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빵집을 웨이팅 했다.
사진에 사람이 늘어선 줄 끝 이층 집이 어글리 베이커리이고, 귀여운 호빵이 그려져 있는 집이 후와후와다. 오늘, 동생은 그 두 빵집을 모두 들러 며칠 동안 다 먹지도 못할 빵을 샀다.
동생은 빵순이다. 며칠 씻지도 않고 집에 누워있다가도 휘낭시에 신의 계시를 받으면 벌떡 일어나 모자를 눌러쓰고 무화과크림치즈, 말차마카다미아, 캐러멜브륄레, 초코솔티 휘낭시에를 사 온다. 그에 비하면 나는 심드렁하다고 할 수 있다. 있으면 맛있게 먹겠지만, 없으면 말고 정도. 그래서 오늘 내가 병원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동생이 잠옷차림으로 현관에 호디닥 쫓아 나와 망원동 빵집에 웨이팅을 걸었다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춤을 추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놀라는 대신 그 애의 박자에 맞추어 페어 안무로 장단을 맞췄다.
동생은 망원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오늘의 빵지순례 브리핑을 했다. 캐치테이블로 원격 예약한 빵집이 후와후와인데, 아직도 앞에 64팀이 대기 중이야. 그러니 가는 길에 어글리 베이커리를 들렀다가 후와후와에 가면 시간이 얼추 맞을 거야. 어글리 베이커리는 후와후와 바로 옆에 있는데, 아마 웨이팅이 후와후와 정도는 아닐 듯.
집에서 망원동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이 조금 넘었다. 나는 오른쪽 무릎에 물이 차서 요즘 동네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약을 먹으면 걸을 순 있지만 연골이 회복될 때까지 움직임은 최소화하는 게 좋았다. 나는 남은 입장시간까지 후와후와 앞에 앉아있기로 하고, 동생은 나를 두고 어글리 베이커리로 달려가 줄을 섰다. 빵집 앞에 앉아 동생이 또 다른 빵을 사 오길 기다리는 모양새가 웃겼다. 내가 앉아있는 곳에서도 어글리베이커리의 웨이팅 줄이 보였다. 사람들이 늘어선 것을 보니 그 집 인기도 만만찮아 보였다.
어글리 베이커리와 후와후와는 카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덕분에 평일 낮 시간인데도 빵을 사려고 온 사람들이 망원동 좁은 골목에 넘쳐났다. 나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는데 수요일 2시에 웨이팅 대기 번호가 200팀이 넘어간다니. 대체 뭐가 사람들을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찾아오게 하는 걸까? 사람들은 참 놀랍도록 열정적이야...
동생이 돌아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해 보며 나는 며칠 전 다운로드한 모바일 게임을 열었다. 막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려는 데, 뭔가가 내 코를 강력히 자극했다. 고개를 들고 둘러보니, 빵집 문이 열고 닫힐 때마다 빠져나오는 버터냄새였다. 마지막으로 후각 세포를 이렇게 강렬히 감각한 때가 언제더라.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살이 찔 것 같은 버터 냄새였다. 곧 빵집 앞을 둘러싼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 묵직한 빵 봉지를 들고 인증샷을 찍는 사람, 예상 대기 시간에 질겁하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 말소리도 들렸다. "다른 건 몰리도, 피스타치오딸기샌드는 꼭 사야 돼.", "저번에 나 성심당 가서 빵 산다고 대전에서 개고생 했잖아.", "뭐 살지 다 정했어?", "정했는데 들어가면 또 눈 돌아갈 것 같아."
우울은 심해질 때마다 모든 감각이 날 서게 한다. 나는 오감 중에서 소리, 특히 사람들이 내는 소리의 불가측성을 견디기 힘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명상 음악을 틀지 않으면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는데, 오늘의 나는 망원동 핫플 빵집 앞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빵 이야기를 엿듣고 있구나. 웃음이 났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나 보지.
햇볕이 따스했지만 바람은 제법 냉랭한 3월이었다. 빵집에서는 사람들이 나오고 들어갈 때마다 진한 버터 냄새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빵집 앞에서 두런두런 빵 이야기를 하고, 빵가게의 지붕 끝에 달린 명태 모양 풍경은 봄바람에 땡그랑 소리를 냈다. 저기서 동생이 빵 봉지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202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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