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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이인간

HOMO MEDIUS/ 온톨리지Ontology/ 김대식, 김혜연 저

by 피운
#본질 #관계 #창발 #결핍

인간의 나약함에 주목하다. [나약함의 역설, 소설가 장강명]

난 이것을 '틈'이라고 말한다.


세상과의 연결 = 몸(뇌) / 연결에 주목하다.

감각의 매개인 '몸'을 연구하는 안무가 김혜연과 뇌 과학자 김대식 교수와의 연결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세상을 몸의 감각을 통해 연결합니다. 안무가 김혜연은 뇌 역시 우리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서학개미들한테 요즘 핫한 기업 중의 하나인 '팔란티어' 란 회사가 있습니다. 얼마 전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CEO까지 한국을 찾았습니다. 온톨리지 Ontology라는 철학적 개념에 기반을 둔 이 회사는 본질 간의 연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구조를 새롭게 구성하는 일. AI가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의미구조(프로토콜)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듯합니다.


'비논리적 창발 emergence'

이 책을 읽으면서 '연결' 사이에 발생하는 '비논리적 창발 emergence'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유행했던 '융합적 인간', '융복합적 사고'는 비교 문학의 '논리적 비평'과 닮아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논리적 기반 위의 창의성이라고 정의한다면, AI가 진화하는 이 시점엔 논리적인 비평에 덧붙여, 오히려 비논리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설명하기 힘든 '창발 emergence'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일부인 뇌는 시냅스로 뉴런과 뉴런을 연결시키고 있는 단순한 구조로 볼 수 있습니다. 단, 약 860억 개 정도라고 하니, 그 양이 엄청납니다. 하나하나는 단순한 세포처럼 보이지만, 뇌 전체는 '의식(consiousness)'이라는 새로운 창발적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게슈탈트 이론의 핵심명제 역시 창발을 말하고 있습니다. 점을 3개 찍었을 뿐인데 우리는 삼각형을 만들어냅니다. 관계 속에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거죠.


움직임이 고객을 만든다. (개인적 경험)

책을 읽으면서 문득 저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직원들과 손님이 없어서 멍 때리고 있을 때, 그냥 이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느니, 우리 탁구나 한게임 하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습니다. 탁구대를 펴고 탁구를 치면서 '앗싸~'하며 탁구에 몰입하는 그때, 문의전화가 연속해서 울려댑니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문의전화가 없을 땐, 직원들과 탁구를 치게 되었어요. 탁구가 아니더라도 직원들과 산책을 하더라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구성원들 각자의 개별적인 움직임은 그냥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움직임이라는 에너지가 탁구를 통해서 서로 연결되었을 때, '문의'라는 새로운 구조가 창발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삶이 힘들 때, 집에 가만히 있지 말고 밖으로 일단 나가보세요'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틈'

'세상의 틈을 찾아 비닐 위에 밀착합니다.'라는 말을 언제부턴가 쓰고 있습니다. 아무런 감흥도 특별함도 없는 순간에 어떤 장면에 이끌려 사진을 찍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알 턱이 없고, 그 사진은 대체로 아무 생각이 없었기에 클라우드에 자동저장되어 버리고 다시 보지도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사진 중에 가장 긴 생명력을 가진 사진은 그런 이유 없는 사진들입니다. 난 그것을 '틈'이라는 표현으로 언제부턴가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성과 논리가 맞지 않는 세상의 어떤 순간이 셔터를 누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젠 의도적으로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찾습니다. 논리영역 밖의 세계가 나의 감각과 만났을 때, '어' 하면서 찍게 되는 사진! 그 틈은 몸의 감각과 연결되고, 책에서 장강명 소설가가 말한 인간의 나약함과 연결됩니다. 인간이 AI와 차별되는 핵심을 '틈'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오류', '실패'에 주목합니다. 장강명 소설가는 '나약함의 역설'이란 제목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의 서사다"
소설가 장강명은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지칭하는 것, 즉 인간의 나약함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경험. 통찰이 날줄로 얽히고설켜 이루어내는 서사야말로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목표와 삶의 본질과는 무관한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AI 시대가 종말 서사가 아닌 지상낙원의 서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나약함, 인간다움을 계속해서 지켜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51p)


"타인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 즉 서사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63p)라고 장강명 소설가는 말합니다. 난 그 말에 "사진은 어떻세요?"라고 바로 혼잣말로 답변을 드렸습니다. 사진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분명 AI와 다른 것 같아요. 사진 속에 꽉 차있는 개념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그 서사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일 수도 있지만, 개념들의 연결에서 창발 emergence 되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어요. 두 장의 퓰리처상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캐빈 카터 (Kevin carter) (좌), 김경훈 사진기자 (우)

AI에게 이 두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면, 아마도 그것을 분석한 수많은 글과 해석을 수집해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AI가 처음으로 이 사진을 마주한다면, 아이의 죽음 앞에서도 셔터를 멈추지 않았던 사진가의 윤리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오른쪽사진] 김경훈 사진기자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 장벽 앞에서 포착한 장면 속, 미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디즈니 티셔츠를 입은 가족의 모습이 던지는 아이러니를 Ai가 오롯이 이미지로만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속 개념들의 상호작용과 시각적 패턴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진을 마주한 인간의 몸이 먼저 반응하며 느끼는 감정의 진폭까지는 아직 AI의 이해 영역 밖에 있는 듯합니다.


'어'하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사진을 저는 찍지만, AI는 이런 유의 사진을 'B컷'으로 판단하고 삭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사진을 인공지능은 찍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자꾸 찍습니다.


"천년 후 결핍돼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 결핍 속에서 예술이 싹을 틔울 것 같아요." (138p)

"인류가 어떤 식으로라도 남아 있다면 천 년 후에도 예술이 있을까요?" 란 질문에 대한 예술감독 이대형의 답변입니다.


‘결핍’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분명 이 세상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소통의 매개가 결여된 상태이자, 이해의 언어가 닿지 않는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빈자리, 그 틈을 메우는 것이 바로 예술의 역할인 듯합니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나의 경험

"수행은 단순히 연결망을 끊거나 고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 없이도 흔들지 않는 존재'로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165p, 인도학자 강성용) 송길영 작가의 '핵인간'의 개념과도 통합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 만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Ai가 잘하지 못하는 건 무엇일까? 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게 만듭니다. AI와 달리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신체, 감각, 호흡, 감정, 고통 등을 느끼는 “유기체적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몸에 대한 관심도 늘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를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보뿐 아니라 정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인지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168p 인도학자 강성용)

유기체적 몸이 체험하는 경험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Ai가 나에 관한 정보를 나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어도, 나의 느낌을 대신 느낄 수는 없습니다. 인도철학은 '나'라는 존재가 환상일지라도, 그 환상이 가진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가르쳐 왔습니다."(168p 인도학자 강성용)


AI가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이해할 수 있을지라도,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틈’ 속에서 피어납니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 이유 없이 끌리는 한 장의 사진, 실패 속에서 피어나는 통찰. 그 결핍이 바로 인간의 서사이며, 예술의 시작점입니다.


『사이인간』 속 15명의 인터뷰이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몸을 통해, 누군가는 감정을 통해, 또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묻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결핍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력’이었습니다.


AI 시대가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이 AI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며, 나는 그 안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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