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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절대 듣고 싶지 않은 한 문장

by 타인의 청춘

"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


'잠시 드릴 말씀'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잠시' 들을 말은 아니요, '잠시' 나눌 수 있는 주제도 아니며, 결코 '잠시' 고민하지는 않았을 다름 아닌 바로 퇴사 이야기.


부서장들은 그래서 '드릴 말씀'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듣자마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랄까. 왜 떠나게 되었을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제부터 고민했을까. 왜 말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해결해주지 못했을까.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나. 사람을 또 언제 뽑고 교육해서 제 몫을 해내게 만들어야 할까?.. 등등 수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한 마디.


'리더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바야흐로 대이동, 대이직의 시대다. 이직을 여러번 해본 나로서도, 이직하는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부서장이 되어서 이직을 하는 직원들을 바라봐야 하는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힘들다.


"설마 퇴사는 아니시죠.....?"

"아,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이번 달 말까지만 나왔으면 해서..."


.... 뭐라고 답해야 할까, 철렁하는 가슴.


후.. 하고 깊은 숨을 크게 내쉬고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어간다.

"이직이신가요?" (그럼 축하할 일이다.)

"그냥 쉬고 싶으신 건가요?" (그럼 미안해할 일이다.)

"언제부터 고민하셨던 거죠?" (알게 되면 후회가 된다.)

"새 직장엔 언제 나가시나요?" (그래야 인수인계 등 준비를 할 수 있다.)

"우리 회사의 부족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걸 들어야 개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나에게도 마지막 말의 기회가 찾아 온다.)


묻고 싶은 질문은 대부분 이렇게 끝난다.


결국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밖에 남지 않지만.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리고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적시에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점, 성장에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던 아쉬움, 함께 하는 동안 더 나눌 수 있었던 좋은 피드백을 이제서야 드리는 송구함, 아마도 구성원이 바랐을 인정과 칭찬, 어려움을 토로할 수 있게 기회를 주지 못했던 미안함, 언젠가 분명 빛이 났을 구성원의 모습을 발견해 주지 못한 리더로서의 책임감 등...


떠나려 했던 사람의 마지막 마음은 오죽했을까.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그 먹먹함과 아쉬움, 후련함. 켜켜이 쌓인 고민을 같이 풀고 해결해 주지 못했음을 아쉬워 해도, 이제는 너무 늦은 일일 뿐인 것을.


다만 함께 했던 구성원들이 대부분 더 좋은 곳으로 떠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마지막 1 on 1을 통해 진심으로 앞길을 축복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부서장으로서도 나름의 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거기 가서도 잘 하실 거예요. A님에게는 추진력과 책임감, 이타적인 태도..처럼 누가 봐도 본받을 수 있는 좋은 모습들이 보이거든요. 남은 날동안 너무 마음 무거워하지 마시고, 인수인계 잘 부탁드리고, 동료들과도 충분히 인사 나누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축하해요. 이번 기회에 푹 쉬시길 바라구요." 이것이 나의 '드릴 말씀'이 되어야 한다면, 남아 있는 직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에라도 이제부터 더 많이 피드백하고, 칭찬하고, 인정하고, 알아봐 주는 일. 아무리 바빠도 이것들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 게, 그게 나의 일 아닐까.


떠나간 직원들이 종종 많이 그리운 계절이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분명 잘 하고 있을 그들에게, 무한히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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