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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는 마음

by 걷고

페와 호수 (Phewa Tal)는 네팔 포카라 남쪽에 위치한 호수로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해발 800m에 지역에 위치한 이 호수는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로 형성된 호수다. 이 호수 동쪽에는 레이크 사이드(Lakeside) 또는 바이담이리고 불리는 지역으로 호텔, 식당, 상점 등이 몰려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포카라의 화이트펄 호텔에 하루 머물며 포터에게 맡길 짐과 자신이 들고 갈 배낭을 분리하고 트레킹 전 마지막으로 편안한 잠과 휴식을 취한다. 다음 날 아침에 지프차를 타고 네 시간 정도 이동한 후 트레킹이 시작된다. 저녁 식사를 레이크 사이드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맥주와 함께 하고 환전도 하면서 트레킹에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각자 분주하게 움직인다. 식사 후 부근에 위치한 상점에서 짝퉁 명품 등산복을 구매하고 기뻐하는 길벗도 있다. 쇼핑한 후 페와 호수 주변을 걸었다. 페와 호수 주변은 멋진 식당과 바(bar)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꽤 세련된 핫플레이스다. 마치 서울의 성수동이나 연남동 느낌이 드는 거리다.


호수 주변을 걸은 후 호텔로 돌아갈 사람은 가고, 쇼핑할 사람은 쇼핑을 하고, 남은 인원 여덟 명 정도 호텔 부근의 커피숍에 들어가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금방 나올 줄 알고 주문했다. 빨리 먹고 들어가 쉬고 싶은데 주문한 요구르트는 감감무소식이다. 족히 30분 이상 기다렸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요구르트가 나왔는데, 밥그릇 같은 용기에 과일을 담아 매우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들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고객도 재촉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다. 우리는 조금만 음식이 늦게 나와도 불만을 제기하거나 재촉을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많이 급하다. 이 커피숍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식당에서도 그렇고,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카페에서도 주문한 차나 음식도 천천히 나온다. 나의 시각에서 천천히 느껴지지만, 그들의 시각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속도로 나오는 것이다.

트레킹을 할 때도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특히 포터나 가이드는 더욱 그렇다. 페이스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다. 특히 고산을 오를 때에는 천천히 걷는 것이 고산병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산이 높고 계단이 많으니 속도는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도 빨리 걷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하루에 몇 킬로를 걸었고,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완보를 하지 못한다. 한 달 이상 하루에 25km ~ 30km를 꾸준히 걸어야 완보할 수 있는 길인데, 그렇게 서두르고 걷다가 발이나 다리에 탈이 나는 경우도 많고, 지쳐서 완보를 할 수 없게 된다.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산티아고 길이든,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든, 어떤 길을 걷든 완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호수 주변 길은 매우 안전하고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이 호수 주변을 걸었다. 동이 트기 전의 페와 호수는 고요하고 차분하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 호수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지 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다. 이 호수 가운데에는 힌두교 사원인 바라하 사원이 있어서 예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맑은 날이면 안나푸르나 설산의 비경이 호수 표면에 비친다고 하는데 날이 흐려서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안타깝다. 대신 페와 호수 주변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호수 주변을 걷다가 우리나라 말을 조금 할 줄 아는 네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안산에서 또는 목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얘기하며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한다. 그들의 인사가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었다. 외국에 나가 힘든 일을 하며 돈을 벌어온 시절이 있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이 다소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가끔 신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차별과 불이익을 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 화가 난다.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네팔에서 들어보니 우리나라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살만 한 곳이 되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Korean Dream을 꿈꿀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네팔을 다녀온 후 비로소 이런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를 알게 되며 자긍심도 느낀다.

네팔어로 ‘천천히’는 ‘비스따리’라고 한다. 포터나 가이드들이 트레커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단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 우리 일행에게 ‘비스따리’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페이스로 꾸준히 걸었고, 평상시 걸으며 몸에 익힌 습관대로 또 경험을 통해 배운 방법으로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체득했다.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남과 비교하며 더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걷기는 경기나 게임이 아니다. 누군가보다 빨리 걷거나, 누구와 비교하며 걷거나, 누구를 이기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수많은 상념과 감정, 갈등으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모두 ABC까지 각자 자신만의 걸음으로 올랐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며, 완보에 성공했다. 급한 마음만 내려놓는다면, 포기할 마음만 내려놓는다면, 꾸준히 한 걸음 한 걸음 걷기를 이어간다면 원하는 곳에 어디든 도착할 수 있다. 삶도 그렇다. 주변과 비교하거나 경쟁할 필요 없이 자신의 길을, 즉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꾸준히 살아가면 된다. 걷기와 삶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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