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소설 사이
눈을 떠요... 그리고 영원히 감기기 전에 그 눈으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요. 그리고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쓸쓸한 노래를 연주한다. 베르너에겐 그 노래가 어두운 강을 떠도는 황금 배처럼, 졸페라인을 아름답게 바꾸어 주는 화음의 흐름으로 들린다. 집들이 안개로 바뀌고, 탄갱 속이 채워지며, 공장의 높은 굴뚝이 떨어지고, 태고의 바다가 거리마다 스며들어, 공기가 가능성을 담고 흐른다. (p.82, 소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중)
독일의 고아 소년 베르너(루이스 호프만)와 프랑스의 시각장애 소녀 마리로르(아리아 미아 로버티)가 주인공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엔서니 도어의 동명 소설이자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All the Light We Cannot See"를 원작으로 한다. 독일군을 피해 파리에서 프랑스 북서부 해안 도시 ‘생말로'로 아버지와 함께 피난을 왔지만 결국 아버지와 헤어져야 했던 마리로르. 부모를 잃고 여동생 유타와 보육원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2차 세계대전의 중심에 들어서게 된 소년 베르너. 이야기는 각 인물을 중심으로 오가며 펼쳐지다 결국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건 우연히 스친 순간이었다. 넷플릭스의 신작들을 훑던 내 시선에 히틀러 독재 시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독일군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들어왔고, 막연한 기대감과 함께 보기 시작한 4부작 드라마는, 일상으로 빠져나오기 힘들 만큼의 강렬한 서사로 나를 끌어들였다.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미학적으로 느껴진 원작의 제목도 거기에 힘을 보태주는 듯했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우리가 행해온 대로 권력을 취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 요제프 괴벨스
아돌프 히틀러의 헌신적인 수행자이자 반대유대주의로 악명을 날렸던 괴벨스는 라디오를 '국민의 무기'라 칭송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로 독일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라디오를 활용했다. ‘국민수신기'라 불리는 라디오를 보급함으로써 국민을 상대로 끊임없이 전쟁의 상황을 왜곡하고, 나치의 이념을 주입했으며 국민의 사기 진작을 위한 메시지들을 실어 날랐다. 즉, 라디오는 히틀러정권의 대국민 가스라이팅을 위한 훌륭한 수단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의 주파수를 수신하는 라디오는 검열과 압수, 처형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소년 베르너에게 라디오는 절망적인 현실을 벗어나 희망을 꿈꾸게 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빛'과도 같은 존재였다. 국경과 바다를 넘어, 나치 정부가 쓸모없는 것이라 칭하던 아름다움에 닿게 하는 빛..
베르너는 눈을 깜빡인다. 그는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삼키지 않으면 안 된다. 두 라틴 십자가 바로 밑에 놓인 요람 두 개, 뚜껑이 열린 스토브 속에 떠다니는 먼지, 열두 겹으로 칠한 페인트가 벗어지고 있는 굽도리 널. 싱크대 위에 걸린, 엘레나 아주머니가 캔버스에 바늘로 수놓은 눈 쌓인 알자스 마을. 거실은 지금껏 그랬듯 무엇하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제 음악이 있다. 마치, 베르너의 머릿속에서 깨알만큼 작은 오케스트라가 부르르 떨쳐 일어난 것만 같다. (p. 57)
여덟 살 소년 베르너가 운명처럼 보육원 창고에서 라디오를 처음 맞닥뜨린 순간, 고장 난 낡은 라디오를 기적처럼 살려 낸 그의 재능이 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눈 뜨게 한 그때, 베르너는 변한 것 하나 없는 보육원의 거실 한 편에 앉아,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름다움에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그러나 소년은 차마 알지 못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을 온몸으로 껴안게 해 준 라디오가 결국 그를 전쟁터로, 그의 생을 그가 전혀 뜻하지 않았던 곳으로 밀어내리라는 것을. 보육원에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무렵, 한 프랑스 남자의 방송이 그와 동생을 금지된 아름다운 세상 곳곳으로 날려 보내주던 그 순간에도.
뇌는 완전한 암흑 속에 갇혀 있습니다... 뇌는 두개골 속 깨끗한 액체 속에 떠 있지, 빛 속에 있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뇌가 정신 속에 지어 올리는 세계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뇌는 색과 움직임으로 넘실거립니다. 그런데 뇌는 단 한 점의 빛도 없이 살아가면서 무슨 수로 우리에게 빛으로 가득한 세계를 지어 주는 것일까요? (p. 80)
어린 시절 눈이 멀게 된 마리로르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서 불쑥 테이블 다리 하나가 나타나 그녀의 정강이를 후벼 파는 곳이다. 그러나 그녀의 꿈속에서, 상상 속에서, 모든 것엔 색이 있다. 아버지가 선물해 준 "해저 2만 리"를 점자가 닳도록 읽으며 그녀는 물리적으로 '눈 뜬 자'들이 보지 못하는 심해의 세상에서 주인공이 된다. 단 한 점의 빛도 가지지 못했지만 빛으로 가득한 세상을 선사해 주는 뇌처럼,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은 수백 수천 가지 희망의 빛깔로 그녀를 채워준다. 수학 상으로는 어떤 빛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의 빛은 수학과 과학 너머 광활한 총천연색 세상을 품고 있다. 복숭아 향기는 선연히 불그스름한 구름을 피워 내고, 밤하늘은 고운 체에 쳐진 달빛이 눈처럼 흩뿌려지는 풍경을 무한히 펼쳐 보인다.
전쟁으로 인해 아빠와 헤어져야만 했던 소녀 마리로르는 아빠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마리로르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드라마에서는, 그녀의 라디오 방송이 극 전체의 중심축 역할을 하지만, 극 마지막까지 그녀는 아빠와 재회하지 못한다. 대신 그녀의 목소리는 소년 베르너에게 또 다른 희망의 빛이 되어 주고, 먼 곳에 떨어져 있던 그를 이끌어 마침내 그들이 한 공간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하게 한다.
라디오를 다루는 베르너의 재능은 그를 보육원에서 국립정치교육원(나치 독일의 엘리트 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결국엔 나치군 통신병의 삶으로 내던진다. 갱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악몽과 보육원을 벗어나 희망을 꿈꾸던 그가, 적군의 무선신호를 추적하여 적을 타격하는 작전을 지원하는 독일군 병사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잔혹성에 대한 환멸과 인간성 상실 사이에서 번민하던 베르너에게, 소녀의 방송은 추적해 파괴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빛이다.
'어둠은 단 일 초도 지속될 수 없다. 빛을 밝힌다면..'(드라마 속 마리로르의 내레이션 중)
전쟁의 포화가 퍼붓는 풍경 속에서도 드뷔시의 '달빛'은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흐른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만 결국 가장 큰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에 닿아 있다. 어둠으로 가득한 것 같은 현실에도 빛은 스며있다. 지상의 어느 곳에도 완벽한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 빛을 볼 수 있다면 어둠은 결코 우리를 지배할 수 없을 것이다.
팔백 페이지에 육박하는 소설은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독특한 작가의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작 소설은 각 인물 서사와 심리가 깊이 있게 다루어졌기에, 넷플릭스의 4부작 드라마와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소설 초반 인물, 연도가 교차하여 진행되는 이야기가 독자로서의 도전의식을 북돋는다면, 드라마는 초반부터 몰입하게 만드는 서사 전개를 보인다. 비극적 요소를 품은 엔딩 때문에 여운이 짙은 소설에 비해 드라마의 마지막은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사랑을 그려낸다.
원작에서는 주인공들이 외모적으로 주근깨가 많고(마리로르), 새하얀 머리에 왜소한 체형을 지닌(베르너) 십 대 소년, 소녀로 묘사되고 있지만, 드라마상에서는 이십 대에 가까워 보이는, 퍽 매력적 외양을 지닌 청년들이다. 마리로르역의 여배우는 실제로도 시각 장애인이며 천대 일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그녀 생애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다고 한다. (실제 그녀는 이탈리아계 혈통이라 소설 속에서 상상되는, 프랑스 소녀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프랑스를 주무대로 하고 있는 만큼 중간중간 나치 독일의 국립정치학교와 전쟁 씬들이 영화 속 또 다른 다큐를 보는 듯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베르너가 국립정치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인종 검사를 받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 눈으로 들어가는 빛의 모든 입자.... 몸은 결코 순수해질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로 총통은 그들의 코 길이를 재고, 그들의 머리 색깔을 계측하는 것이라고 사령관은 단언한다. (2권 p.100)
나치 독일은 순수 아리아인종만을 국립정치학교의 입학생으로 받기 위해 코의 길이나 각도, 홍채의 빛깔, 머리 색 등을 꼼꼼하게 검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잣대로 인종을 명확히 구분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과연 이 지구상에 순수 혈통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천천히, 자유로이 흘러갈 상상력을 위해서는 소설을 먼저 읽어 보는 것이 좋을 터이나, 바쁜 일상에서 완독 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라 드라마를 따라가며 반대로 소설적 설정을 상상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독특하고 섬세한 문체와 슬픔의 여운이 긴 소설과, 시각을 사로잡는 영상미와 희망적 결말 사이, 마음이 기우는 쪽을 우선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고 나서 쉬이 가시지 않는 여운에 마음이 자꾸만 흔들린다면, 그때 소설을(드라마를) 보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