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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경영진으로 일하기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를 보고...

by 백승엽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와 스타트업


지난 주말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House of Dynamite)'를 보았습니다. 함께 일하는 법무이사님께서 "영화도 무척 재미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우리 모습 같아서 더 흥미롭다"라는 한 줄 평과 함께 추천해 주셨습니다. 말씀해 주신 그대로 영화도 재미있었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미사일이 미국으로 발사되고 이를 포착하고 대응하는 20분의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고, 요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어디서부터 발사된 미사일인지 추측하고, 불안해진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즉시 반격을 해야 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갈팡질팡합니다.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불안한 평화 시스템을 꼬집습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최첨단 방위 시스템이 존재하며 촘촘하게 짜인 매뉴얼과 절차가 준비되어 있지만, 미사일 한 발에 이 모든 것이 마비됩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가운데, 반격을 하게 될 경우 전 세계는 파멸에 이를 것이고, 그렇다고 반격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너무나 공고한 평화 속에서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집'에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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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영화의 메인 주제 의식도 흥미롭지만, 우리네 스타트업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고 하면서 추천을 해주신 덕분에 '스타트업 환경에서의 의사결정'에 대한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빠르게 의사결정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왜 공격이 일어났는지도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반격을 한다면 어느 국가에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대통령 또한 이러한 상황이 처음이고, 핵미사일 발사 절차와 목표 타깃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부족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본인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핵전쟁이 촉발될 수도, 수천만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큰 고뇌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드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스타트업의 경영진으로 회사의 전략/IR/인사/재무 등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팀원들은 본인들이 최선을 다해 고민하다가,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나 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문제들을 저에게 가져옵니다. 상당수의 어젠다들은 제가 이미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들이고 저 또한 경험과 확신을 가진 주제입니다. 하지만 일부에 대해서는 저 또한 전문 지식과 역량이 부족한 가운데, 급박한 시간과 부족한 자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역량과 경험이 부족해서 저만 이런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스타트업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절차대로 한 거자나. 그렇지?"

(위 대사가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미국 본토로 향하는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실패해 버린 알래스카 미사일대대의 일원이 망연자실해서 저런 말을 합니다. 절대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없는 '핵미사일 요격'이라는 살 떨리는 과제를 결국은 실패해 버리고, 그럼에도 우리가 절차대로는 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자조적인 말입니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매우 소수의 성공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실패일 수밖에 없는 어려운 스타트업에서, 우리 자신에게 항상 되묻는 것 같습니다.

'아마존이 이렇게 했다고 하지 않았어? 이게 구글의 방법론 이자나?'

'토스가 이렇게 했으니 우리도 따라 하면 성공하지 않을까?'






스타트업에서 경영진으로 일하기 - Last man이라는 책임

몇 년째 스타트업에서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이 일이 어렵습니다. 당연하게도 스타트업은 시스템, 프로세스,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좀 더 많은 경험과 연륜, 직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제가, 혹은 다른 경영진은 의사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사실 저도 잘 모르는데 말이죠.

오늘 퇴근 직전까지도 대표님도, 저도 확신할 수 없는 주제로 몇 시간을 논의하다가 왔는데요. 아마 대표님은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우신 상황이실 것입니다. 제가 맞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한 주제에 대해, (다른 임원/팀장이 결국 풀지 못한) 훨씬 더 까다로운 의사결정만 대표님에게 요구되니까요. 그리고 저보다 훨씬 더 바쁘게 더 부족한 시간 안에 의사결정을 해내야 합니다. (창업자, 대표들은 정말 너무 힘든 자리입니다. 저는 절대로 창업을 못 할 것 같습니다.)

malachi-cowie-2dy2TibmRr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Malachi Cowie

이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많은 경우 제가 최종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 뒤에 대표님이 계시지만 상당수의 어젠다들은 제가 최종적인 책임자입니다. (대표님을 대신하여 많은 어젠다를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경영진/임원의 책임을 못 다한다고 볼 수도 있고요) 제가 최종적인 책임자이기에 '내가 실수하면 우리 회사/사업/조직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라는 불안감이 항상 따라다니다. 너무나 무섭고 외로운 자리입니다.

얼마 전에 일을 하고 있는데 "Last man"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더군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전략/IR/인사/재무 등에서 저는 우리 회사의 Last man입니다. 제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큰 구멍이 뚫려버리고 맙니다. 저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 주신 이사님도 법무/리스크 측면에서 Last man이시고, 다른 경영진들 또한 각자 맡은 분야에서 Last man입니다. (너무나 다행히도 우리 각각의 경영진들 뒤에 The Final Man 대표님이 계시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절대로 창업을 하지 않을 겁니다 ㅎㅎ)





제 브런치에서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법한 인사이트를 드릴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번 글은 왠지 제가 가진 두려움과 불안함을 표출하기만 한 글이 나온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첫 회사에서 만났던 대기업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영진/임원들은 지금의 저랑은 좀 달랐을까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 임원분들께서 대략 20년, 25년 차 정도되셨던 것 같으니, 지금의 저보다도 5살이나 10살은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지금의 저보다는 상황이 나으셨을 것 같습니다.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분야를 꾸준히 해오셨기에 지금의 저보다는 더 많은 경험과 역량을 쌓으셨을 것이고, 대기업에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프로세스 등이 더 많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사업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나 의사결정을 요구받는 속도는 훨씬 더뎠을 것이고, 팀 내/외부의 자원 또한 더 풍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리더라는 것, 임원이라는 것, 경영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 따른, 개인에 따른 차이들은 존재하지만 본인이 맡아야 하는 책임에 대하여 "Last man"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외롭고 고통스러운 자리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계실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말씀을 전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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