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음식이 아니었나 싶다. 요리사 한 명과 보조 요리사 한 명, 두 명이 로지에 미리 도착해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우리가 이동할 때마다 요리사들은 식재료를 둘러메고 이동해서 음식을 준비한다. 김치를 담근 후 그 김치를 들고 다니며 식사 때마다 내어놓기에 시간이 흘러가며 김치는 익어간다. 익어가는 만큼 김치 맛도 좋아진다. 요리사는 한국에서 요리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그 경험이 바탕이 되어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과 반찬을 준비해 놓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비빔밥, 북엇국, 닭백숙, 아메리칸 조식, 국수나 라면 등등 음식 맛이 맵거나 짜지도 않고 심심하니 우리 입맛에 딱 맞는다. 하루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으니 걷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요리사들의 정성과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닭백숙 나올 때 대장님이 모두 다 먹지 말고 조금 남겨 놓는 것도 좋다고 해서 의아했다. 음식을 남기면 오히려 잔반 처리하는데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대장님 말씀을 듣고 금방 이해가 되며 마음이 다소 숙연해지며 동시에 미안했다.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을 포터나 가이드가 먹는다고 했다. 더 이상 음식을 먹기가 불편하고 미안했다. 그들이 우리가 먹고 남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그들이 먹을 음식과 우리가 먹을 음식을 애초에 따로 나누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얘기를 들은 후 가이드나 포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들은 생계 수단으로 가이드나 포터 일을 한다. 우리는 즐기기 위해 트레킹을 한다. 같은 길을 걷고 산을 올라도 목적이 다르다. 그들은 슬리퍼에 맨발로 무거운 짐을 메고 산을 가볍게 오르는데, 우리는 가벼운 짐에 완벽한 등산 복장을 갖추고 걸으며 힘들어한다. 그 힘듦조차 그들에게 보여주기가 미안하다. 비가 몰아칠 때도 그들은 큰 비닐을 뒤집어쓴 채 짐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을 뒤집어쓰지 않는다. 우리는 우비를 입거나 판초를 뒤집어쓰고 스틱에 힘을 주고 걸으며 날씨 탓을 하며 걷는다. 포터가 지나갈 때 우리는 한쪽으로 비켜서 준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어 편안하게 지나가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들이 짐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괜히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들의 생계 수단이기에 굳이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어려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음식을 나눠주는 것 밖에 없다.
그들은 우리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는 않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가벼운 배낭만 메고 걷고 싶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은 밝고 미소를 띠고 있다. 그 밝음과 미소조차 때로는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래서 애써 눈을 피하고 빨리 지나간다. 때로는 아는 포터를 만나면 엄지 척을 해 주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인사법이자 고마움의 표시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고 아는 체하는 우리를 보며 웃음을 짓는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인 이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지 우리의 방문으로 그들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가족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어떤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면 너무 운명론적일까? 그들을 보고, 네팔이라는 나라를 방문한 후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비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우리의 60년대 정도로 느껴져서 나의 관점에서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그 안에서 그들은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ABC에서 로워시누아로 내려오는 날 하루 종일 걸었다. 마지막에는 어둠이 짙어져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헤드렌턴은 고장이 나서 무용지물. 그때 젊은이들이 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걷고 있었다. 그들의 랜턴 불빛에 의지해 어렵게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행동을 보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불빛을 나를 위해 비춰주고 있었다. 고마웠다. 여성 한 명과 두 명의 남성이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수다를 떨고 웃으며 걷고 있었다. 네팔 국민들이 음악은 좋아하는 것 같다. 지프차를 이용해 첫날 포카라에서 반단티로 이동할 때, ABC 트레킹을 마치고 촘롱에서 포카라로 이동할 때도 운전수들 역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상당히 심한 오프로드를 운전했다. 이들에게 음악은 힘든 삶을 위로해 주는 방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네팔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는 빈부격차로 인한 일이었다. 일부 부패 권력층 자제들의 무분별한 소비 행태와 삶의 모습을 보며 격노한 서민들이 저항을 한 것이다. 권력층은 자신들이 사람 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은 모두 동등하다. 태어나 살다 죽는다는 사실 한 가지에서 우리 모두 평등하고 동등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삶의 과정에서 드러난 빈부 격차나 삶의 수준은 모두 업의 결과일 뿐이다. 이 업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업보와 운명은 전적으로 다르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나의 업보의 결과이지 이렇게 살게끔 운명론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자신의 노력으로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업의 방향을 바꾸면 된다. 물론 이미 지은 업보는 피할 수 없으니 이는 받아들일 수밖에.
아들 뻘 되는 포터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까라는 생각에 한숨이 쉬어진다. 그들이 나의 짐을 짊어지고 고산을 오른 업보는 내가 그들의 짐을 지고 고산을 오를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전생에 나에게 무슨 빚을 지었기에 내 짐을 메고 고산을 올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미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었다. 빚 역시 업보다. 언젠가는 그들의 짐을 메고 걸을 날이 올 것이다. 우리의 짐을 메고 걸은 덕행으로 이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들이 짐에서 해방되어 가벼운 나들이 겸 소풍을 하며 ABC에 오를 날을 기대해 본다. 고맙습니다. 우리의 짐을 메고 걸은 포터님들, 우리의 길 안내를 했던 가이드님들, 우리의 식사를 책임지며 잘 먹게 만들어주신 요리사님들 덕분에 안전하고 즐겁게 ABC 트레킹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