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잃어버린 건 한 순간이었다. 엄마가 살던 집에서 함께 울타리를 넘었을 때 엄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가 울타리를 넘지 못할 거라는 건 예상했던 일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다시 엄마를 찾으러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가 나에게 말하길 혼자 울타리를 넘으려 시도했을 때 다시 눈을 뜨는 곳은 침대 위라고 했었다. 그 말만 믿고 나는 집으로 들어가 엄마가 쓰던 침대방을 찾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소리 높여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화장실 부엌 등 집안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고 현관을 나와 마당과 집 뒤편을 돌았지만 엄마는 없었다. 어느새 비가 그쳐 해가 떴고 비 온 뒤 더 맑게 게인 날씨가 당황스러웠다. 아까만 해도 세상이 떠내려갈 듯 비가 왔는데 잠깐 사이에 날씨가 변해 있었다. 소리도 다시 돌아와 있었다. 비가 그친 뒤의 청명하고 맑은 공기 소리가 귀에 울렸고 그 소리 사이사이를 풀벌레 소리가 메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이러다 짜잔 하고 엄마가 다시 나타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했다. 시간을 5분만 뒤로 돌릴 수 있다면 다시 엄마를 찾을 수 있었다. 긴 시간도 아니었다. 딱 5분만 뒤로 돌릴 수 있다면 모든 걸 되돌려 놓고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었다. 한번 더 집안을 찾아보고 한번 더 마당을 살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창고가 있는 건 아닌지, 지하층이 있는 건 아닌지, 두 번을 돌고 세 번을 돌았다. 어느 곳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어린 날 주머니에서 흘려버린 용돈처럼, 잃어버린 곳이 짐작도 안 되는 집 현관 열쇠처럼, 그렇게 쉽고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나 때문이었다. 그 후로 다시 도로에 눈을 뜨게 된 과정은 잘 기억이 안 났다. 엄마를 열심히 찾고 있었고, 집 울타리를 벗어나 호밀 밭을 뒹굴었다. 길이 없는 호밀밭 사이사이를 손으로 발로 헤쳐가며 엄마를 찾았다. 분명 어딘 가에 있는 데 내가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느 곳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비에 젖어 진흙이 몸 이곳저곳에 묻었고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구르기도 했다. 얼마나 그렇게 그곳을 헤맸을까 유격 훈련을 받는 군인처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됐다. 엄마의 만류에도 무슨 자신감으로 엄마를 기어이 울타리 바깥으로 이끌었는지 나 자신의 판단이 한심했고 그럼에도 엄마가 내 앞에 불현듯 나타났듯 또 알 수 없는 순간에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방금 기회가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다는 절망이 차례로 온몸을 휩쓸었다. 방금까지도 그렇게 호밀 밭을 나뒹굴었는데 어느새 눈을 떠보니 차에 치인 도로 위였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차에 치였던 횡단보도 위였다. 휠체어 탄 노인과 그 옆의 중년 여성 앞에 내가 서 있었고 차에 치일 까 무서워 몸을 움츠렸지만 양 옆으로는 정차한 차들만 있을 뿐 나에게 달려드는 차는 없었다. 노인의 휠체어는 여전히 도로 위 깨진 틈새에 끼어 있었고 일단 정신을 차린 나는 중년 여성을 도와 휠체어 손잡이를 들어 끼인 바퀴를 빼냈다. 반대편 인도까지 같이 휠체어를 밀었고 다행히 그때 빨간 불로 신호가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반복되는 상황도 이제는 없었다. 차에 치이기 전, 그러니까 호밀밭 세계에 들어가 엄마를 만나기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시간이 되감기를 하듯 반복됐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지나가는 버스도 인도를 걷는 사람들도 모두 흐르는 시간 위에 있었다. 중년 여성은 내 앞으로 오더니 두 번이나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들과의 인사치레보다는 현실로 접속했다는 것에 적응이 필요했다. 휠체어 바퀴를 빼는 거야 다급한 상황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인사를 주고받을 여유까지는 없었다. 중년 어른의 공손한 인사에도 대충 인사만 하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때 휠체어의 노인이 “소설책 찾고 있지?”라고 나에게 말했다. 다른 세계에 가 있던 것 같던 흐리멍덩하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다.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자 그는 나를 올려다보며 “책은 이상한 나라의 도서관에 있어. 이상한 나라의 도서관. 거기를 찾아”라고 했다. 그의 말에 놀란 나는 무릎을 굽혀 그와 눈높이를 맞춘 뒤 "할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했지만 그은 다시 초점을 잃어 있었다. 중년 여성에게 “아주머니, 할아버지가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네? 무슨 말이요? 저희 아버지는 말을 못 하세요. 벌써 5년이 넘었어요”
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할아버지 무릎의 담요를 한번 더 정돈해 주고는 할아버지가 추워하시는 것 같다며 빨리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에게 고마웠다고, 한번 더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대로 헤어지면 안 될 것 같아 무릎을 꿇고 노인의 눈을 바라보며 한번 더 "할아버지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노인은 눈에 아무런 초점도 힘도 없었다. 이미 정신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재차 물어보자 중년 여자가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왜 그러세요? 말씀 못 하신다니까요"라고 했다. 더 불쾌한데 내가 도와준 게 있어서 애써 참는 듯한 말투였다. 그녀의 말투가 바뀐 게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나는 고장 난 텔레비전을 살피듯 노인과 눈을 맞추려 이리저리 살피고 방금 뭐라고 한 거냐고 두 번 세 번을 물었다. 노인은 역시나 반응이 없었고 중년 여성은 "도와준 건 고마운데요. 뭐 하시는 거 에요? 지금?"이라고 말하며 휠체어를 돌려 가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잠시 앉아 머리 정리를 하고 싶었다. 조금 춥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곳은 겨울이었다. 엄마가 사고당한 도로 옆 인도에 주저앉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건 지금까지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터질 듯 정리가 안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장에 뭘 해야 할지 어떤 걸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인들이 친절해서 앉아 있는 나에게 괜찮냐고 한마디 씩 묻기도 했다. 나는 내가 괜찮은 건지 괜찮지 않은 건지 세상이 정해 놓은 개념 안에서 지금의 내 상태를 정의하기 어려웠다. 행인 중에서 유독 정의감이 넘치는 분은 나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는지 구급차를 불러주냐고 핸드폰을 꺼내기도 했고 그럴 때면 약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의 호의에는 미안했지만 그런 호의조차 나에겐 귀찮았다. 그렇게 얼마를 앉아 있었을까 결국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추위 때문이었다. 추워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내가 겨우 추위를 견딜 수 없다는 게 하찮았고 비참했다. 아픈 곳도 없는데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어디로 걸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건지 발을 질질 끌면서 걸었다. 결국 생각나는 건 집 밖에 없었다. 호밀밭 세계로 가기 전 집이 사라지긴 했지만 지금은 또 어떨지 알 수 없었다. 자꾸 바뀌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없어지고 있었다. 집이 다시 멀쩡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이 아니면 일단 갈 곳도 없었다. 하지만 집은 없었다. 내가 살던 호수는 원래부터 그곳에 없었던 듯 사라지고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살던 3층 우리 집이 있던 위치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지만 처음 보는 꼬마가 현관문 걸쇠를 걸고 문을 연 뒤 누구냐고 물었다. 그 틈으로 집 안을 살폈지만 우리 집이 아니었다. 내가 문틈으로 집을 살필 때 아이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짜증과 걱정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고 내가 대답을 못하자 이내 그녀는 문을 닫아 버렸다. 철문 현관의 문과 문틀이 짜증 내듯 서로 부딪혔다. 쇠의 진동이 복도에 울렸다.
중간에 많은 일이 있어 믿기진 않았지만 고양이 인간이 있던 성에서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온 건 현실 세계의 기준으로 오늘 아침이었다. 아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다시 그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인간을 만나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를 하고 싶었다. 신아영에게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영월로 가는 차편을 끊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배가 고파 김밥과 라면을 먹었다. 영월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저녁이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주소를 이야기할 수 없어 구글 지도로 88번 국도에서 샛길로 빠지던 곳에 있던 펜션을 찾아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었다. 택시 기사는 검정 줄무늬가 세로로 그어진 흰색 셔츠를 입고 벗어진 머리에 짧은 흰머리만 듬성듬성 나 있었다. 눈가의 주름이 깊고 길게 뻗어 있었는데 주름만으로도 모든 기분을 나타내듯 말을 할 때마다 주름이 꿈틀거렸다. 택시 기사는 그 펜션은 터미널에서도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곳인데 거기서도 30분을 더 들어가야 하면 돌아올 때는 손님을 못 태울 것 같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펜션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기억을 되살려 성으로 올라가던 샛길 쪽으로 택시 기사를 안내했다. 신아영이 갑자기 유턴을 했던 그곳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없었다. 분명 샛길 입구가 있고 '사유지(뱀주의)'라는 녹슨 표지판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길눈이 밝은 편이었고 그래 봤자 이틀 전에 왔던 길이라 헷갈릴 일도 없었다. 펜션에서 이어지는 길은 하나뿐이었기에 길을 잘못 들어설 일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택시 기사에게 조금만 더 이동을 해본 뒤 반대로 찾아가자며 사정과 목적을 설명하고 부탁했다. 택시 기사는 눈가의 주름을 꿈틀 거리며 알겠다고 했다. 조용한 말투였지만 눈가의 주름만 봐서는 흥미를 느낀 듯 보였다. 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지도 몰랐다. 그 샛길에서만 한 시간을 넘게 헤맸지만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찾을 수 없었다. '사유지(뱀주의)'라는 표지판은 어디에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신아영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원도의 겨울밤은 너무 추워 더 이상 헤 맬 수도 없었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낮에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일단 돌아가야 했다. 이곳에서 하차할 수는 없었다. 택시 기사는 나에게 먼저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달라고 이야기했다. 택시 미터기에는 벌써 6만 원이 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터미널로 돌아간다면 10만 원이 넘을 것 같았다. 버스 터미널로 돌아온 나는 역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다른 택시를 잡아 같은 도로에 갔지만 역시나 조로가 살더 성으로 가는 길은 찾을 수 없었다. 신아영에게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같은 찜질방에서 하루 더 묵기로 하고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다가 나는 기절했다. 온탕에서 나온 뒤 세상이 핑 돌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응급실이었다. 앞으로 쓰러져 이마가 깨지고 몇 군데 가슴과 허벅지에 찰과상이 생긴 것 말고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고열과 몸살에 정신이 혼미해 일반 병실로 옮겨져 삼일을 입원했고 보호자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간호사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고아였고 혼자였다. 아무도 내 곁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