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인 나의 소음 지옥.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일상 속에서 심장이 발치에 떨어질 때마다 '이것도 소재로 쓸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살만 하지 않을까 싶어,
살려고 시작하는 소음 일지.
<2023년 12월 1일, 금요일>
아침부터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오늘은 대망의 이사일.
내 이사일도 아닌데 이렇게 떨릴 일이냐.
수많은 사람이 오고 다닐 오늘은 집에 있으면 안 되었다. 근처 카페로 피신을 나갔다.
이른 저녁이 되어 귀가하니 사다리차와 이삿짐 트럭은 떠나 있었다. 집 청소를 한다는 핑계로 창문들을 활짝 열고 청소기로 돌리고 주방도 치웠다. 그렇게 머리 위에서 들리는 발망치 소리를 어떻게든 무시하려 애썼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짐 정리도 해야 하고, 가구도 옮겨야 할 텐데.
하지만 저녁 내내 듣고 있을 자신은 없어, 퇴근한 남편과 느지막하게 외식을 나갔다. 자정이 넘어 돌아오면 좀 조용하겠지.
웬걸. 새벽 1시가 넘어서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쿵쿵쿵 돌아다니고 있다. OMG...
<2023년 12월 2일, 토요일>
금요일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불면증 때문에 너무 괴롭다. 다들 왜 새벽에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걸까. 새벽까지 안 자는 건 자유다. 나도 저녁형 인간이다. 그래도, 적어도, 새벽에는 문을 부서져라 '쾅!' 닫는다던가, 소리를 지른다던가, 발로 바닥을 찧고 다니는 정도는 좀 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새벽 내내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나는 이 모든 소음 때문에 잠이 들려다가도 깨고, 다시 들려다가 깨는 걸 반복하며, 아마도 그들이 잠든 탓에 조용해진 4시 전까지는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데 죽을 맛이었다. 자도 푹 잔 느낌이 아니었고, 아침부터 다시 발망치 소리가 들렸다. 오전에는 윗집에서 벽에 TV를 거는 모양이었다. 벽을 타고 부스럭부스럭, 통통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에는 집들이가 있어서 청소도 한 번 더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몸은 축축 늘어지고 더 자고만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기운도 없다.
손님들이 왔다. 가장 먼저 슬리퍼를 신기며 두 가지 양해를 구했다. 하나, 윗집이 어제 이사 와서 오늘 발소리와 소음이 좀 많이 들릴 수 있다는 점. 둘, 몇 달간 이어진 층간 소음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 나는 지금 내가 내는 소음에도 굉장히 민감하다. 걸을 때 조심해 달라. 다행히도 다들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점심에 어디 나갔나? 생활 반응 자체가 들리지 않았다. 밥 먹으면서 하소연까지는 아니지만 간략하게 지난 두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래서 지금 나의 상태가 이러저러하다는 이야기를 한 게 무색할 정도로, 오늘 오후 내 머리 위는 고요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손님들이 갔다. 우리 집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찾아와 (지금의 내 귀 기준에선) 이렇게 이야기하고 떠든 게 처음이라, 이런 데시벨이 낯설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파트에 산다면 계속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저녁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소파에 누운 채로 보냈다. 간간이 어떤 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너무 조용해서 심지어 '와, 소음 매트를 깔았나?' 하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자정을 넘기자 그건 쓸데없는 희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뱀파이어라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막 귀가한 거겠지. 12시 30분쯤부터였을까. 어른 걷는 발망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안방 화장실 문을 '쾅!' 닫는 소리도 났고, 큰 목소리도 들려 순간 싸우는 건가 싶어 자려다 놀랐다.
역시나, 잠들락 말락 하다가 '쿵!' 하는 소리에 깨는 상황을 반복하다가 새벽 4시가 지나 잠든 것 같다. 싱잉볼 사운드를 틀어 놓고 그 소리에 집중하려 노력도 했고, 성공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거의 잠들겠다 싶은 순간 다시, 쿵!
너무 괴로웠다. TV에서 불면증이 있다는 연예인이 나와 새벽 4-5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결국 해를 보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났다. 그들도 그 순간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도 꽤 늦게 자는 타입이고, 가끔 마감 때문에 새벽 4시까지 일하다 자는 때도 있다. 하지만 자고 싶은 내 의지에 반하여 절대 잠들지 않는 상황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2023년 12월 4일, 월요일>
오늘은 너무 조용했다.
늦잠을 잔 탓에 아침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를 제외하곤 머리 위에서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다. 아침, 저녁에만 나는 소음이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귀가한 듯했다. 오후에 했던 말은 취소. '아침, 저녁에만 나는 소음이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는 틀린 말이다. 머리와 고막을 두드려 패는 듯한 소음은 단 30분만에 사람을 넉다운 시키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귀가해 자기 전까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 겨우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내내 이 '쿵쿵쿵'과 '우다다다'를 들어야 한다. 그건 또 무슨 고문이란 말인가. 주말이라고 덜 할리도 없고.
조용한 순간에는 이제나 저제나 무슨 소리라도 들릴까 매 순간이 불안했고, 막상 들리기 시작하면 끔찍하게 괴로웠다.
위염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