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 사람이 일의 기쁨을 찾는 방법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되도록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시대에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곧 불성실함으로 비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을 주제 삼아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보니 '일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가끔 누군가 내게 "평생 쉬어도 될 만한 돈이 생긴다면, 그래도 일을 계속할 거야?"라고 물어올 때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난 일 안 할 거야"라고 답변하고는 했다. 그런 행운이 내게 찾아온다면 일해야 하는 시간에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친구들을 만나고, 요리를 더 많이 하고, 푹 쉴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물론 '평생 쉬어도 될 만한 돈'이 갑자기 생길 리 없다. 가능하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얘기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 일하기 싫어하는 나를 잘 어르고 달래 가며 오랫동안 일해야 하는 셈이다.
일하고 싶지 않지만, 도리어 일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잘 협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어떤 태도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중요할까? 일 자체도 고통스러운데, 협업마저 고통스럽게 둘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덜 괴로운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조성돼야 할까? 일 바깥의 내 생활은 어떻게 잘 가꿀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머릿속에 늘 넣고 있다가, 커뮤니티 멤버들 또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한다. 자연스럽게 '내 일의 기쁨'을 찾으려는 시도도 자주 할 수밖에 없다. 일의 구체적인 어떤 요소가, 어떤 순간이나 장면이 내게 기쁨을 주는지 알아야 일을 더 잘 버틸 수 있어서다.
지난 5월, 여러 여성 필자들과 함께 쓴 책 <일잘잘: 일 잘하고 잘사는 삶의 기술>이 출간된 후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각자가 느끼는 일의 기쁨에 관한 글을 쓰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내가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이럴 때다. 일을 통해 딱 반 발짝 정도 앞선 관점을 담은 메시지를 제시할 수 있을 때. 그 관점을 다른 여성들과 나누며 대화할 때. 그날 워크숍에서 만난 독자들 역시 각자의 일의 기쁨을 알려 주었다. 고객과의 접점이 넓은 업무를 하며 고객의 소리를 직접 들을 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내가 원하는 활동에 쓸 수 있을 때...
일의 기쁨을 찾아보자는 건 일에서 큰 의미를 추구하자거나, 일에 충성하자는 뜻이 아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기쁜지, 그런 순간을 앞으로 어떻게 더 추구하며 살 수 있을지 살펴보자는 뜻이다. 이건 일에 몰입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에서 살짝 거리를 두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일과 나의 관계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에 가까울 것이다.
예전의 나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기획자, 마케터, 작가처럼 그 직업의 이름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고 믿었고, 그 아우라를 내게도 두를 수 있다면 모든 게 만족스러워질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어떤 직업에든 다양한 면면이 있고, 하나의 일을 아주 작은 요소들로 쪼개어봤을 때 거기에는 기쁨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대개 '일'이라는 큰 단어로 내가 하는 것들을 뭉뚱그려 표현하고는 하지만, 그 일은 수많은 다른 행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제가 좋아하거나, 잘할 것 같은 방향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커리어에 관한 워크숍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럴 때는 일단 지금 하는 일을 제일 작은 단위까지 모두 쪼개어보고, 거기서 내가 남기고 싶은 것과 그만두고 싶은 것을 골라보라고 대답한다. 일에서 어떤 순간이 나를 기쁘게 만드는지, 어떤 장면이 내게 동력을 만들어 주는지 안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게 기쁨을 주는 순간을 스스로 발견하고 만들 수 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커리어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두려움이나 불안감도 점차 사그라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