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파니에서 푼힐을 거쳐 츄일레로 가는 내내 비를 맞고 걸었다. 고레파니에서 새벽 일찍 기상해서 푼힐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이 안나푸르나 일정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날 저녁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출발 당일 새벽녘에는 비가 많이 거세졌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느라 잠도 제법 설친 거 같다. 처음으로 고산지대인 고레파니 (2,860m)에서 고산병 예방약을 먹고 잠을 자며 긴장한 상태다. 단체로 푼힐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희망자만 가이드와 함께 다녀오기로 결정되었다. 네 명의 길벗과 함께 빗속을 뚫고 다녀왔다. 비록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말로만 듣던 푼힐 전망대에 올라 사진도 찍고, 전망대 아래에 깔려있는 구름을 보며 손오공이 되어보는 경험도 했다. 우리만이 아니고 이 빗속에서도 일출이 아닌 운무를 감상하기 위해 오르는 외국인들도 제법 있다. 푼힐까지 오르며 별다른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니 앞으로 고산병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푼힐을 다녀온 후 츄일레(2,560m)까지 걷는 날이다.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우중 걷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이다. 평상시 서울 둘레길이나 해파랑길을 걸으며 우중 걷기의 참맛을 맛보았기에 오히려 즐기며 걸을 수 있었다.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또 발의 감각이나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걷는 즐거움은 밝은 햇살 아래를 걷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날씨의 변화와 상관없이 걸을 수 있는 우리는 이미 모두 걷기의 달인들이다. 다만 등산화와 옷이 젖어 다음 날 걸을 때 신경이 쓰일 뿐이다. 다음 날은 다음 날이고, 오늘을 즐기며 걸으면 된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늘 그렇듯 어떻게든 살아지고 살게 되어 있다.
츄일레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식당 내에 설치된 난롯가에 모여 온기를 쬐며 젖은 옷과 장비를 말리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말리고 있기에 아예 물건을 말릴 생각을 포기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등산화 상태는 괜찮지만 우비와 장갑이 걱정이다. 저녁 식사 후 옷을 말린 후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겨우 공간을 만들어 우비와 장갑을 말릴 수 있었다. 완전하게 말릴 수는 없었지만, 내일 사용하는 데 지장은 없을 정도는 되어 다행이다. 굳이 애쓰고 비집고 들어가 말리지 않아도, 저절로 시간이 만들어 준 공간이 생겨 물건을 말릴 틈이 만들어진다. 저절로 되는 일이다. 물론 옷 말리는 일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일이고 요령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부족한 나는 길벗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조금이나마 말릴 수 있었다.
츄일레의 아침은 맑고 상쾌했다. 고산병에 대한 걱정을 하긴 했지만 약을 먹고 자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고산병 약을 먹고 난 후 약 1시간 정도는 손이 많이 저려온다. 아마 약효 덕분에 피의 순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런 깃이 아닐까?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며 로지 앞에 펼쳐진 마차푸차레를 바라본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 기세가 상당하다. 마차푸차레는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로 해발고도가 6,997m인 산이다. 우리가 ABC에 오르기 전에 마차푸차레 베이스 켐프인 MBC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 산이 우리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제 빗길을 걸어오느라 수고했으니 오늘은 나의 모습을 보여주마라고 하듯 자신의 모습을 일부 보여준다. 마차푸차레는 네팔어로 ‘물고리 꼬리’라는 뜻으로 정상 부분이 두 개로 갈라져 있는 게 마치 물고기의 꼬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츄일레에서 출발하기 위해 각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빅토님이 ‘걷고의 걷기학교’가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다.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 온 것이다. 그것도 혹시나 다른 사람이 더 크게 잘 만들어 온 것이 있을까 조심스러워 먼저 선뜻 들고 나오지 못하고 수줍게 보관만 하고 있었다. 글자님 덕분에 빅토님이 플래카드를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빅토님의 준비성과 배려심이 너무 고맙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을 하면서 티를 내거나, 아니면 티를 내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빅토님처럼 티를 내지도 않게 준비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을 지닌 사람도 있다. 또는 큰 일을 하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하는 사람도 있다.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덕분에 츄일레 로지 앞마당에 활기가 넘친다. 출발 전 모두 모여 파이팅을 외치며 플래카드를 앞에 놓고 사진을 찍는다. 갑자기 소속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플래카드가 있거나 없거나 우리는 걷기학교 회원들임에도 플래카드 한 장의 주는 소속감의 상징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우리는 모두 ‘걷고의 걷기학교’ 회원임을 플래카드 앞에서 스스로에게 확인을 한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 중의 하나가 소속감이다. 가족, 사회 구성원, 친구 모임, 심지어는 단톡방도 하나의 소속감을 만들어준다.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면 동시에 소속감이 주는 의무나 책임 또는 그에 따르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렇다! 세상 어떤 것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포기하거나 던져야 한다. 두 개 모두를 손에 쥐고 있는 한 다른 어떤 것도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세상사는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츄일레 로지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사진 찍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단순한 걷기 모임이 아무 생각 없이 ABC에 도전했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단체가 와서 즐겁게 걷고 있는 모습이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면 된다. ABC에 걸으러 왔으니 걸으면 된다. 굳이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한다거나 할 필요도 없다. 그날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 이미 충분하다.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판단이 오히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굳이 도움을 주려 애쓸 필요도 없이 자신의 할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각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서로를 도와주는 일이 된다. 누군가에게 불편과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한다면 그것이 바로 누군가의 짐을 덜어주는 일이고 도와주는 일이 된다. 나는 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나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가? 나의 길을 가기 위해 누군가에게 짐이 되거나 불편함을 끼치지는 않았는가? 이런 질문을 안고 걷는가? 한 장의 플래카드가 나 자신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다시 한번 플래카드를 준비해 온 빅토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