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만행을 폭로한 여성 사진작가
시선의 진화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 : 패션모델 → 예술사진가 → 전쟁 종군 기자로 변화한 삶의 여정은, 단순한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그녀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의 진화’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심에 사진이 있었고, 그녀의 삶과 함께한 사진적 시선은 그녀의 삶의 변화와 진화를 이끌었습니다. 보그 잡지의 특파원으로 종군한 사진 기자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는 영화는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키웁니다. 사진작가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은 시작됩니다.
남성 시선의 완벽한 객체(패션모델)가 되다. (콘데 나스트와의 우연한 만남)
위의 사진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1864–1946)와 함께 사진분리파 (Photo-Secession)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던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촬영한, 보그잡지에 실린, 리 밀러의 패션사진입니다. 그녀는 1927년 맨해튼 거리에서 차에 치일뻔한 순간, Vogue와 Vanity Fair 잡지 창립자인 콘데 나스트 출판사 운영인 사진가 콘데 나스트(Condé Nast)가 그녀를 구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진가 콘데 나스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신은 Vogue 표지에 어울리는 얼굴이군요". 그 말 한마디로 리 밀러는 보그 잡지의 전속모델이 되어 1920년대 후반 파리와 뉴욕에서 패션모델로 활발히 활동하게 됩니다.
객체로서의 완벽한 여성 이미지로부터의 전환 (에드워드 스타이켄과의 만남)
1920년대 후반 인기 패션모델이었지만, '타인의 시선 속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그녀는 "나는 더 이상 카메라 앞의 피사체로만 남고 싶지 않았다"라고 회고록에 남깁니다. "완벽한 현대 여성의 이미지"라고 극찬했던 스타이켄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사진을 예술적 직업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시선의 객체(모델/피사체)에서 주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가 스타이켄은 그녀에게 사진을 예술적 직업으로, 주체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문을 열어준 첫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사진세계로의 입문 (만레이와의 만남)
1929년 사진을 배우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만레이 스튜디오에 조수로 취업하게 됩니다. 만레이 (Man Ray, 1890~1976)의 조수로 활동한 여류작가 3명 중 한 명이 리 밀러 (Lee Miller)입니다. 사진작가 만레이는 주로 여성을 조수로 채용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키키 드 몽파르나스(Kiki de Montparnasse) – 모델이자 초기 초현실주의 사진의 주인공, 베레니스 에벗 (Berenice Alice Abbott, 1898~ 1991) – 유진 앗제의 초상사진으로 유명하고, 그를 세상에 알린 인물,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 – 조수 겸 연인, 예술적 공동 창작자. 만레이를 거쳐간 인물들이 모두 역사적 인물로 남아있다는 점 또한 놀랍습니다.
만레이의 대표적인 작품 기법 중의 하나인 솔라리제이션 (Solarization)은 리 밀러가 실수로 발견한 기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수로 암실에서 불을 켜는 바람에 과현상된 독특한 이미지가 만레이의 대표 시그니처 기법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조수가 아니라 공동창작자로서 자기만의 시각과 감수성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로 성장합니다. 사진적 시선의 객체에서 주체로 진화하기 위해 사진가의 길로 들어선 그녀에게 또다시 만레이의 뮤즈로서 존재한다는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독립적 예술가로 활동 시작 (맨해튼 48번가, Lee Miller Studio, 1932-1934)
1932년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직접 스튜디오를 오픈합니다. 상업사진, 초상사진, 광고사진을 촬영하면서, 남성 중심의 사진 예술계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구축해 나갑니다. 하지만 역시 한계를 느낍니다. 예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회의감은 그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게 됩니다. 객체에서 주체로 시선의 진화는 성공적이었지만, 아름다움에 매몰된 시선은 모델로 활동했을 때나, 사진가로 활동했을 때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진실과 마주하는 작가적 시선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초상사진, 패션사진, 광고사진을 촬영. 《Harper’s Bazaar》, 《Vogue》, 광고 클라이언트 등과 협업.
1933년, 개인전 “Lee Miller – Portraits and Studies” 개최. 초현실주의적 인체 표현과 실험작이 주목받음.
전쟁 사진가로서의 리 밀러 — “여성의 시선으로 본 전쟁”
이 영화가 주로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1942년부터 리 밀러는〈보그〉의 전속 종군기자로 파견됩니다. 미군과 함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의 유럽 전선을 취재했습니다. 파리 해방, 부헨발트와 다하우 수용소 해방, 히틀러의 뮌헨 자택 등 역사적 순간을 직접 기록했습니다. 특히 1945년 히틀러의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는 리 밀러의 사진은, 전쟁과 여성, 권력, 인간의 모순을 상징하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죠. (1945년 4월 30일, 바로 히틀러가 자살한 같은 날 촬영된 사진입니다.)
히틀러의 욕조 사진은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남성 권력의 욕망 구조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해체한 상징적 행위로 읽힙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페미니즘 시각문화 연구에서 자주 인용돼요.
리 밀러가 히틀러의 욕조에 앉아 있고,
욕조 옆 바닥에는 다하우 수용소의 진흙이 묻은 군화가 벗겨져 있으며,
욕조 가장자리에는 히틀러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요.
단순한 “콘셉트 사진”이 아니라,
전쟁의 잔혹함을 목격한 직후, 인간의 권력과 허무, 죄의식, 그리고 일상의 역설을 담은 매우 강렬한 상징이에요. “나는 방금 다하우의 지옥을 보고 왔다. 그리고 지금, 그 지옥을 만든 사람의 욕조에서 진흙을 씻어낸다.”
정화(Ritual of cleansing) — 자신이 본 참혹한 현실을 씻어내는 행위이자,
아이러니한 복수(Defiance) — 히틀러의 사적 공간을 점령한 여성 사진가의 존재 자체가 상징적 저항이 된 것이죠.
게다가 여성 기자가 독재자의 욕조에 앉아 담담히 카메라를 응시한다는 건, 전통적인 ‘남성 중심 전쟁서사’에 대한 강렬한 전복이기도 합니다.
“리 밀러는 카메라의 대상이던 여성이 카메라의 주체로 이동한 최초 세대의 상징이다.”
— Whitney Chadwick, 『Women, Art, and Society』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