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종각 보신각 앞에서 만났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명예퇴직 후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다. 어제 만나 들어보니 공장 7년 근무한 후 퇴직했고, 지금은 빌딩 시설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시설 관리자가 되기 위해 그간 전기 기술자, 화재 예방 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나이 들어가면서 체력이 저하되고, 자신의 체력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했고, 앞으로 이 일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가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참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다. 그 친구의 당당한 인생 2막이 보기 좋다. 식사와 차를 마신 후 보신각 근처 중고 서점에 들러 시집을 몇 권 구입하겠다고 했다. 틈틈이 시를 읽고 쓰고 있는 시인이자 작가인 이 친구의 인생 2막은 풍요롭고 아름답고 당당하다.
차를 마시며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나를 만나 얘기하면 밝은 얘기를 해서 기분이 좋다는 얘기다. 지인들을 만나면 걱정을 많이 하고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굳이 어두운 얘기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딱히 지금 어두운 일도 없다. 걷고, 글 쓰고, 명상하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백수에게 어두운 일이 있을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나의 삶이 어둡거나 밝거나 좋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 주어진 일이 때로는 불편할 수도 또는 행복할 수도 있지만, 이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면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다녀왔던 안나푸르나 얘기, 요즘 걷고 있는 남파랑길 얘기, 조만간 출간될 책 얘기 등을 했다. 나의 일상을 그냥 편안하고 가감 없이 얘기했고, 그 일 자체가 어둡지 않아 다행이고, 그런 나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보신각 맞은편에 종로타워가 있다. 사회에서 만난 한 친구가 떠올랐다. 20여 년 인연을 이어온 친구다. 그 친구 사무실이 종로 타워에 있을 때 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시내 들릴 일이 많을 때였다. 가끔 시원하거나 따뜻한 사무실에서 쉬고 싶을 때 전화를 하면 단 한 번도 바쁘다는 얘기도 하지 않고 늘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대접해 주었던 참 고마운 친구다. 요즘 들어 자주 만나거나 연락을 하지 못했다. 종로 타워를 보며 그 친구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역시 반갑게 맞이하며 미리 전화를 했다면 점심 같이 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올해 안에 송년회 같이 하자며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젯밤에 약속을 잡자며 카톡이 왔다. 그 친구와 함께 만나는 다른 친구가 있다. 우리 셋이 한 때는 한 달에 두어 번씩 어울려 술 마시고 어울렸던 친구들이다. 이제 모두 나이 들어가면서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고, 술의 양도 많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1년에 두세 번 정도 만나는 거 같다. 오랜만에 셋이 만나기로 약속이 잡혔다. 그 만남이 기대 된다.
친구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을 친구라 할 수 있을까? 서로를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언제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서로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황을 마음속으로 이해하며 아무 일 없듯이 서로 등을 두드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글을 쓰다 보니 친구에 대한 한 가지 답이 나왔다. 굳이 말이 필요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표현하는 방식이 과하지 않지만 이미 그 안에 아끼고 존중하고 걱정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친구다. 이런 친구 서너 명만 있어도 잘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런 친구가 최소한 대여섯 명은 있으니 무척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귀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의 모습 그대로 또는 조금은 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친구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든다. 반갑고 고맙다,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