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오늘도 새벽부터 등교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얼마 전부터 딸은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여는 사람이 되었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시계 알람이 몇 개씩 울려대야 가까스로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등교 준비를 하던 아이였건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 또롱또롱하고 예민한 눈으로 등교 준비에 임한다.
차가운 아침 공기도, 엄마의 끈질긴 잔소리도 깨우지 못하는 딸의 정신을 번뜩이게 만드는 건 바로 화장대 위를 가지런히 장식하고 있는, 향기도 고운 핑크빛 용기들이다. 저 블링블링한 용기들 속에 정확히 무엇이 담겨 있는지 엄마인 나는 알지 못한다. 딸이 자신을 꾸미는 데 - 그것도 무려 아침 두 시간을! - 필요한 것들임에는 분명한데, 정확한 용도를 알기에는 최신 화장품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 한때는 나도 꽤나 멋을 내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화장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 시간은 고스란히, 아니 갑절이 되어, 딸에게로 넘어간 듯하다.
이제는 '부먹, 찍먹'이라는 용어에 익숙한 엄마 앞에서 딸은 '잘먹'는 화장품과 '안먹'는 화장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엄마는 왜 변변한 화장품 하나 사지 않느냐고, 엄마의 피부톤을 잘 살려내 줄 화장품을 고르지 않느냐고 면박을 준다. 짝꿍한테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화장에 관한 지적질을 딸에게서 들은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어리둥절해지다가, 어느 순간엔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딸은 한 달 용돈의 팔 할 이상을 별 필요 없어 보이는 화장품 구입하는 데 쓰면서 끊임없이 용돈이 부족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물론 피 같은 아침 두 시간을 오롯이 화장하는 것으로 날려 보내는 것은 아니다. 새벽마다 숱마저 많은 그 긴 머리를 정성스레 감고 말려, 스튜어디스 언니들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단정한 똥머리를 만들어 내는 데에 딸은 아침 먹을 시간마저 양보한다. 과일 쪼가리들이면 점심 급식까지 버티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요란하게 날아드는 드라이어 소리에 그제야 게슴츠레한 눈으로 부스스 일어나는 건 딸이 아닌 엄마다.
반짝이는 시절을 건너온 중년의 엄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로 다가서고 있는 딸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다가, 끝내는 세월이 주는 감동과 페이소스에 어색한 미소를 걸고서는, 마치 21세기 버전화 된 자신의 청소년기를 보듯 어린 딸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학교를 가는 건지 비행을 하러 나가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단아한 머리를 하고선, 평소에 목격하기 힘든 세심한 손끝으로 화장하는 딸을 보며 대여섯 살 무렵의 그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하며 아침부터 주책맞은 아련함에 젖어든다.
이제 딸의 친구들에게 밀려 딸과 함께 외출 한번 나가기 쉽지 않지만, 감사하게도 딸이 엄마를 간절하게 찾는 시간은 때때로 찾아온다. 사실 온전히 감사함만을 느끼기에는 딸은 엄마가 가진 돈을, 엄마의 시간과 노동력을 갈구하는 듯 보인다. 그래도 딸이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에 잠시 바보가 되어버린 엄마는 그마저도 좋다. '올리브 떙' 한 귀퉁이에 엄마를 세워두고선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화장품 테스트를 한답시고 자신의 손등에 색색깔로 열심히 그림을 그려대는 딸을 보며, 저렇게라도 (그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버럭, 소리를 높이는 순간이 있다. 인파로 북적이는 매장에서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딸을 발견할 때다. 스리슬쩍 새치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충분히 약지 못한 딸은, 그저 자기 차례가 언제고 오겠거니, 멍하니 기다리고 서 있을 뿐이다.
"네가 먼저 왔잖아?! 얼른 저기 붙어 서.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하다가 가진 거 다 뺏기며 사는 수가 있어!"
이번엔 속세의 법칙에 익숙한 엄마가 딸에게 냉큼 핀잔을 준다. 딸은 세련된 화장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엄마의 호들갑이 창피하다며 입을 좀 다물어 달라고 나름 정중하게, 하지만 짜증 섞인, 부탁을 한다. 그러나 엄마는 잠자코 있을 생각이 조금도 없다.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타인을 이기지는 못할망정, 딸이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만큼은 막아주고 싶어서다.
가게를 나선 후로도 한동안 딸의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다시는 같이 오자는 소리 안 하려나?' 설핏 우려를 하면서도 엄마의 입가엔 미소가 숨겨지질 않는다. 물주가 되어 올리브 땡의 젊은이들 사이를 하릴없이 오가더라도, 엄마는 딸과 함께 나서는 이 시간이 좋다. 늦여름밤의 정취는 딸과 둘이서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다. 봉투 가득 새 화장품을 채워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일 아침 딸의 화장이, 등교 준비에 들일 시간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진다. 앞으로 몇 년은 더 딸이 멋 내는 시간의 조력자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