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은 어떻게 망하고 어떻게 살아나는가
트레바리 네 번의 정규 모임 중 세 번째 모임은 단연 특별하다.(나는 트레바리에서 책 읽고 에세이 쓰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데면했던 얼굴들은 적당히 눈에 익고, 글을 공유한 데서 오는 내밀함이 모임방 공기에 녹아든다. 그간 쌓인 서사에서 오는 농을 주고받고, 이번 글과 저번 글을 대어 보는 몇 마디가 얹힌다. 세 번의 글쓰기 동안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거나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낸 사람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편안해졌지만 아직 궁금한 것이 한참이고, 다음 만남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는 단짠단짠의 밸런스. 네 번의 정규 모임 중 유독 세 번째 모임에 멤버 케미스트리가 폭발하는 이유다.
트레바리에서는 세 번째 모임이 끝나면 리더인 파트너가 사흘 안에 다음 시즌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금껏 시즌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세 번째 모임의 힘이 컸다. 그러니까, 나는 매 시즌 클럽을 그만둘 생각을 했고 항상 세 번째 모임에 설득당했다는 이야기다.
첫 시즌, 첫 모임에서 입을 떼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를 바라보던 열댓 쌍의 눈들. 돈까지 내어가며 글을 쓰겠다고 주말 오후 강남 복판에 앉아 있는 얼굴들을 마주하는 데에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랐다. 게다가 나는 쓸데없이 사람들의 표정을 잘 알아챘다. 누가 이야기를 듣고 듣지 않는지, 즐겁고 즐겁지 않은지 보였다. 나는 매주 넷째 주 토요일마다 마주한 얼굴들을 몰래 훑으며 모두가 모임에 만족하기를 바랐다.
클럽을 런칭하고 꽤 오랫동안 멤버들에게 달마다 개인적인 에세이 독려 카톡을 보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마감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고,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로 흘러가는 사고 과정을 알기에 들였던 품이었다. 멤버들이 공들여 쓴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했는데, 아마 내가 생각한 이상향 클럽 -멤버 모두가 글에 진심이면서도 각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충분해 모임에서 지적 도파민이 흐르는- 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다분했던 탓이다. 의도가 어떻든 정기적인 에세이 안부는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업무 메신저처럼 거리를 두던 멤버가 어느새 글이 잘 풀리지 않는다며 먼저 자조적인 메시지를 보내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파트너는 무심히 버틸 수 있는 동시에 끝없이 쏟아 넣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나는 무심할 방법을 몰라 쏟아부었다. 내키지 않는 번개도 참석하고, 호응이 없는 카톡방에 올릴 공지를 한참 매만졌다. 읽거나 추천받는 모든 책은 새 시즌의 책 후보가 되었고, 모임 책을 재독하고 인터뷰 기사와 뉴스를 뒤적이며 발제를 적었다. 글쓰기를 독려하면서 좋은 합평을 끌어낼 방법에도 관심이 많았다. 글을 쓰는 목적과 방향이 가지각색인 사람들 사이 서로 다른 기대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둥근 의견이 필요한 사람과 날카로운 합평을 듣고 싶은 사람 사이에서 조율을 거듭하며 합평 가이드를 만들었다. 모임은 항상 힘들었고, 미치게 재밌었다.
번아웃은 예정된 수순일지도 몰랐다. 올해 초여름, 나는 전에 없이 지쳐있었다. 이 클럽이 번아웃에 기여한 바가 얼마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마저마한 개인적 고난이 재수 없게 겹친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이놈의 클럽이 버거운 무언가가 되어버린 건 확실했다. 지난 시즌, 유난히 힘들었던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짐했다. 이제 더 이상의 다음은 없다. 글을 쓰는 것도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버거웠다. 나도 내킬 때만 말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하고만 만나고, 글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클럽이 연장되지 않을 거란 사실은 딱히 숨기지 않았다. 무언가를 숨기기에 나의 내면은 비좁았고, 지친 기색은 가릴 수 없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지없이 돌아온 세 번째 모임은 역시 좋았지만 나의 결심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나는 다짐을 지근지근 씹으며 뒤풀이 자리로 향했다. 강남역 근처 어두컴컴한 민속주점의 테이블에는 다음 시즌이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전해 들은 멤버들이 자리를 잡았다. 끈적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서 같은 말을 했다. 발제든 번개든 다 내려놓는 건 어떻겠냐고, 그것도 어렵다면 어떤 선택을 하던 존중하겠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님 마음이라고. 내 상태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민망해졌다. 그래도 기진한 얼굴은 최대한 숨기는 것이 맞았을까. 마음이 편한 대로 하라던 그들의 낯에는 어쩐지 아쉬움이 서려 보였다.
주에 한 번씩 만나는 선생님은 내가 책임을 과하게 짊어지고 산다고 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배려를 알 수 없었고, 그가 떠난 자리에 내 거죽만 쓸쓸히 남겨진다 해도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책임감에 짓눌려 제 욕구를 외면했던 기억은 줄줄이 달려 나왔다.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패턴은 언제나 같았다.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오답 노트를 만들었다.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해결하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선지들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책임을 나눌 수 있었다. 타인을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후회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방법을 바꿔야 했다. 같은 방식으로는 클럽도, 나도 지속할 수 없었다.
모임 다음 날, 트레바리에서는 클럽의 연장 의사를 확인하는 문자를 발송했다. 주어진 사흘 동안 내내 떠올렸던 건 멤버들의 얼굴이었다. 클럽이 없어지면 자연히 보기 어려워질 그 얼굴들. 남아있는 미련이 없는가도 되짚어 보았다. 나는 그 사람들과 하고 싶은 말이 남았나. 나는 여전히 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싶은가. 나는 아직 그 사람들이 궁금한가. 나는 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자신이 있는가. 마지막 날, 나는 다음 시즌을 하겠다고 답했다. 어쩌면 뒤풀이에서 본 멤버들의 아쉬운 낯빛은 내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새 시즌이 시작되기 전, 한 달의 방학을 가지며 그동안 멤버들에게 부담이 될까 혼자 짊어졌던 일들을 하나씩 아웃소싱했다. 책 추천부터 발제, 북토크, 번개까지. 번추위는 지원받되 지원자가 없다면 번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클럽은 퀴즈 클럽으로 변경해 본인의 몫을 성실하게 해내겠다는 확언을 사전에 받았다. 뻔뻔해지려 애썼지만 도움을 청하고 책임을 나누는 행위는 여전히 어색했다. 그때마다 나는 클럽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을 되새겼다. 이건 일종의 연습이기도 했다.
긴 여름이 지나고 네 번째 시즌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클럽은 순항 중이다. 아니, 사실은 유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차근히 글을 써 온 멤버들의 실력은 이제 수준급이고, 에세이에는 댓글을 빙자한 또 다른 에세이가 달린다. 자발적으로 출범한 번추위는 포스터를 만들어가며 번개를 홍보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높은 참여율과 열광적인 리액션으로 보답한다. 씀사람은 공중파 다큐멘터리에 들어갈 트레바리의 대표 클럽으로 촬영과 인터뷰를 제안받았고, 얼마 전 참여한 다른 모임에서는 영화님 클럽이 그렇게 재미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꼭 한 번 놀러 가고 싶다는 인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처음으로 편했다.
“파트너는 내가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분들 보다, 모임에서 얻어가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오래 하세요.”
막 파트너가 되어 첫 시즌을 시작하던 때, 트레바리에서 주최한 파트너 모임에 참여해 들은 말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나는 뭔가를 만들겠다고 그렇게 힘이 들었나 싶다. 이제는 클럽에서 배운다. 책임을 내려놓는 방법과,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 목젖을 드러내고 크게 웃는 방법과,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매번 열심히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댓글을 달고, 번개를 열고, 단톡방에서 호응해 주는 이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고맙고 애틋하다.
마침, 이번 달은 세 번째 모임이다. 이번 시즌의 고점은 어디까지 올라갈지 궁금하다. (2024.11.21)
* 트레바리 [씀에세이-사람] 클럽 멤버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 에세이는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됩니다.
*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는 블로그, 권모니 글방 에서 떠듭니다.
* 소식은 인스타그램과 스레드, @writer.moni 에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