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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12. 2024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불꽃축제가 열린 지난 토요일, 마지막 손님은 4시 반쯤에 찾은 개인택시 운전사. 불꽃이 올라가는 광안대교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광안리해수욕장 주변 지역인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 방면으로 진출할 걸 꺼려 아예 영업을 접었다고 했다. 원활한 축제 진행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광안대교를 막고 부근 도로까지 통제하다 보니 시내 곳곳이 대형 주차장을 방불케 해 까딱 잘못하다간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라서. 고로 불꽃축제가 열리는 날은 광안리해수욕장 반대편인 부산 서부, 북부 쪽이 아니면 운행을 안 하거나 오후를 아예 막살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고 했다. 

   그 손님이 떠난 뒤 평소보다 정확히 1시간 빠른 5시에 점방 불을 끈 깎새. 그 전날인 금요일 아침, 야간근무를 마치고 머리 깎으러 온 단골 경찰아저씨가 집에서 제때 저녁을 먹고 싶으면 행사 당일엔 절대 차를 가지고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행사 지원 차 그쪽으로 파견을 나갈 예정이라는 단골 경찰아저씨 지구대 근무지는 광안리에서 한참 떨어진 자갈치시장 부근이다. 굳이 몰고 나오겠다면 시내 주행은 꿈도 꾸지 말고 대신 해운대 집까지 원만하게 갈 차선책을 강구하래서 구세주에게 애원하듯 깎새가 앓는 소리를 내자 자기라면 거기로 가겠다면서 모범답안이나 다름없는 경로를 제시했다. 그건 부산 외곽 순환도로를 이용해 서쪽 외곽에서 동쪽 외곽으로 아예 빙 둘러가는 길이었다. 네비게이션 아가씨는 줄잡아 1시간 넘게 소요될 거라는 예상시간을 내놨지만 꽉 막힌 시내 도로에서 하염없어 하느니 그게 낫겠다 싶어 과감하게 선택했다. 하지만 그 길은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초행길이었다. 네비게이션 아가씨가 뻔히 일러줘도 딴 길로 새는 상길치인지라 모의주행 화면을 네비게이션에 띄워 몇 번씩 되풀이해서 보는 건 기본이고 헤매는 시간까지 감안해 이른 퇴근도 불사한 것이다.

   점방 불을 끄자마자 단골 손님이 들이닥쳤다. 혀를 끌끌 차며 도대체 이 놈의 점방은 몇 시에 마치는지 종잡을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불꽃축제 때문에 오늘 중으로 해운대 집에 갈 수 있을지 염려스러워 일찍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하는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손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다른 단골한테 전날 해프닝을 말밑천 삼아 너스레 떨었더니 그 손님 정색을 하며 열변을 토했다.

   - 불꽃은 광안대교에서만 쏴야 한다고 법조문에 적혀 있는 건 아니잖아! 해운대, 광안리에서만 좋은 걸 다 해. 그 돈 다 우리가 낸 세금이잖아. 거기만 멋지고 잘 된다고 우리한테 뭐가 돌아오냔 말이야. 백만 명이 운집해서 교통이 마비되고 인파들 통행조차 버겁대잖아. 삼락공원 알아? 거기 무지하게 넓어. 축구장이니 야구장이니 없는 게 없고 주차장도 엄청 넓어. 그런 데 놔두고 왜 광안리에서만 복작대냔 말이야. 또, 꼭 다리 위에서 불꽃을 쏴야겠다면 북항대교, 남항대교 깔린 게 대굔데 광안대교만 고집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야!

   명이 있으면 암도 있기 마련이다. 일대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탓에 택시기사는 운행을 포기하고 경찰은 제가 맡은 지구대를 떠나 지원을 나가야 하며 영업 시간을 당기면서까지 원래 귀갓길 놔두고 기름값, 통행료 들여 외곽 순환 고속도로를 전전하는 수고를 상쇄할 만큼 1시간짜리 불꽃축제가 대단한 행사일까. 부산 동쪽 해수욕장에서 불꽃이 올라갈 때 그 반대편 지역에서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그저 일부 주민이 여기는 생트집으로만 치부하고 말 일일까. 화약 살 돈으로 차라리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사업을 펼친다면 선정善政이라는 생색내기에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아니면 이 꼴 저 꼴 안 보게 아무 것도 안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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