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도서관을 가지 않기로 했다. 4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도서관을 다녔으니 쉴 때가 되기도 했다. 물론 흑구(앞으로는 검은 개를 흑구라고 부르겠다)와의 사건이 없었다면 도서관에 갔을 것이다. 애초에 칠곡에 온 것도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변명이라면 그것도 맞다. 흑구가 하는 말들에 대해서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엄마를 구해야 하는 건 맞미나 ‘소설책’을 찾아다니는 건 막막한 일이긴 했다. 지쳐 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유 든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1주일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잠시 멈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1주일이야,라는 목소리도 마음속에 있었지만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스마트 폰으로 숙소를 찾았다. 시내에는 찜질방도 있었지만 오늘 만큼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공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모텔이 있었다. 공원 후문으로 나와 인도를 걸었다. 두 사람이 걷기에도 폭이 좁은 초라한 인도였다. 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허술한 인도였고 보행자를 배려해서 만든 도로가 아니었다. 도로에서 인도로 올라서는 틈 사이로 민들레 꽃이 하나 피어있었다. 씨앗을 머금은 민들레 꽃이 국도의 가장자리에 초라하게 솟아 있었다. 5월의 봄날은 아름다운 데 살아가는 것들은 저마다의 짐을 안고 사는 것 같았다. 허리를 숙여 민들레 꽃을 때어 민들레 씨앗을 입으로 불었다.
10분을 걷자 모텔이 나왔다. 주황색 외벽의 건물이었다. 대로변에 5층 건물로 있었는데 그 옆으로 1층 짜리 편의점도 하나 있었다. 두 건물 앞쪽으로 넓은 공터가 있었고 아스팔트가 깔린 바닥으로 주차라인이 그어져 차량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모텔 주인과 편의점 주인이 같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는 4차선 국도가 하나 있었고 건물 뒤로는 관리 안된 공터가 폐허처럼 펼쳐져 있었다. 모텔 입구에서 카운터 직원에게 카드 열쇠를 받았다. 카운터는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고 유리에는 하얀 바탕에 분홍색 꽃이 그려진 시트지가 발라져 있었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유리 중앙 하단에 반원형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그 틈으로 직원과 나는 카드를 주고받았다. 내 방은 302호였다. 하필 사라진 우리 집도 302호였다. 살다 보면 별거 아닌 우연의 순간을 운명처럼 생각할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더 이상의 의미부여는 스트레스일 뿐이었다. 카드를 들고 3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카드키로 방에 들어갔다. 모텔은 깨끗했다. 킹 사이즈 침대였고 이불에는 하얀 바탕에 회색 겉감이 덧대어 있었다. 겉감 위로 모텔 이름이 금색으로 오바로크 되어 있었다. 침대 맞은편에 검은색 벽면 티브이가 있었고 그 밑으로 티브이 리모컨과 에어컨 리모컨 그리고 콘돔을 비롯한 일회용품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콘돔은 진한 핑크색 케이스에 담겨 있었다. 2020년도에도 저런 색상이 쓰인다는 게 신기했다. 창가에는 재떨이가 올라간 작은 탁상과 의자가 있었다. 가방을 의자에 걸어 놓고 양말을 벗었다. 바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샤워부터 해야 했다. 티브이 아래 있던 일회용 칫솔과 치약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니 개운했다.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벗은 채로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몸의 긴장이 풀렸다.
이상한 하루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내내 이상했지만 오랜만에 더 이상한 하루를 겪었다. 말하는 개를 만났다. 내 가방을 훔쳐간 남자는 뭔가에 홀린 듯 보였다. 흑구는 나에게 250억 원을 입금해 줬다. 돈 생각이 나서 폰을 꺼내 계좌를 확인했다. ’ 250,00,000,000’ 돈은 그대로였다. 실제로 나에게 250억 원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엄마를 이상한 나라에서 만났듯, 우리 집이 눈앞에서 사라졌듯,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내 계좌에 250억 원이라는 돈이 생겼다. 손이 떨렸다. 어렸을 때 진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꿈속에서 가졌던, 그런 꿈같은 기분이었다. 이 돈이 진짜 내 돈이 되려면 나는 소설책 찾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휠체어 노인의 한 마디에 막연하게 시작한 일이지만 결국 그건 엄마를 구하는 일이었다. 소설책을 찾는다고 엄마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흑구의 유혹에 마음이 자꾸 약해지는 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막연하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목표를 잡고 100개가 넘는 도서관을 찾아다녔지만 그 도서관들이 내가 찾고 있는 도서관인지를 알 수 없었고 혹여 그곳이 이상한 나라의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결국 내가 찾아야 할 소설이 어떤 책인지 전혀 정보도 없었다. 지쳤고, 힘들었다. 막막했고,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엄마,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데 김이 빠지는 듯한 얇은 소리가 짧은 주기로 반복됐다. 여자가 내는 신음소리였다. 섹스할 때 내는 여자의 신음소리였다.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다가도 어느 순간 잠시 멎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소리가 커지기도 했고 소리의 모양이 바뀌기도 했다. 점점 더 격한 신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그 소리에 집중했다. 누군가의 살결을 떠올렸고, 그들의 결합을 상상했다. 신아영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뭔가 미안해서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그냥 그 소리에 집중했고, 누군가의 허벅지를 떠올렸다. 그것만으로도 흥분이 됐다. 나는 자위를 했다. 그들의 소리에 맞춰 손을 움직였다. 소리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도 사정을 했다. 뒷 처리를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몸이 나른했고 나는 잠에 들었다. 침대에서 자는 낮잠은 오랜만이었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몸은 편안했다. 깊은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롯데월드였다. 한쪽 손은 엄마 손을 잡고 있었고 다른 쪽 손은 어떤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였을 건인데,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반대 편 손으로 풍선 끈을 쥐고 있었다. 미키 마우스 얼굴이 그려진 풍선이었다. 나를 가운데로 우리 가족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산뜻하고 다정한 발걸음이었다. 남자는 내 손을 놓더니 놀이 공원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뛰어갔다. 잠시 뒤 풍선 끈을 손가락 사이에 낀 뒤 양손에 콘 아이스크림도 들고 있었다. 초코와 바닐라 맛이 반반 섞인 아이스크림이 콘 위에 나선형으로 올라가 있었다.
“민규야,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온다. 민규 좋아하는 초코맛도 있고 바닐라 맛도 있네?”
아빠는 밝게 웃으면서 엄마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입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그 와중에도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빠라니. 아빠,라고 불린 사람은 밝게 웃으면서 엄마와 나에게 걸어왔다. 얼굴은 잘 안보였지만 환하게 웃는 입이 보였다. 아빠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려고 하자, 몸이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불었다. 그는 잡고 있던 풍선 끈을 놓쳤고 그걸 다시 잡겠다고 손을 뻗다가 나에게 건네던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렸다. 아이스크림은 머리부터 떨어져 바닥에 뭉개졌다. 떨어트리는 와중에 아이스크림이 내 손을 스쳐 축축하고 끈적한 기분이 손에 남았다. 아빠는 풍선을 잡겠다고 뛰어갔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왜 우는지 몰랐지만 잡고 있는 엄마의 손에서 우는 진동이 느껴졌다. 아빠는 점점 멀어졌고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사라진 곳에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가 미키 마우스 모양 머리띠를 한 채 그녀의 아빠 위로 목마를 타고 있었다. 여자애의 손에는 내가 먹으려던 아이스크림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이 쥐어져 있었다. 엄마는 울었고, 그게 슬퍼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터진 순간, 잠에서 깼다.
모텔 안은 해 질 녘 어스름이었다. 아직 다 지지 못한 빨간 노을이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비쳤다. 쓸쓸했다. 낙엽 떨어지는 늦가을 같은 기분이었다.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게 꿈인지, 아니면 잊고 있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살아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꼭 꿈과 같진 않더라도 엄마랑 아빠랑 셋이 놀이 공원은 갔었던 건 아닌지 엄마를 만나면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배가 고팠다. 점심도 안 먹고 하루가 지났다. 당장에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낮에 조금 뛰었다고 몸이 쑤셨다. 다리만 아픈 게 아니라 온몸에 근육통이 있었다. 잠이 깬 채로 삼십 분을 누워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일어나기는 힘들었다. 얼마나 더 누워 있었을까, 모텔 옆에 편의점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기듯이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은 넓었다. 서울에 있는 편의점은 좁은 평수에 물건들을 꽉 채워 놓은 느낌인데 이곳은 공간이 넉넉했다. 내부도 깔끔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 같았다. 전자레인지도 여섯 대나 있었다.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을지, 돈가스와 새우튀김이 들어간 도시락을 먹을지 고민했다. 결국 육개장 컵라면과 전주 비빔 삼각김밥을 샀고 컵라면을 작은 걸 샀으니 소시지도 하나 골랐다. 계산대에 물건들을 올려놓고 지갑을 꺼냈다. 포스 기를 찍은 직원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한 후 맥주 한 캔을 가져왔다. 지갑을 열어 카드를 꺼내는 데 엄마와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 엄마와 나는 행복해 보였다. 바깥이 보이는 편의점 창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삼각김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소시지 핫바는 포장재 끄트머리를 살짝 벗겨 다른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테이블에 앉았다. 라면이 익을 동안 나무젓가락과 삼각 김밥을 라면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매장이 넓어 테이블이 6개가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에는 사람이 없었다. 라면이 익어 먹기 시작했다. 내가 면을 치는 소리가 내 귀에 울렸다. 몸에 안 좋아도 이 가격에 이런 맛을 내는 음식은 없었다. 라면을 입에 가득 넣고 씹었고 그 사이에 삼각 김밥을 욱여넣고 라면 국물로 퍽퍽함을 없앴다. 다 먹고는 소시지에 맥주를 먹기 시작했다. 소시지는 한번 씹으면 그 속살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터졌다. 두 번 세 번 맛을 즐기고는 맥주를 한 모금 씩 곁들였다. 소시지를 다 먹고 맥주가 반정도 남아 과자도 하나 살까 싶었지만 이미 배가 불렀다. 계좌에는 250억이 있었다. 다시 한번 핸드폰을 열어 계좌의 금액을 확인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편의점 창밖으로 차도에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 잠에서 깰 때는 해가 지고 있었고 어느새 해가 진 저녁이었다. 가로등 불 빛 아래로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킨 채 지나갔다. 지나가는 차들을 눈으로 좇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저마다 다른 차들이, 저마다 다른 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안에 누군가는 운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시간에 칠곡의 어느 국도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알 수 없었다. 그 국도 옆의 모텔에서 잠을 자고, 그 옆의 편의점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지, 내가 처한 상황이 새삼스레 낯설었다. 내 삶에서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고 찾으면 어디에 닿을까. 아빠가 집을 나갔을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엄마가 차에 치였을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내가 신아영을 따라갔을 때부터? 지금의 내 삶이 어떻게 흘러 이곳에 왔는지 딱 하나의 시점을 죄인 삼아 그것을 탓할 수가 없었다. 내 선택이나 나의 의지가 담긴 선택도 있었지만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없었던 일들도 많았다. 그 모든 우연과 선택의 총체로서 지금의 내가 있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편의점 출입문 앞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색 동공에 노란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였다. 잠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 인간’이었다. 테이블 위에 쓰레기도 치우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하지만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좌우를 살피고 비교적 먼 곳까지 살폈지만 어디에도 고양이는 없었다. 내가 잘 못 본 건가 싶었지만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고양이 인간이 맞다면 반드시 그와 할 얘기가 있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편의점과 모텔 주변을 배회했다. 건물 사이사이, 주차된 차들의 앞과 뒤, 차들의 바퀴 아래까지 고양이가 있을 만한 곳은 모두 살폈다. 하지만 고양이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국도를 달리는 차들의 바퀴 소리만 귓가에 울렸다. 편의점 창가 안에서 계산을 해줬던 아르바이트 생이 나를 노려보는 걸 보고 말았다. 내가 먹었던 테이블을 아르바이트생이 다 치웠을 것이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그렇게 매너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