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섬의 잘 나가는 둘째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항공권 예약 어플을 들락거리면 꽤나 구미가 당기는 여행지들을 만난다. 일본의 소도시들이 그런 선택지들 중 하나인데, 가까운 거리에 저렴한 항공권 그리고 주말 앞뒤로 하루씩만 휴가를 내면 다녀올 수 있는 일정 관리의 자유로움 덕분이겠지. 그리고 한 번 다녀오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나라의 깔끔함은 재방문 의사를 확실히 높여준다. 아무리 쇼핑을 해도 ‘10% 자동 할인’을 해주는 값싼 엔화까지 더하면 (‘23년 10월 기준) 지금 일본행은 분명히 합리적이다.
앞서 다녀온 분들의 글을 읽고 다카마쓰행을 결정했다. 아직 빈틈이 많아 보이는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직접 찾아가서 채워보고 싶었다. 그래도 일본을 이루는 주요 섬들 중 하나인 시코쿠 섬을 이끄는 도시라는데, 우동 말고도 다른 게 있지 않을까.
다카마쓰 공항
1312-7 Konanchooka, Takamatsu, Kagawa 761-1401 일본
인천-다카마쓰 직항 노선을 운행하는 항공사는 현재까지 에어서울뿐이다. 그리고 인천에서 다카마쓰에 가는 에어서울 항공편은 “매우 깐깐하게” 수하물 무게를 검사한다. 승객 한 명당 수하물의 무게가 15kg를 넘어선 안된다. 그리고 동행 여행객의 수하물 무게를 합산해주지 않는다.
깐깐한 수하물 무게 검사를 받고, 실리는 모든 위탁수하물이 15kg 이하로 맞춰지면 비행기는 카가와 현의 다카마쓰 공항으로 도착할 준비를 마친다. 내가 탄 항공편은 오전 08:45 출발 - 10:30 도착 일정이다. 매일 운항하는 항공편이며, 오후에 출발하는 일정도 있다고 한다. (15:05 출발 - 16:40 도착) 오전에 출발하는 항공편을 추천한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겠지만 다카마쓰는 작고 가까워서 일찍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다카마쓰 공항에서 곧장 코토히라로 향한 이유도 넘치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카마쓰시 교외에는 ‘온천’만을 위한 장소들이 있다. 유서 깊은 고토히라는 그중 하나다.
고토히라 琴平 (고토히라 JR역, 고토히라 궁)
892-1, Kotohira, Nakatado District, Kagawa 766-8501 일본
다카마쓰 공항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앞에 정차해 있는 버스를 타면 ‘어린이 대공원’이라는 여행지를 지나서 고토히라로 갈 수 있다. 4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일본의 시골 풍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지나가는 건물들은 2층을 넘지 않는다. 덕분에 시야는 틔여있다.
셔틀버스는 고토히라 궁 정류장을 지나서 JR고토히라역까지 운행한다. 역에는 코인 라커가 충분하다. 고토히라 궁에만 잠깐 방문하고 싶다면 타카마쓰 공항 도착 후 짐을 들고 곧장 찾아가도 관광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만약 고토히라가 다카마쓰 여행의 시작점이면서 ‘시코쿠 레일 패스’를 이용한다면 주의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JR고토히라역에서는 온라인으로 예매한 시코쿠 레일 패스를 지류 승차권으로 교환할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전에 구매한 5일권 중 하루를 그대로 날렸다. 다카마쓰 공항에서 내렸다면, 시코쿠 레일 패스는 JR다카마쓰 역에서 개시해야 한다는 것을 함께 알아두자.
*시코쿠 레일 패스 : 시코쿠 섬 안에서 운행하는 JR 열차와 Kotoden, Iyotetsu, Tosaden 열차 그리고 각종 트램을 정해진 기간 안에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승차권이다. 개시하는 날부터 3일, 4일, 5일, 혹은 7일간의 연속된 기간 동안 이용 가능하다.
날이 흐렸다. 원래도 조용한 동네가 구름에 가려 더 고요해 보인다. 예약한 료칸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대절한 버스로 찾아온 관광객들이 자주 보인다.
일단 배를 채워야 했다. 우동으로 시작했다. 다카마쓰의 명물은 우동이고, 고토히라에는 ‘우동 학교’도 있다. 유명한 ‘사누키 우동’의 사누키는 다카마쓰 시가 위치한 카가와현의 옛 이름이다. 시코쿠 섬의 기후는 벼농사보다 밀농사에 적합하다. 두껍고 단단한 우동면을 만들 정도로 밀 생산량이 많다.
지역 특산물은 그 자체 만으로도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야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카마쓰 우동은 면발, 국물, 튀김이 전부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고토히라 우동집 虎屋うどん
957-1, Kotohira, Nakatado District, Kagawa, 일본
4박 5일 일정동안 우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전문 식당에서도, 역전 식당에서도, 호텔에서도 우동을 먹었다. 어디서 먹어도 표준화된 우동을 맛볼 수 있다. 주문하는 방법도, 식당의 구조도, 메뉴의 구성도 큰 차이는 없다.
물론 맛집으로 유명한 우동집은 대기가 길고, 재료 소진으로 금방 마감하기도 한다. 그런데 찾아놓은 맛집을 방문하지 못해도, ‘꼭 그 우동집을 가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안심하게 해준다.
지역 특산물의 역할을 하려면, 이 정도의 믿음은 주어야 하는구나.
우동의 가격은 500엔을 조금 넘거나, 조금 넘지 않는다. 튀김을 한 두 개 추가한다면 900엔까지 올라간다. 저렴하다.
고토히라 궁
892-1, Kotohira, Nakatado District, Kagawa 766-8501 일본
고토히라 궁은 산 위에 있다. 정말 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고토히라 궁 입구까지 이어지는 오르막길 양 옆에는 각종 상점들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심심하지는 않다. 문제는 그 이후다. 올라온 계단보다 두 배 정도 많은 계단을 더 올라야 궁의 본관에 도달한다.
갑작스러운 산행에 고토히라궁 방문이 고민스러울 수도 있다. 그럴만하다. 고토히라 궁은 역사적으로 가치 있지만, 그리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기본적으로 3시간이나 산을 오르내려야 한다. 만약 여행 일정에 고토히라를 포함할지 고민이 된다면, ‘나는 과연 일본에서 등산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
미리 각오하고 간다면 고생한 만큼의 보상은 해주는 풍경이 기다린다. 고즈넉하고 적막하고 낡고 신비하다.
고토히라 숙소 Kotohira Kadan 고토히라 카단
1241-5, Kotohira, Nakatado District, Kagawa 766-0001 일본
이 료칸은 내가 고토히라에 방문한 이유다. 가이세키 석식, 온천, 다다미방, 가이세키 조식을 즐기고 싶었다. 고토히라 카단은 고토히라를 대표하는 료칸 중 하나다.
이곳을 가야 하는 이유는 조식과 석식이다. 정말 훌륭하다. 석식 코스 중 하나인 올리브규는 올리브로 유명한 쇼도시마에서 키운 소다. 딱 세 점이 나오는데, 화로에서 구워 먹으면 기가 막힌다. 그리고 다른 메뉴들도 멋지다.
석식에는 주류가 별도다. 반드시 사케 샘플러를 시켜보길 바란다. 다카마쓰 지역 사케를 포함해서 총 여섯 종류의 사케가 잔으로 나오는데 맛이 전부 다르다. 석식 메뉴와도 전부 어울린다. 3,000엔 정도다.
그런데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들은 일본인이 아니다. 일본의 시골도 우리나라처럼 노동력이 부족하다. 그 빈 공간을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워주고 있다. 특히나 일본스러워야 하는 ‘료칸’에서 사시미를 서빙하는 그들은 일본어를 잘하고 영어도 구사한다. 덕분에 더욱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