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성욱 Aug 24. 2024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

- 8

  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어. 연습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녀가 내 곁에 없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이제 그만 달릴래요. 걱정하는 할아버지와 삼촌들에게 말했지. 그들은 학교에 연락을 했어. 교장 선생님과 감독님이 찾아왔어. 손에는 과자 같은 것이 들려 있었지. 나는 그녀 앞에 놓여 있는 오렌지 주스만 바라보고 있었어. 눈을 마주치고 싶은 생각이 없었거든. 얘야, 감독님이 잘못했어. 나는 아가에서 얘로 다시 바뀌어 있었지. 나는 주스에게 말했어. 무얼 잘못했는데요. 그녀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지. 우리 학교 재단이 육상 꿈나무 육성 학교로 지정됐단다. 네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야. 그런데 네가 이렇게 갑자기 그만둔다고 해 버리면 교장 선생님 얼굴이 뭐가 되겠어. 그녀의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 그건 말이 아니었어. 그냥 소리야. 소리. 제트기가 깨부수던 그런 소리. 고개를 들어 쳐다본 그녀의 얼굴은 로봇 같았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아요.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옥상으로 올라갔지. 옥상에 선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녀가 얼른 떠나기를 기다렸어. 아무도 내 편이 아니었어. 등 뒤로 발소리가 들려왔어. 어쩌면 그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나에게 사과를 할지도 모른다고. 뜻밖에도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사람은 할아버지야. 얘야, 그 녀석들은 쫓아냈단다. 과연 그녀와 교장 선생님이 집을 나오는 모습이 보였어. 교장 선생님의 까진 머리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어. 나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를 쳐다봤어. 할아버지. 내가 부르자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어.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지. 나는 네가 왜 달리려고 했는지는 모른단다. 입에서는 한숨처럼 길게 연기가 뿜어져 나왔어. 하지만 말이야, 어떤 것이든 끝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단다. 그러지 않으면 후회를 하게 되거든. 거기가 너의 끝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눈을 감았어. 눈앞에 하얀 선이 떠올랐지. 아빠가 나를 봤다면 많이 실망했겠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어. 나는 뭘 보고 있었던 걸까요. 눈을 떴을 때, 어느새 사위는 어두워져 있었지. 시간을 통과해 버린 기분이 들었어.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나는 멍청했던 거야. 애초에 감독님을 위해서 달린 것이 아니었는데. 엄마, 아빠 미안해요. 동생아 미안해. 내가 멍청했어. 잠깐 미쳤었나 봐. 눈을 깜빡였지. 생각했어. 도대체 사랑이 뭐라고 기본을 망각할 수가 있는 거지.

  이 학년이 되었어. 나는 텔레비전에 나왔지. 휴먼 다큐멘터리였어. 감독님이 제보했다고 했어. 삼촌들은 네가 방송에 나가면 여기저기서 후원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어. 달리기에도 의외로 돈이 많이 든다고 했지. 육상화 같은 것이 은근히 비싸더구나. 식구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었어. 할아버지는 말했지. 우리 가문에서도 드디어 스타가 나오는구나.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나를 찍었지. 나는 항상 뛰어다녔기 때문에 힘들어했어. 얘야, 조금 천천히 갈 수 없겠니. 나는 뒤를 돌아봐. 안 돼요. 엄마, 아빠가 기다려요. 프로듀서 남자는 그 말을 대단히 좋아했어. 타이틀을 ‘21세기 하니’라고 짓겠다고 말했어. 하니는 나처럼 죽은 부모님을 위해 뛰는 옛날 만화 주인공이래. 만화에서 하니는 사라지나요? 프로듀서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해했어. 감독님이 인터뷰를 했어. 프로듀서는 인터뷰하는 내내 그녀의 가슴을 봤지. 그는 내가 신입생들을 가르치는 장면을 찍고 싶어 했어. 그게 나를 책임감이 있어 보이게 할 거라고 말했어. 감독님은 나에게 아이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라고 했어. 그러다 보면 너의 단점이 보일 거라고. 아이들이 뛰었어. 나는 화가 나서 소리쳐. 너희들은 왜 그렇게 유령처럼 달리는 거야. 걔들은 정말 유령 같지. 빨라지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프로듀서가 손을 내저었어. 얘야, 그건 정신병자 같잖아. 그가 안경을 고쳐 썼어. 이러면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고 했어. 달리기를 할 때 마음가짐을 일러 주라고 말했지. 나는 말해. 걔들은 절실하지 않아요. 심지어 사라지는 것을 무서워하잖아요. 그런 애들이 어떻게 빨라지겠어요. 프로듀서는 당황해. 감독님이 좀 도와주시죠. 감독님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사를 줬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가장 무서운 귀신이 뒤에서 온다고 생각하라고. 네가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뒤에 있다고 말하라고. 그런 거짓말을 아이들에게 말하라고 해. 프로듀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 좋네요. 자 그걸로 다시 한번 갑시다.


이전 08화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