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웅성 Sep 21. 2022

주 2일 근무를 합니다

109동 3304호 이야기

나는 올해 3월부터는 주 2일 근무를 해왔다. 하지만 하계 한 달, 동계 두 달 정도는 휴일 없이 근무를 한다. 근무를 하는 동안은 눈 뜨는 시간부터 눈 감는 시간까지 일의 연속이다. 업무는 주로 식사 준비, 청소, 구성원 관리와 복지에 관련된 것들이다. 그래 봐야 일 년 365일 중 160일 정도 근무를 하니 참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근무가 없는 날에는 그림을 그리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TV를 켜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노인종합사회복지관에 가서 어르신들을 위한 식사 봉사를 한다. 한 때는 일반 직장인들처럼 평일에 근무를 하고 주말에 쉬어 보기도 했다. 한 때는 매장을 운영하며 주 6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바쁜 일과를 보내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정기휴일에 시체처럼 뻗어있기도 했고, 매장이 자리 잡은 후에는 직원들을 관리만 하며 집에서 쉬어보기도 했다. 바쁘게 돈을 벌며 지내본 시간이 있기에 주 2일 근무제는 꿀 같은 시간이다. 주 2일 근무를 하고 있는 꿀 같은 이 일터는 109동 3304호, 나의 집이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지방에 있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금요일 오후에 돌아와 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선다. 월요일 이후 텅 빈 집은 먼지도 쌓이지 않고 식사 준비에 대한 압박도 없다. 청소기는 이삼일에 한 번만 돌려도 충분하고 요리도 하지 않으니 설거지에 대한 부담도 없다. 주부 생활 17년 만에 찾아온 변화이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내 배를 채우는 일이다. 나 혼자를 위한 요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아침은 요거트에 꿀과 견과류를 넣어 때우고, 점심 겸 저녁으로는 간단히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먹거나 냉장고에 상비해 있는 밑반찬 몇 가지로 한 끼를 해결하곤 한다. 어떤 날은 사람이 먹지 않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기도 한다. 하루를 빈 속으로 버티다 보면 결국 밤에는 음식으로 돌진하게 된다. 불의의 사고로 사고 현장에 몇 날 며칠 고립되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버틴 생존자들의 고통을 실감한다. 하루도 버티기가 힘든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109동 3304호에서 나와 가장 긴말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구성원인 남편은 매일 출퇴근을 한다. 아침은 5시 50분에 집을 나서고 밤에는 늘 10시가 넘어 귀가한다. 아침은 조금이라도 더 잠을 청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밤에는 늘 석식 약속이 있어 알코올 향기와 함께 돌아온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자금을 대주는 일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수십 개의 부서에서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밤마다 읍소를 하며 남편의 잔에 술을 채운다. 주말이면 남편을 골프장으로 불러내 또 읍소를 한다. 그렇게 남편은 주 7일 근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과 반대로 나는 남편에게 사랑해요, 힘내요, 고생 많아요, 고마워요와 영양제를 제공한다.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지치거나 힘들 때면 남편은 내게 '안녕! 오늘도 많이 바쁘네'하고 카톡을 보낸다. 일부러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나의 응답을 듣기 위해. '늘 바쁜 우리 여보, 고생 많아요. 사랑해요. 힘내요!' 이 응원을 받으면 정말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어쩐지 늘 애처롭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귀가한 남편이 싱크대 옆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다 싱크대 안을 쓰윽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더 미안해진다. 어제 있던 설거지 그릇 몇 개가 오늘도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한량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17년 만의 여유를 좀 즐겨보는 것이니 좀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내심 쪼그라드는 마음으로 등딱지 안에 고개를 숨기는 거북처럼 목이 짧아진다. 남편이 역시나 한 마디 한다. 그런데.....

"당신 오늘 밥 잘 안 챙겨 먹었지? 어제랑 오늘이랑 그릇이 똑같애. 밥 안 먹은 거야?"라고 묻는다. 설거지를 못 한 것에 대한 핀잔이 아니다. 자신의 고단함은 생각지 않고 나의 밥을 걱정한다. 가슴이 찡해온다.

"오늘은 샐러드랑 샌드위치를 먹어서 그래.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 마~"하고 대답한다.

"제발 밥 잘 챙겨 먹어." 하며 다시 한번 내 밥을 걱정하는 남편이 참 고맙다.

요즘 남편은 밤 11시에 귀가를 해도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2km인 아파트 산책로를 돌기 위해서다. 그렇게 손잡고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내가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좋아서 웃고 있는 나를 보면 자신이 행복해진다는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상한 논리가 또 나를 웃게 한다.


현재 시각 밤 10시. 남편은 아직 귀가 전이다. 11시 정도에는 남편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밤 11시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하다 손이 가는 대로 그냥 타자를 치다 보니 109동 3304호 이야기가 나왔다.

109동 3304호에는 글에 다 담기지 못한 긴 스토리가 있다. '희. 노. 애. 락'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역사가 현재에 이른다.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그 웃음과 울음의 시간들이 녹아있다. 남편은 집안 곳곳에 작은 물건 하나하나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소파, 탁자 등의 가구뿐 아니라 소소한 물건 하나하나도 우리가 함께 선택하고 일구어 온 시간이 보인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 우리 마음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로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지금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바람과 태풍도 견뎌냈던가. 그 혹한의 시기가 있었기에 서로의 마음을 끌어안고 싶었고 서로의 소중함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태풍과 지진, 해일 까지도 모두 추억이 되고 폐허가 되었던 마음을 잘 재건해지금이 감사하다. 그래서 남편도 나의 웃음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은 거실 창밖을 내다보는 방향이다.(한동안 내 자리는 주방 한 구석이었지만 최근에 내 자리를 이렇게 마련했다.) 33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속에 수많은 불빛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별빛이 가득할 테고, 땅에서는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비치는 가로등 불빛부터 레고처럼 쌓아려 진 수많은 가족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어느 곳에서는 희가, 어느 곳에서는 노가, 어느 곳에서는 애가, 어느 곳에서는 락이 역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곳도 시작은 사랑이리라. 희로애락,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이리라. 그 끝도 사랑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