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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딸

by 지호


병실에 들어서니 여러 명의 사람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간호사 두 명을 포함해 담당의와 실습생들, 한 발치에서 원이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까지. 원이는 주사를 여러 개 꽂고 있어야 하는데 불편해 하고 몸을 뒤척이는 게 심해 팔에 꽂으면 주사바늘이 금방 빠졌다. 코에 호스도 입원할 동안 내내 끼고 있어야 하는데 하루에 한두 번은 팔을 휘둘러서 빠지기 일쑤였다. 원이에겐 “자, 잠깐 가만히 있자.”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고 기술력 좋은 간호사가 특별히 내원했다. 원이를 붙들고 못 움직이게 한 다음 발에 주사를 꽂는 작업은 순발력과 집중력이 필요했고 몇 번 시도 후 “됐다!” 라는 말이 들렸다. 지켜보던 실습생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의사도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노련한 간호사는 “뭘요.” 하며 바쁜 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원이는 까다롭다.

코와 목에 가래를 빼는 작업은 단순하다. 보통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한 간호사가 일, 이분 만에 끝내는 처치가 원이를 만나면 달라진다. 예민한 원이의 구강감각이 쉽사리 입에 무언가 들어오는걸 거부했고 자극이 있으면 깜짝 놀라 처치하면서도 몇 번이고 입을 깨물었다. 피를 줄줄 흘리고 이빨까지 빠진 원이를 처음 처치하는 간호사는 당황해서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아~ 해야지, 옳지!”


교대 근무하는 간호사가 바뀔 때마다 피난리(?)를 겪던 원이는 그래도 기적처럼 합이 맞는 간호사를 찾아냈다. 가느다란 호스를 입안으로 쏙쏙 집어넣어서 장단을 맞추는 익숙한 간호사 한분만이 이 작업을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현란한 손짓으로 원이의 가래 처치를 한 간호사 선생님의 얼굴에는 보람이 드러났다. 몇 번의 시행착오로 원이를 다룰 줄 알게 된 선생님, 자부심을 갖기에 마땅하다.





원이는 예쁘다.

건너 마을에 최진사 댁에 딸이 셋 있는데 그 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오동통한 볼에 뽀얀 피부, 큰 눈망울을 가진 원이. 두 언니는 큰 키에 서구적인 체형이지만 원이는 스물두 살 까지 항상 아기였다. 꼭 끌어안으면 한 품에 들어오는, 유모차를 타고 다니는 아기. 그렇지만 긴 속눈썹이나 진한 눈썹과 이마에 조밀한 잔머리, 화룡점정으로 코 가운데 박힌 점을 보면 무섭도록 셋째 딸이다. 얼굴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조막만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질 때든, 울거나 짜증을 낼 때든 건강하게 스무 살로 컸으면 드센 첫째 둘째 언니들 사이에서도 자기 성질을 절대 굽히지 않았을 거라 우리가족은 확신했다.


원이와 우리가 말다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원이 성질머리가 대단한건 사실이다. 본인에게 익숙한 것만 받아들이는 완고함, 만족 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떼쓰는 기질. 고집 센 노인과 갓난아기의 다루기 어려운 점을 다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뀌겠거니',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겠거니' 할 수 없는 게 특징이다. “예쁘니까 봐준다!” 라는 말로 우리가족은 스스로를 위안할 뿐이다. (위안이 된다는 게 포인트.)


(잘때는) 천사같은 원이


우리는 원이를 위로하기 위해서든 진심이든 원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하곤 했다. 너무 예뻐서 집안사람들 아무도 안 닮았다고. 그래서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그래서 네가 날개가 없고 걷질 못한다는 말은 생략했지만 말이다.







원이의 병실은 항상 북적북적 하다. 큰언니가 가면 작은 언니가 오고, 오면 도움도 안 되면서 꼭 하루씩 자고 가며 동시에 와서 엄마와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소아병동 6인실에는 원이만 스물 두 살이고 다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된 아기들이다. 병실에서 혼자 악을 쓰며 우는 원이 때문에 진땀을 흘리면서 다른 침대를 쓰는 환자 가족들에게 미안 할 겨를도 없었지만, 병실 다른 가족들은 다들 안쓰럽게 보며 원이와 엄마를 챙겨주고 우리 자매를 보면 반갑게 인사한다. 2주차가 되던 때 슬슬 아직도 병실에 있는 다른 가족들을 둘러보니 거의 다 첫째 아이들의 젊은 부모이다. 나와 몇 살은 차이가 날까 싶은 베트남 엄마도 있다. 친척들은 종종 방문하지만 아이의 상태만 보고 갈 뿐 아기 아빠는 어디 갔는지 몇 주 동안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 쪽 침실은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면서 간이침대에서 자는 가끔 콜록거리기만 하는 아기. 옆 침실은 엄마는 없고 아빠는 다른 지역에서 돈을 버느라 올 수가 없다는 간병인이 보살피는 50일도 안 된 아기이다. 매일같이 엄마의 힘을 넘어서게 아픈 원이와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고 누워만 있는 아기들의 가족 중 어떤 상황이 더 고통스러울 지는 가늠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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