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 심리학을 통해 마주한 인간관계의 본질
기질 심리학 강의를 하다 보면 관계의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온다. 친구, 연인, 동료, 부부, 자녀까지. 그러나 결국, 그 관계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가장 처음 나오는 이름은 '부모'다. 그리고 그때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고백이 있다. 상처받았고 이해받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한 것 같다고.
그렇게 따뜻해 보이던 사람도, 안정적으로 보이던 사람도,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사례와 질문을 듣다 보니 부모에게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왜 부모에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가
부모는 우리 인생 최초의 인간관계다. 그리고 그 관계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 우리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 절대적인 의존의 시기에 만난 유일한 타인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기질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 각기 다르다고 본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 낯선 상황에서 쉽게 불안해지는 아이, 낯을 가리는 아이, 금방 웃고 금방 우는 아이… 모든 아이가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부모 역시, 각자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즉, 부모와 자녀는 서로 다른 ‘기질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아이의 예민함은 부모에게는 ‘까다로움’으로 보일 수 있고, 아이의 활발함은 ‘버릇없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오해와 엇갈림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해 ‘나는 이해받지 못한다’, ‘나는 잘못된 사람이다’라는 감정의 씨앗이 되곤 한다. 심리학자 토마스와 체스(Thomas & Chess)의 연구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아이의 기질이 세상과 맞물리는 방식, 즉 ‘기질-환경의 적합성(Goodness of Fit)’이 건강한 발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혔다. 아이의 기질을 부모가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자존감과 관계 패턴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도 사람이고, 그들도 나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질 심리학 강의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이야기한다. 부모도 자신의 기질과 상처 속에서 아이를 양육했다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상처받았다는 사실 역시 진짜라는 것. 상처를 마주 보는 것은 원망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이해받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인정해 주기 위한 길이다. 때로는 “나도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풀리기 시작한다.
기질 심리학이 특별한 이유는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에 대한 설명을 기질의 차이와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는 데 있다. 막연한 원망도, 무조건적인 용서도 아닌, ‘이해’라는 중간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이해의 출발점은 부모는 완벽하지 않았고, 나도 상처받았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서로의 기질을 몰랐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통찰은 과거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나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내가 맺고 있는 현재의 관계들—자녀, 연인, 부부, 동료와의 관계까지—모두를 서서히 바꾸기 시작한다.
부모에게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은 결코 절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모두가 상처받았기에 모두가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다.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이제는 내가 이해해 주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썼던 에너지를 나를 회복하는 데 쓰는 것. 그것이 바로 기질 심리학이 말하는 변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 이 글은 《관계와 삶을 바꾸는 기질 심리학》의 저자 강의에서 전해진 통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책에는 관계를 이해하고 삶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강생들의 실제 사례, 심리학 이론, 연구, 질문들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