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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파랑길

알쏭달쏭

by 걷고

빅토님이 길가에 떨어져 있는 단풍잎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5장을 들고 왔다. 단풍잎을 찾고 좋아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소녀다. 한 장씩 우리들에게 나눠주며 그 단풍잎을 나눠 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작고 빨간 단풍잎이 렛고님 것이라며 ‘작지만 단단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범일님과 바다님에게는 새빨간 단풍잎을 전달하며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아직 단풍색이 옅은 단풍잎이 자신의 것이라며 ‘아직 성장 중’이라고 했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어떤 단풍잎을 주고 어떤 얘기를 해줄까? 노랑과 빨강이 섞인 단풍잎을 주며 내게 던진 말은 ‘알쏭달쏭’이었다. ‘알쏭달쏭’이라는 표현이 참 ‘알쏭달쏭하다. 어떤 의미냐고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도 알쏭달쏭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얼른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이 알쏭달쏭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그럼 나는 이도저도 아닌 사람인가? 특별한 특징이나 특색도 없는 사람인가?


갑자기 안나푸르나에서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한 사람이 나를 앞에 두고 다른 두 명의 사람들에게 “걷고님은 줏대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아요. “라는 말을 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더군다나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이 아니었다. 기분이 상했지만 굳이 말대꾸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알쏭달쏭이라는 말을 듣고 ‘줏대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줏대가 없는 사람일까?


빅토님이 다른 세 명에게 부여한 의미는 그 사람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마치 캐리커처 화가가 사람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것처럼. 근데 나의 특성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아니면 특별한 것이 없었는지 아주 알쏭달쏭한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그 ‘알송달쏭’이라는 단어가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크다. 회사의 대표나 보스 격인 사람이 게스트로 나와서 직원이나 부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대부분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자신은 아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반면, 부하나 직원들은 그 반대라고 얘기를 한다. 직원들과 근무하는 현장을 녹화해서 보여주며 시청자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약 10여 년 전 상담 공부를 할 때 가족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그 당시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 있는 딸에게 물어보았다. “버럭 아빠”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관대한 사람”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딸에게 조금 서운했다. 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 적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생각은 달랐다. 딸에게 심어진 나의 이미지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아빠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딸에게 관대하고 편안한 아빠라고 착각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빅토님이 던진 알쏭달쏭이라는 단어 때문에 궁금해졌다. 동시에 걷기학교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을까? 걷기학교를 시작한 이유는 그나마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인 걷기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며 나를 포함해서 회원 모두가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나를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다. 그냥 나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 어떤 사람들은 나를 독단적인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친절하고 때로는 불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차가운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을 감추지만 금방 드러나는 사람이고, 화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화나는 모습이 드러나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은 회원들이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더라도 그 말이 일부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나를 전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모습 역시 나의 일부를 표현하고 있지만, 나의 모든 모습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이미지가 심어졌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가 아닐까 싶다. 이미 심어진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꾸준히 노력한다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이 먼저 느끼고 알아차릴 수도 있다. 심어진 이미지는 업보다. 그리고 변화된 모습은 업장소멸을 통해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난 결과물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친절하고 따뜻하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이유는 나 스스로 친절하거나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고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두드러진 특징도 없는 알쏭달쏭한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또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그냥 나와 만나고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고, 조금은 더 따뜻하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좋은 화두를 던져 준 빅토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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