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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욱 Aug 24. 2024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

- 9

  나는 감독님의 말대로 해. 하지만 그건 틀렸어. 더 빠르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해. 나는 지금 쫓고 있다고. 소리를 쫓고 있다고. 빛을 쫓고 있다고. 트럭을 쫓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해. 내 앞에는 그 무엇도 서지 못하게 하겠다고. 아무도 나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거라고. 그래야만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거야.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니까 감독님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야. 프로듀서가 감독님에게 조만간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말해. 감독님은 부끄러워 해. 나는 얼굴이 발개진 감독님을 바라봐. 그녀가 내 눈을 피해. 그게 틀린 거야. 마음속으로 말하지. 감독님은 항상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평생 저처럼 빠르지는 못했을 거예요. 가슴은 그저 핑계일 뿐이죠. 이제 그 여자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어. 프로듀서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그 여자는 앞으로도 점점 느려질 거야.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상쾌한데 조금 쓴 박하사탕 기분이야. 그날 마지막 장면을 찍었어. 노을을 향해서 내가 달리는 거야. 카메라는 뒤에서부터 나를 찍어. 프로듀서는 내가 달리다가 어느 순간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고 말했어.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어. 나는 달렸지. 지는 해가 온몸을 감싸. 뒤로부터 프로듀서의 시답잖은 농담이 들려. 감독님의 웃음소리가 따라붙지. 나는 더 급하게 발을 놀려. 이제부터는 정말로 혼자 하는 달리기가 될 거라고 나는 생각해. 여러분, 드디어 나는 정말 혼자가 됐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는 혼자여도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아요. 아니 고독하지만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원래 인생이 그렇잖아요. 그렇게 나는 지금 달리고 있는 거야. 오늘도.     


  또다시 얼굴들이 보여. 할아버지가 관중석에서 손을 흔들어. 삼촌이 춤을 추고 있어. 친절한 미용실 언니가 환하게 웃어. 감독님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프로듀서가 그녀의 옆에 서 있지. 얼굴들이 물기를 먹으며 쪼그라들어. 쪽팔려. 망했어.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 아무도 끊지 않은 하얀색 줄이야. 나는 알고 있어. 저건 허상이야. 거짓말이야. 오늘도 실패했어. 나는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어. 잘못했어. 사라지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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