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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Nirvana)

by 걷고

최근에 홍콩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서 오늘 현재 사망자가 83명으로 늘었다. 실종자 수는 변동 사항이 있어서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뉴스에 나오는 유가족들이나 이재민들의 모습을 보면 처첨하다. 가족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은 애통해하고, 이재민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을 걱정하고 있다. 갑자기 옆에 있던 가족이 사라진 상실의 슬픔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또한 갑자기 전 재산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의 막막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화재는 가족, 재산 등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을 앗아간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이 가족과 재산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건강, 옷, 음식 등을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결국 재산과 연결되어 있다. 유가족과 이재민들에게 마음으로 잠시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건강하고 평안하길 기원한다.


고층 아파트 화재 현장을 뉴스로 보며 묘법연화경 비유품에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의미한다. 욕계는 욕심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의미하고, 색계는 아직 깨닫지 못해 미세한 물질이 남아있는 정신적 영역을 의미하고, 무색계는 물질의 영향에서 벗어난 순순한 정신세계를 의미한다. 화택은 중생의 세계가 마치 불타는 집 속에 있다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욕심, 성냄과 어리석음의 불이 우리네 삶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리불아, 옛날 어느 나라의 한 마을에 부유한 노인이 살았다. (중략) 그 집에 갑자기 불이 나서 불길에 에워싸여있지만, 그 노인만 집에 불이 난 것을 보았을 뿐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고 평소처럼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중략) 그래서 노인은 자식들에게 집이 불타고 있으니 어서 빠져나가라고 외쳤다. 하지만 어린 자식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집에서 나가려 하지 않았다.” (법화경)


우리의 삶 자체가 화택이다. 불이 난 집안에 살면서도 불이 났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어간다. 불이 났을 때 가장 우선 시 해야 할 일은 불을 끄는 일이다. 누가 불을 냈는지, 어떤 마음으로 불을 붙였는지, 어떤 재료를 사용해서 불을 만들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일단 불을 끈 후에 따져도 될 일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세 가지 독, 즉 삼독(三毒)이 있다고 불교에서는 얘기한다. 그 삼독이 바로 화재의 원인이고, 우리는 그 화재가 난 집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삼독은 욕심, 성냄과 어리석음이다. 이 중 가장 큰 문제가 어리석음이다. 어리석기에 욕심을 내고, 화를 낸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는 일이 수행이고 마음공부다. 욕심과 성냄 자체를 누그러뜨린다고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보이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을 뿐 늘 불씨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다 미세한 바람만 불어도 그 불씨는 금방 불타오른다. 그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은 이유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 생각, 판단으로 바라보는 주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관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런 자신이 바로 자신의 실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나’가 있기에, 나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화를 내고, 그 욕심이 어리석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허상인 실체를 점점 더 실체화하여 아상을 더 높게 쌓아나간다. 그리고는 화택에서 살다가 불에 타 죽어간다. 불쌍한 중생의 삶이다.


ABC를 마치고 카트만두에서 머물렀던 호텔 이름이 니르바나(Nirvana)다. 묘한 우연이다. 아니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니르바나는 산스크리트어로 ‘불을 끄다’라는 의미다. 즉 삼독의 불을 끈 후 느끼는 고요한 세계를 의미한다. 열반적정이 바로 니르바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해탈의 상태이다. 번뇌는 바로 삼독이다. 그리고 이 삼독이 사라지면 세상 사 시끄러울 일이 없고, 마음 또한 흔들릴 일이 없어지니, 늘 평온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감정과 감각은 느끼지만, 이런 경계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이 열반적정의 세계다. 일상사의 즐겁거나 괴로운 상황은 맞이하되, 그 상황을 피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의 세계가 바로 열반적정의 세계다. 그렇다면 우리가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을 니르바나 호텔에서 머물렀다는 것은 우리 모두 이미 열반적정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 호텔에 머물며 ABC 트레킹을 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우리를 니르바나로 이끌 것이라는 부처님의 수기일까?


이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한다. 모두 그물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상관없이 보이는 상황도 그 뿌리를 찾아들어가면 연결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우연은 없고, 세상사 필연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굳이 과거의 모든 것을 뒤지며 우연의 필연성을 찾아낼 필요는 없다. 그냥 주어진 모든 것을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면 된다. 주어진 상황이 불편하거나 거북해도 모두 업보려니 하고 받아들이며 살면 된다. 그 업보를 보며 화를 내거나, 탐욕을 부리는 어리석은 짓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시간이 흘러 열반적정의 세계를 맞이할 수 있다. 결국 삶은 이렇다. 과정이 어떻든, 또는 결과가 어떻든, 일단 주어진 모든 것은 나의 업보이니 그 업보에 끌려다니지 않고 받아들이며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싫다고 밀어내지도 말고, 좋다고 놓치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흔들리는 배를 타고 마음의 사소한 흔들림 없이 바다를 건너면 된다. 파도가 요동친다고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너무 고요하다고 심심하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으며, 비가 온다고 짜증을 낼 필요도 없다.


ABC 트레킹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마다 또 단체로 맞이한 상황들이 있다. 그 상황들이 때로는 자신의 입맛에 맞을 수도 있고, 때로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안나푸르나 주봉의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비록 패러글라이딩을 하지는 못했지만, 삼겹살 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마지막 날 묵은 니르바나 호텔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져주었다. ABC 다녀온 후 니르바나는 얻었는지, 아니면 지금부터 니르바나를 얻기 위해 삼독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어떤가? 삼독을 확실하게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삼독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번 일정의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날 묵었던 니르바나 호텔이 선물해 준 니르바나 세계로의 안내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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