
처음엔 아이들을 잘 대해주던 새어머니였지만,
남편의 재산을 자신의 친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욕심으로 악한 마음을 품었다.


음. 현대의 막장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군.


아버지가 몇 달간 장사로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새어머니는 두 아들을 무인도로 데려가 아이들이 노는 사이 홀로 돌아와 버렸다.

그렇게 남겨진 형제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어가며,

다음과 같은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 세상에 이렇게 고통받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음 생에는 세상의 모든 고통받는 존재를 구원하는 존재로 태어나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우왁 눈물이 터져 나와 한없이 울었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히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 것,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런 마음을 낸다는 것이 오죽 특별하면 부처님이고, 그래서 설화가 되었을까.


하지만 그 이야기가 내 안에 오래 남아 되새김질되는 이유는,
내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방향’을 잊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았기에 그에게 복수하거나, 세상을 원망하며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고통받았기에 — 나처럼 고통받는 이가 다시는 없기를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다.


‘사실은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해’라고 말하면
‘그럼 네가 다 감당해 봐’라는 압력이 돌아올까 봐,
소리 내어 말한 적은 없다.


살다 보면,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관세음보살님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라 그 복수심을 품어 안는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내 마음이 향하는 자리를 조금씩 알게 된다.


그래서 ‘한풀이 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듯,
교실과 상담실은 내가 “당신은 내가 겪었던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를 실천하는 장이다.



그래서 이게 학습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


미련하게 나를 학대하며 공부했던 사람이, 지난 시절을 후회하며
나처럼 고통받는 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내 삶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
어떤 시점도 계속 재평가하게 된다.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선형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기에
현재의 결과가 과거의 원인 때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복잡한 걸 다 떠나서,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


진짜,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야겠느냐고.
정말, 이 아이들에게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서 이러고 있는거냐고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쓸려, 우리가 했던 대로 그냥 답습하고 있는 것일뿐이라면

공부라는 게 도대체 뭔지, 어따 써먹을라고 이것들을 배우고 있는건지,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건지

배우는 이 아이들은 이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건지
아이들이 이 많은 것들을 소화시키고 있긴 한건지

그걸 소화해내려 애쓰는 이 아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관심있게 들여다본적은 있는지

이야기 나누다 보면

우리가, 어디로 또 흘러갈지 궁금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