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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夫婦) 문화

by 걷고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 참가 인원은 총 16명이다. 그중 60대에서 70대의 부부가 네 쌍이다. 총 참가 인원 중 절반이 부부다. 그 부부가 열흘 간 함께 지내며 안나푸르나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 부부 모두 무척 행복한 사람들이다. 건강이 허락되고, 경제적 여유가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이 길을 함께 걷겠다는 부부간의 약속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부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네 부부가 사랑의 힘으로 또 자신의 의지로 ABC까지 걸어 올라갔다는 것은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각 부부마다 삶의 양식이 있고 부부 문화가 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에서 보여준 부부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다. 부인이 남편의 짐을 챙기고, 남편은 부인을 돌보고 무거운 짐을 들어주며 서로를 위한 배려를 하는 모습이다. 남편은 대부분 직장생활이나 사업으로 집 밖에서 활동할 때가 많고, 부인은 대부분 집안에서 살림을 챙기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문화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갈등도 있었을 것이고, 그 갈등을 통해 현명한 대처 방안을 함께 강구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했을 것이다. 부부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그런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고, 이어서 그 가정의 문화가 된다. 대물림이란 부부간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부모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예전에 혼사를 결정하기 위해 양가 부모의 모습을 확인했다는 것은 매우 현명한 방법이다.


중년, 또는 노년에 들어서면서 부부가 함께 다니기도 하지만 따로 다니는 경우도 많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했거나 독립했고, 집안에 남아있는 부부는 빈 둥지 증후군을 겪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은퇴를 한 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간 집안일,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온 부인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갖게 된다. 부인은 외출해서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반면에 남편은 집안에 머물며 잔소리를 해대기도 한다. 부부간 갈등이 다시 시작되는 시점이다. 이 시간을 현명하게 대처해야 백년해로를 할 수 있다.


서로를 챙기는 모습도 변해야 한다.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배우자만 챙긴다면 이 또한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을 잘 챙기고 자신을 아끼는 것이 결과적으로 배우자를 챙기고 아낀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낄 필요도 있다. 나의 고통과 건강이 바로 배우자의 고통과 건강과 직결된다. 내가 건강해야 배우자를 돌볼 수 있고, 내가 나를 잘 챙겨야 나로 인해 배우자가 고생할 일이 줄어든다. 즉 자신의 신체적, 삼리적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바로 배우자를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래야 배우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잘 돌볼 수도 있고, 자신으로 인해 배우자가 고생할 일이 줄어들거나 없어진다.


부부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나무에 수많은 가지와 나뭇잎이 있다. 나뭇잎 하나에 상처가 생기면, 그만큼 나무 전체에 상처가 된다. 반대로 나뭇잎 하나가 건강하면 그 건강함은 나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나의 나뭇잎이 너의 나뭇잎과 비록 다르지만, 서로는 줄기를 통해 나무라는 큰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부부간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을 잘 챙기는 것이 배우자를 잘 챙기는 것이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걷고 운동하는 것이 바로 배우자를 위한 건강한 행위가 된다.

중년 이후의 삶은 함께 지내는 것도 좋지만 각자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칼 융은 중년의 심리학을 중요시 한 심리학자이다. 자신의 할 일, 하고 싶은 일, 삶의 가치를 찾아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정적, 사회적 책무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일생을 통해 10여 년에 불과하다. 건강 나이가 연장되었다고 해도 20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 기간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아 즐거운 여정을 한다면 마지막 여정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함께, 때로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년의 삶의 문화다.


“너희는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도 그대들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중략)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따로이듯이. (중략)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 (칼릴 지브란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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