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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07. 2024

배추김치 대신 갓김치

   배추값이 금값이라는데 김치는 똑 떨어져서 마누라가 임시방편으로 겉절이김치와 갓김치를 배송시켰다. 반 포기가 될동말동한 겉절이김치 2kg이 워낙 고가(3만 원)인지라 김치에서 군내가 나도록 아끼고 아껴 먹지만 깎새 외엔 찾는 이가 별로 없는 갓김치에는 젓가락을 원없이 갖다 댄다손 눈칫밥까지 먹을 건 아니다. 

   그렇다. 김치가 금치로 귀해지면 그 대체제로 갓김치가 유용하다. 배추김치에 비해 씹으면 질기고 갓 특유의 독특한 향 때문에 썩 반기지 않는 그 이유 때문에 갓김치에 목을 매는 깎새는 가족 식탁의 이단아를 자처한다. 그렇다고 해서 갓김치를 먹어 버릇한 세월이 오래된 것도 아니다. 불과 8~9년 전, 당시 몸담았던 곳에서 직원들 식사를 준비하던 식당 이모 덕에 알싸한 갓김치의 세계로 들어섰으니 그분이야말로 깎새의 식도락에 신기원을 열어준 셈이다. 잠시 그때를 회상해 본다. 

   경험은 전무하고 생리에도 안 맞는 사우나찜질방 관리과장 자리에 연연하느라 기 못 펴던 시절이었다. 어디 가서 뭘 해도 어중간한 40대 오갈 데 없는 처지를 불쌍히 여긴 동기 용이가 겨우겨우 마련해준 자리라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용을 썼다. 헌데 자칭 타칭 로얄 패밀리 사주 일족들은 아랫것 부리듯 갑질을 일삼아 골머리를 썩였다. 불의를 보면 분기탱천하려는 기운을 부박한 먹고사니즘으로 삭이려 하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게 일상이 되어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남았다. 그 스트레스란 놈이 어찌나 고약하던지 살이 쪽쪽 빠져 총각 때보다 더 호리호리해지는 다이어트 효과를 누리긴 했다. 밥맛은 없고 사는 재미는 더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던 와중에 죽으라는 법은 없어서 그나마 마음 달랠 수 있었던 게 직원 식당을 맡은 이모가 내어 주던 갓김치였다.

   알싸하면서 사각사각한 식감에 황홀해하는 관리과장을 흐뭇해하면서도 애처롭게 바라보던 이모가 "과장님, 갓김치 먹고 싶음 언제든 말씀만 하이소" 에둘러 건넨 응원은 수천수만 마디 상투적 격려보다 더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톡 쏘는 갓김치처럼. 경북 내륙 어디쯤이 고향이라던 이모가 여수 돌산 갓김치로 대표되는 전라도 김치에 정통하게 된 손맛 내력을 파헤치는 건 당시 무척 흥미로운 관심사였지만 2년을 채 못 버티고 제 발로 회사를 나간 뒤로 요원해진 건 두고두고 아쉽다. 

   갓김치에 얽힌 추억이 은근히 알싸한 까닭일까. 무난할 것만 같던 일상에 느닷없이 거센 감정의 파고가 들이닥쳐 내 마음 나도 모르게 허물어지려 할 때, 흔히 스트레스 때문에 불능 상태에 봉착할 즈음, 정성껏 담궈 내어 놓은 갓김치로 잠시나마 숨 돌릴 수 있게 해준 이모의 마음이 다른 어떤 것보다 그립다. 

   어쩌면 갓김치가 부쩍 땡기는 게 스트레스란 놈이 다시 활개를 치려는 건지 모른다. 다행히 마누라가 주문한 갓김치를 하얀 쌀밥에 얹어 부지런히 저작하다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이모가 내어 주던 갓김치 손맛이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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