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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인지감수성이 나의 세상을 넓히리니

by 지뉴

흔히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혹은 '사람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이 말에 동의한다. 분명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람의 어떤 면모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감수성'만큼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올가을 단풍이 짙어가는 산책길에서 굳어지고 있다. 거의 매일 나서는 밤 산책길에서 이 가을이, 가을이 묻어나는 이 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짝꿍과 나는 함께 감탄을 내뱉는다. 어찌 된 일인지, 계절이 주는 감동에 토해내는 감탄은 날마다 새롭고, 그 감탄의 끝 어느 순간 우리는 의구심에 빠져들어 같은 질문을 내던지게 된다.

'작년 가을의 우리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계절 풍경이 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변한 걸까?'


아무리 기후 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도, 작년 이맘때쯤의 거리 풍경과 지금의 그것 사이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을 테다.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붉디붉은 빛으로 천연염색되는 거리로 시작해 아름답고도 스산하게 낙하하는 이파리들로 마감되는 가을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한 것이고.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든 우리가 변한 것일 텐데, 그 변화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가 불현듯, 몹시도 궁금해진 것이다. 그것도 나와 짝꿍이 동시에 말이다.

생각을 곱씹고 곱씹어 봐도 결론은 한 곳으로 모아진다. 작년 여름 하와이를 다녀온 후, 나와 짝꿍의 감수성에는 아무래도 묘한 틈이 생겨나 버린 것 같다. 그 틈으로 새로운 감수성이 비집고 들어와 풍경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계절인지감수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 하와이에서 우리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빼앗았던 풍경은, 빅아일랜드의 '힐로(Hilo)'와 '코나(Kona)' 지역이었는데, 그때 우리가 받았던 감흥이 하와이에서 태평양을 건너 이곳까지 우리를 따라온 것이라고 나는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거리를 걷다가 조금이라도 그때의 풍경과 유사해 보이는 지점을 맞닥뜨리면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로 그 장소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예를 들어, '종로힐로', '종로코나' 같은 식으로. 그러면 분명 같은 장소임에도 사뭇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달라진 이름 하나로 판타지 영화를 봤을 때 느낄 법한 감흥이 샘솟는 것을 요즘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그러니까, 변화한 우리의 계절에 대한 감수성이 주변 풍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퍽 다르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느낌은, 요즘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만화도서관에서도 종종 나를 찾아든다. 얼마 전까지 학교계약직 교사로 일하던 나는, 시니어도서관의 주인장이 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은 도서관에서의 파트타임 업무를 시작했다. 하루종일 소란스럽고 정신없이 돌아가던 업무환경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고요함'이 기본값인 도서관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물론, 만화책이 장서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건 때문에 주요 이용자가 어린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이고,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은, 온갖 종류의 만화책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신이 나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방방 뛰고 소리를 크게 내며 도서관 내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집게손가락부터 치켜세우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줬을 텐데, 지금은 아이들의 신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가 가능한 한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려 한다. 이곳에선 중년의 내게도 종종 신명 나는 순간들이 찾아오기에. 게다가 따로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들뜬 아이들의 종종걸음은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어느새 잔잔해지고, 도서관이 너무 적막해졌다 싶어 살펴보면, 만화책에 고개를 푹 파묻고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들어 있는 아이들의 어여쁜 뒤통수와 마주하게 된다.


예전에는 만화책을 보는 아이들의 뒤통수가 이리 고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미처 몰랐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만화를 하찮게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만화책은 공부 못 하고 책 읽기 싫어하는, 날라리 같은 아이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어른들이 말했는데, 모범생 코스프레에 젖어있던 나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던 것 같다. 이따금 친한 친구가 방과 후에 만화방에 같이 가자고 부탁에 가까운 제안을 해 오면 어쩔 수 없이 따라붙곤 했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만화책은 거의 읽지 않고 주로 만화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러고선 속으로 생각했다. '쟤네들 다 공부 못 하는 애들일 거야.'라고. 세뇌로 인한,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이었나 싶은데, 다행히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와 함께 만화도서관에 와서 기꺼이 '독서동지'가 되어준다. 여기에서 나는 또다시 감동하게 되는 지점을 맞닥뜨리게 된다. 처음엔 아이들을 제재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부모님들이 어느 순간 보면, 성인용 만화책을 몇 권씩 옆에 쌓아두고 고요히 만화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자면, 커다란 머리 옆에 크기가 조금씩 다른, 작은 머리 둘이, 아름답고 어여쁘고 앙증맞은 뒤통수의 향연을 펼쳐주고, 나는 뒤통수의 미묘한 움직임마저 즐겁게 감상하는 관중이 되어버리고 만다. 굳이 이러한 감성에 이름을 붙이자면 '뒤통수인지감수성'쯤 되려나.


수십 년간 만화라고는 보지 않고 살던 내가, 뒤통수인지감수성을 갖게 되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브런치 이웃 작가님들이 그 유명한 '드래곤 볼'이야기로 꽃을 피울 때도 딴 세상 얘기 듣듯 무심했던 내가, '귀멸의 칼날(내가 일하는 곳 기준 가장 많이 읽히는 만화로 보인다)'이니 '흔한 남매 시리즈'에 심청을 만난 심봉사처럼 눈이 뜨여간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있다. 이 광활한 세상에, 그간 내가 모르고 소외시킨 얼마나 많은 인지감수성들이 숨어있을까. 게임 속에서 귀한 아이템들을 찾아내어 즐겁게 줍줍 하는 자세로, 앞으로 나만의 인지감수성을 채워나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대하는 나의 언어도,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미해력(美解力)도 성장하리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가을과 그의 미쁜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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