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명품 재픽박스는 멈춰야할까요?
첫 발명품 재픽박스 시제품 출시
챗GPT가 오픈AI(OpenAI)에 의해 공식 출시된 것은 2022년 11월 30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개월 후 2023년, 저는 불현듯 조명 박스 개발 스케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말, 다행히 한국디자인진흥원의 2024년도 디자인-온라인 제조 플랫폼 수요기업으로 선정되며 시제품을 제작할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 상업사진 촬영용 조명기구 ‘재픽박스(Zappic Box)’를 디자인·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2024 디자인코리아 성과관’에 시제품을 전시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준비해간 명함이 모두 소진될 정도였고, 본제품 출시 일정에 대한 문의 전화와 DM, 메일이 이어졌습니다.
이 반응에 힘입어 특허를 출원했고, 양산 시점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정식 출시를 목표로 했지만, 여러 고민과 망설임 끝에 아직까지는 시제품만이 제 스튜디오 한켠에 조용히 놓여 있습니다.
AI가 상업사진 시장을 바꾸고 있습니다.
특히 상업사진 촬영 분야에서는 ‘찍는 일’, 즉 촬영 단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찍는 행위’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상품 사진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조명을 세우고, 그림자를 제어하며, 반사각을 맞추는 일이 숙련된 기술자이자 감각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도 AI가 몇 초 만에 배경을 제거하고 색을 보정해 줍니다.
물론 여전히 ‘일관성’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구글의 나노바나나(Nano Banana) 같은 기술은 그 해법의 실마리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진화의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빠릅니다.
첫 발명품 재픽박스 (Zappic Box)
재픽박스(Zappic Box)는 전문가의 손길과 배움이 필요했던 조명 세팅을, 초심자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고안한 촬영용 조명 박스입니다. 기존 포토박스 제품들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새로운 설계 디자인으로 극복하고, 상업사진을 위한 조명과 카메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용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초심자에게는 친숙하고, 전문 상업사진가에게도 활용 가능한 수준의 제품을 목표로 개발했으며, 결과적으로 시제품은 비교적 완성도 높게 구현되었습니다.
‘Zappic Box’라는 이름은 ‘Zap(순간의 번쩍임)’과 ‘Pic(사진)’의 합성어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만으로도 전문가 수준의 누끼 촬영(배경 제거용 사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허 내용에는 AI가 적용된 확장형 Zappic Box, 일종의 로보틱 AI(Robotic AI) 개념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촬영 환경의 미래는 Zappic Box 공식 홈페이지에 가상 청사진으로 제안해 두었습니다.
제품 개발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LED 조명의 각도를 계산하고, 제품의 질감과 곡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구조를 수십 차례 수정했습니다. 직접 3D 모델링을 진행하고, 여러 차례 시제품을 제작한 끝에 마침내 특허 출원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양산은 무리일듯합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재픽박스의 양산을 앞두고 저는 멈춰 서 있습니다. AI 시대에도 ‘제대로 된 사진 소스’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시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충 찍은 사진조차 앱 하나로 배경이 지워지고, 심지어 새로운 배경까지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 않고 조악한 결과물도 많지만, 저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현상만 보고 섣불리 뛰어들 수 없었습니다. GPT가 등장하기 전의 1년이, 지금은 불과 1주일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몇 달을 고민하며 설계했던 빛의 각도와 반사면은 이제 코드 몇 줄과 모델링 데이터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ZAPPIC BOX의 피벗 : AI의 한계와 틈새는 분명 있습니다.
분명한 한계는 있습니다. AI는 초심자들이 대충 찍은 사진도 그럴듯하게 완성해주는 데엔 탁월하지만,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해야 하는 단계에선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직접 촬영이 더 손쉬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투명한 용기나 유리병처럼 빛의 굴절이 미묘하게 작용하는 피사체는, 아직 AI가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픽박스의 AI확장형 모델이 답이될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투명 용기의 누끼 촬영만큼은 여전히 Zappic Box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의 AI’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글이 세상에 올라가는 바로 그 순간에도, AI는 이미 더 나아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AI는 시간 단위로 진화하고 있지만, Zappic Box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양산을 망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초 계획은 단순했습니다. Zappic Box를 출시해 매출을 만들고, 그 수익으로 AI 앱 개발과 Robotic AI R&D에 투자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계’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시장, 순식간에 구조가 바뀌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도전이, 때로는 무모하게 느껴집니다. 피벗을 해야할지 여기서 재픽박스는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남겨둬야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