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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욱 Aug 24. 2024

결승선이 눈앞에 있어

- 4

  나는 그 순간이 좋았어. 출발선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시간.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렸어. 끊임없이 되뇌어. 폭발할 거야. 부서질 거야. 사라질 거야. 누구도 막을 수 없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알알이 느껴져. 깃발이 올라가. 나는 폭발해.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려. 숨을 쉬지 마. 나는 지금 죽은 것이라고 생각해. 십여 초의 시간 동안 존재를 지우는 거야. 허벅지를 지면과 수평이 될 정도로 들어 올려. 지면을 마주 보도록 해. 너의 허벅지는 지금 지면과 대치하는 거야. 세차게 발을 굴려. 더 빠르게. 그녀는 누구보다 혹독했어. 연습하는 내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그런 점이 좋았어. 상체를 더 숙여야지. 바람을 파고든다는 느낌으로. 그녀가 고함쳐. 흐느적거리지 말라니까. 정신을 차려. 실패야. 바람에 정신이 팔렸어. 내가 느껴야 하는 것은 오직 나의 몸이야. 또 몸이 뜨잖아. 고개를 들어. 결승선이 보여. 안 돼. 저건 거짓이야. 한 번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잡기엔 시간이 너무 짧아. 잇새로 숨이 새. 몸이 불어나는 것을 느껴. 나는 느려져. 그런 꼴로 결승선을 통과해. 감독님이 실망한 표정으로 다가와. 얘야, 생각하지 마. 생각을 없애. 몸에 귀를 기울여.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한숨소리가 들려오지. 됐다. 오늘은 이만하고 돌아가자꾸나. 나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봐. 실망한 표정이야. 감독님 한 번만요. 한 번만 더 할게요. 그녀가 웃어. 너는 정말로 빨라지고 싶은가 보구나.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나는 그 순간을 좋아해. 얘야, 이번에는 결승선에 현혹되면 안 된단다. 또 자세가 흐트러졌잖아. 너의 결승선은 거기가 아니잖니. 그건 달리기를 위한 달리기밖에 되지 않아. 맞아. 그건 나의 결승선이 아니야. 또 속은 거야. 내가 말하지. 이번에는 속지 않을게요. 그래, 한 번만 더 해 보자. 그녀가 또다시 출발을 알리는 깃발을 높이 들어. 깃발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 순간 오직 나에게 깃발을 들어 보이기 위해 거기에 서 있어. 가슴이 두근거려. 그걸 시적이라고 부르기로 했지. 시적이야. 나는 순조롭게 빨라져 갔어.

  처음으로 일 등을 한 날이 기억나. 오 학년 때였어. 누구보다도 빨랐어. 아무도 내 앞에 서 달리지 못한 거야. 잘했다. 감독님이 달려왔어. 감독님은 제가 보이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어. 내 몸에서 빛이 난다고 말했어. 분했어. 억울했어. 비참했어. 그렇게나 빨리 달렸는데 왜 내가 보여요. 뭐야 이게, 뭐야 이게. 사라지지도 않았잖아. 나는 울었어. 펑펑 울었어. 사람들은 내가 부모님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오해했어. 나는 그 길로 달려서 대회장을 빠져나왔지. 아무도 날 쫓아오지 못해. 나는 가장 빠르니까. 그런 기분으로 시상대에 오르기는 싫었어. 사라지지도 못했는데 상 같은 거 알 게 뭐람. 눈물을 흘리며 달렸어. 아빠, 엄마 미안해요. 저는 실패했어요. 사라질 수 없었어요. 아직도 충분히 빠르지 못한가 봐요. 집에 도착해 보니 어떻게 알았는지 친척 어른들이 모두 와 있었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두 박수를 쳤어. 귀가 아프도록. 나는 고함을 질렀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세요.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려고 이러세요. 할아버지가 말했어. 우리 가문에서 달리기 선수가 나오다니. 네 아버지가 있었으면 많이 자랑스러워했을 게다. 나는 속으로 말했어. 퍽이나. 아빠 얘기를 꺼내다니. 나는 또 울었어. 아마 그날은 내가 두 번째로 많이 운 날이었을 거야. 할아버지가 날 안아 줬어.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빠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알고 있어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어요. 할아버지는 내가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어. 하지만 이렇게나 느린 걸요. 삼촌이 말했어. 무슨 소리니 너는 우리 지역의 초등학교 오 학년 중에 가장 빠른 아이란다. 나는 말했어. 아직 충분히 빠르지 않아요.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어요. 모두가 나에게 크게 될 계집애라고 했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으로 들어가 가족들의 사진을 보며 울었어. 여러분 미안해요. 나는 아직 더 빨라야 하나 봐요. 다음엔 꼭. 그러다 잠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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