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족

by 걷고

양육의 목적은 ‘건강한 독립’이라고 한다. 자녀들의 건강한 독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인 양육이다. 건강한 독립이란 부모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를 하며 자신의 길을 찾고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자녀들이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양육은 이어진다. 음식을 나른다거나, 손주들을 돌보거나, 자녀들의 요청에 따라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어준다. 과연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또한 자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부모와 자녀는 과연 서로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서로 엉켜있어서 그 매듭을 쉽게 풀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 자식 관계는 천륜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 둘이 엉켜있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만이 아니고 자녀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이미 얽혀있는 인연이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가장의 입장에서는 가족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때로는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기꺼이 자신을 바치며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지금의 행복도 가족 덕분이며, 지금의 고통도 가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돌아갈 집과 가정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갈 가정이 있고, 나를 맞이하고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는 한 살아갈 가치가 있고 살아갈 힘도 얻는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처음 이삼일 간은 낯선 상황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그리고 조금씩 적응하면서 아내와 딸, 사위, 그리고 손주들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올라온 감정은 미안함이다. 아내는 일주일에 나흘간 딸네 머물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딸은 두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특히 둘째 손자의 발달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힘을 쥐어 짜내고 있다. 사위는 회사에 나가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바쁘게 살아가고, 귀가해서는 두 아이들 교육시키거나 함께 노느라 정작 자신만의 시간은 없다. 그런 가족들을 생각하니 혼자 이 먼 곳까지 와서 좋아하는 트레킹을 하며 즐기고 있는 자신이 한편으로는 밉고 뻔뻔스럽게 느껴진다.


아내에게 특히 미안했다. 그간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바쁘게 살아왔고, 딸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정신없이 보냈다. 특히 딸아이가 무용을 했기에 중고 6년간 개인 운전사 역할을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딸이 대학 입학 후 겨우 한숨 돌리며 약 6,7년간 탁구를 치며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거운 시간도 보내며 건강을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딸의 결혼과 출산 후 뒷바라지 하느라 이제는 탁구도 포기한 채 딸네 머물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 반면에 나는 좋아하는 걷기와 글쓰기를 하며 혼자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아내 보기 참 미안한 따름이다.

안나푸르나 여정은 제법 빠듯했다. 총 10일 중 이동에 4일, 트레킹에 6일을 보냈다. 돌아오는 여정도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참가자 모두 선물 사는 것에 대한 약간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여유롭게 쇼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일한 시간이라면 ABC 마친 후 카트만두에 도착해서 저녁 식사 후 여유 시간이 있었지만, 늦은 식사 때문에 가게 문은 대부분 닫혀서 물건을 제대로 살 수 없었다. 중국 청도 면세점에서 쇼핑을 할 시간도 한두 시간 정도 밖에는 없었다. 모두 이 시간을 이용해 선물을 사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그 선물 중 과연 자신의 선물은 있었을까?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집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며느리 선물, 사위 선물, 손주 선물, 아내나 남편 선물을 사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카트만두에서 전날 저녁에 선물을 구입하지 못한 나는 다음 날 아침 선물을 사지 못한 사람이 몇 명 있으니 비록 이른 시간이지만 쇼핑할 곳을 알아봐 달라고 ‘딘’에서 부탁했다. 겨우 문 연 가게를 찾아 들어가 장모님, 아내, 딸의 선물을 구입했다. 딸의 선물을 구입하고 나니 사위가 마음에 걸렸다. 결국 중국 청도 공항 면세점에서 와인 한 병을 사위 몫으로 구입했다. 그 와인 덕분에 돌아온 다음 날 딸네서 우리 가족이 함께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딸 선물을 사고 사위 선물을 챙기지 못하면 미안하다. 아내 선물을 사고 장모님 선물을 사지 못하면 역시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선물을 줄 대상의 범위와 숫자는 점점 더 넓어지고 많아진다. 이런 선물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가족인 이상 그럴 수도 없다. 서로를 챙기는 가족이지만, 그 챙김이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가족은 서로 이렇게 얽히고설켜있다. 마치 그물과 같다. 그물의 한 코를 들어 올리면 그물 전체가 따라 올라온다. 따라서 ‘나’는 바로 ‘너’가 되고, ‘우리’가 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는 저 먼 곳의 그물도 ‘나’의 그물코가 있기에 그 역할을 할 수 있고, ‘너’의 그물코가 성하기에 ‘나’의 그물이 성할 수가 있다. 그러니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삶의 태도다. 그래서 가족이고, 그러니 가족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부(夫婦)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