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은 길이 끝나면서 끝이 난다. 대부분 그렇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도 그렇다. 도니님과의 인연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하기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함께 간 동호회 회원 16명과의 인연이 깊다. 여행사 대표님과의 인연도 그렇고, 현지 총괄 매니저인 ‘딘’과의 인연도 그렇고, 포터, 가이드, 요리사, 지프차 운전기사들과의 인연도 그렇다.
카트만두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인 부부를 만났다. 내 나이 또래로 변호사를 하다가 지금은 그만두고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네팔을 거쳐 부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남편이 히말라야산맥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창가에 앉아있던 내가 자리를 비켜주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남편은 과묵한 편이고, 부인은 친화력이 좋았다. 부인이 내 옆에 앉아있어서 주로 둘이 얘기를 나눴다. 막내아들이 장애가 있어서 요양원 같은 시설에 머물고 있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둘째 손자가 발달 지연이어서 클리닉에 다니고 있다고 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쉽게 공감하며 한층 친해진 느낌이다. 개인마다 돌덩어리 한 개는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 돌덩어리가 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희망과 행복이 되기도 한다. 서로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나는 ABC 트레킹 성공 인증숏을 보내주기로 했고, 캐롤은 남편이 찍은 히말라야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여정을 마친 후 우리 둘은 모두 약속을 지켰다.
인연은 무상이다. ‘오는 인연 막지 말고, 가는 인연 잡지 말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이어질 듯하면서 끝이 나기도 하고, 끝날 듯하면서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으로, 나쁜 인연이 좋은 인연으로 변하기도 한다. 새옹지마다. 그러니 만남은 만남대로 받아들이고, 헤어짐은 헤어짐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무상을 느끼고 체득할 수 있다면, 인생사 참 별거 없는 하나의 흐름임을 알게 된다. 흐름은 변화다. 흐름을 받아들이면 무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순리를 따르며 살아가는 삶의 지혜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감사함을, 불편함을, 미안함을, 안타까움을 느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이런 감정과 생각들은 변색되고 흐려진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면 그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진다. 그러므로 이런 감정과 생각에 오래 머무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걷기 동호회라는 모임이 인연이 되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러니 길에서 헤어지는 것이 정해진 순리다. 때로는 몇몇 사람들과의 인연이 깊어서 조금 더 오래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그 역시 우리네 인생 전체로 바라본다면 아주 짧다. 백 년을 산다고 해도 36,500일에 불과하다.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의 덧없음을 느끼며 희로애락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한다.
삶의 고통과 행복은 회전문과 같다. 앞으로 밀고 안으로 들어가면 행복이고, 다시 밀고 밖으로 나오면 고통이다. 사랑과 미움도 회전문이고, 너와 나도 회전문이다. 모두 이분법적 분별심이 만들어 낸 장난이다. 이것을 없앨 방법은 회전문을 부수면 된다. 문이 사라지면 안과 밖이 저절로 사라진다. 회전문은 욕심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허상을 부수기 위해서는 실상을 보아야 한다. 그 실상을 보기 위해 우리는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이 들어가면서 무뎌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한 감정이든, 좋은 감정이든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좋거나 싫다, 이것이고 저것이라는 분별심도 점점 사라진다. 그래서인지 사람이나 상황에 감동하거나 화나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인간이기에 감정은 있지만, 그 감정이 내 안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사람과의 인연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어떤 사람, 어떤 모임에 메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순간 잘 지내면 되고, 헤어지는 순간 개운하면 된다. 인연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만남과 헤어짐의 연결에 불과하다. 우리의 인연은 만나면서 시작되고, 헤어지면 끝난다. 그리고 이것의 반복이 우리네 삶이다. 그러니 만남에 애를 쓸 필요도, 헤어짐에 마음 애달파할 필요도 없다.
인연의 뿌리는 업이다. 그 업은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다. 업보를 피할 수는 없지만, 업보의 양과 질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다. 인연이 업이라면 그 업보는 피해 갈 수는 없겠지만, 서로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인연의 양과 질을 바꿀 수는 있다. 길에서 만난 인연이든, 어디에서 만난 인연이든, 그 인연을 잘 살피고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편안함과 행복함을 줄 수 있는 인연이 되길 마음 모아 기원한다. 이번 여정을 함께 한 귀한 인연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