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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여받(dannyabad)

by 걷고

ABC에서 하산하면서 로워시누아에서 하룻밤 머물며 쉬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서둘러 촘롱으로 이동했다. 촘롱에서 마지막 식사를 한 후에 약 350m 정도 되는 현수교를 건너며 ABC 일정을 마무리했다. 촘롱에서 모두 모여 그간 우리를 위해 애써 준 포터와 가이드, 그리고 요리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성의를 표현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ABC에 오르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네팔어로 ‘던여받’이라고 인사를 드렸다. ‘던여받’은 네팔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쓴 말이다. 사실 다른 말은 알지도 못하기에 쓸 수도 없을뿐더러 딱히 네팔어를 사용할 일도 없었다. 전체를 총괄했던 현지 매니저인 ‘딘’은 우리를 만나 행복했고, 함께 트레킹을 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그 진심이 전해졌는지, 우리 일행 중 일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서로를 안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우리끼리 서로 부둥켜안으며 힘든 여정을 모두 잘 마무리한 것에 대해 축하를 전하기도 했다.


포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이번 여정의 반은 비를 만났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등에 매고, 앞이마에 묶으며 걷는 모습은 보기 안타까웠다. 비록 이 일이 그들의 생활이고 직업이고 할 일이라고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지는 않는다. 특히 비가 올 때는 큰 비닐로 짐을 가리고 몸은 비를 맞으며 걷는다. 그들에게는 짐이 바로 일이기에 짐을 소중히 여기고 다룬다. 우리에게는 짐보다 자신이 우선이다. 짐을 메고 걷다가 그들이 쉬는 장소가 있다. 쉬면서 웃고 떠들고 즐겁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안심이 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괜히 마음이 아려온다. 20대에서 30대의 자식 같은 아이들이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버텨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부디 그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내생에는 좋은 세상을 만나 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가이드들이라고 해서 짐을 메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역할인 가이드 외에 포터의 일부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의 속도는 철저하게 우리의 속도에 맞춰져 있다. 자신들만의 보속은 유지할 수가 없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도 있고 맨 뒤에서 후미를 책임져주는 가이드도 있다. 이들은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해 준다. 우리가 힘들어하면 배낭을 대신 메고 걷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배낭을 앞뒤로 두 개씩 짊어지고 걷기도 한다. 단 한 번도 서두르라고 얘기하지도 않고, 급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지금도 ABC에 오를 때 맨 뒤에서 우리를 지켜주던 가이드의 모습이 떠오른다. 비가 오고 고산이어서 날씨도 춥고 몸은 비에 젖어 있다. 추위에 떨면서도 그 모습을 애써 감추기 위해 일부러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추우면 먼저 ABC로 가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 둘은 어느새 서로를 챙기는 사이가 되어있다. 그의 추위와 니의 추위가 다르지 않고,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도 다르지 않다.


메인 요리사는 말이 별로 없다. 마치 쿵후 달인처럼 무척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다. 말은 없지만, 음식 솜씨는 일품이다. 우리의 식사가 끝날 때쯤 되면 그는 그의 짐을 메고 이동한다. 다음 로지에서 우리를 위한 음식 준비를 위해 서둘러 떠나는 모습이다. 그 역시 짐을 메고 다닌다. 요리에 필요한 짐과 도구들일 것이다. 로지에서 요리사에게 음식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진 것도 좋은 일이다. 대부분 식당을 운영하는 로지에서 우리 같은 단체 트레커들에게 직접 음식을 팔면 이득이 클 텐데, 우리가 고용한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은 매우 흐뭇한 시스템이다.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취지의 시스템일 것이다. 그리고 볼 수는 없었지만, 매일 따뜻한 물을 만들어 배급해 주는 히팅맨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얼굴 없는 천사들이 트레커들의 보온을 위해 따뜻한 물을 만들고 나눠준다.


인사를 마친 후 하산하는데 저 아래에 긴 현수교가 보인다. 처음 보는 긴 현수교를 건너며 약간 무섭기도 했다. 조금씩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며 애써 무서움을 물리치고 이 다리를 건너는 일행들을 위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맨 뒤에 오는 ‘딘과 그의 ’ 장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리 끝에는 ’SEE YOU AGAIN, ANNAPURNA BASE CAMP TREK"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드디어 안나푸르나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그 문을 통과한 후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지프차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 차에 나눠 타고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날씨 탓에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프차로 이동하는 중간에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무너진 산길을 보수하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기 때문이었다. 오르는 차나 내려가는 차 모두 멈춰 서서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와 다른 문화를 실감하기도 했다. 공사가 끝나고 길이 열리자 교행 하는 차들이 좁은 산길을 아찔하게 이동하고, 서로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기사들끼리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이들의 여유로운 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던여받! 참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우리의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안나푸르나도 마지막 날 우리를 축하하며 맑은 날씨로 화답을 해 주었다. 로지에서 근무하고, 관리하고 수고를 해 주시는 많은 분들에게도 ‘던여받’을 외쳐본다. 함께 걸었던 일행들에게도 ‘던여받’이라고 인사를 하고 싶다. 덕분에 행복했고, 덕분에 잘 걸었다고. 이 여정을 총괄해서 준비해 준 어나집 대표님께도 ‘던여받’이라고 인사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나의 다리와 몸, 건강한 신체에게도 ‘던여받’이라고 인사하고 싶다. 아프지도 않았고, 마칠 때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건강한 신체 덕분이다. 걷기학교라는 단체가 없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인데, 걷기학교 덕분에 16명이 다녀올 수 있었고, 길벗의 도움과 격려와 응원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또한 우리의 여정을 허락해 주고, 축하해 주고, 격려해 준 우리의 가족 모든 분들에게도 ‘던여받’이라는 인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온 세상 ‘던여받’밖에 없는 느낌이다. 이 마음 하나만 갖고 살아가도 세상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트레킹 다녀온 지 3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던여받’은 쉽게 잊히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지금 살고 있고, 살아내고 있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 또한 ‘던여받’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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