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나누어 주려고 그래.”
로리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에이미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해 유언장을 읽어 볼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 커티스 마치의 유언장]
나 에이미는 세상을 떠난 후 내 물건을 다음 사람들에게 남긴다.
아빠께는 내 그림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예술품을 드린다.
또한 좋은 일에 사용하시리라 믿기 때문에 저금해 둔 돈 100달러를 드린다.
엄마께는 내가 입었던 옷 전부와 내 초상화, 그리고 메달을 드린다.
메그 언니한테는 고모님이 만약에 내가 주신다면 터키석 반지를 드린다.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던 초록 상자와 그 내용물을 드린다.
<중략>
“에이미,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너도 베스가 자신이 갖고 있던 물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얘기를 들은 거야?”
“언니가 뭘 어떻게 했는데?”
“베스는 며칠 전에 아주 위험한 상황까지 갔었어. 그런데 그때 조에게 말했단다. 피아노는 메그, 고양이는 에이미, 조안나 인형은 조한테 주라고 하면서 나머지 사람들한테는 줄 것이 없어 죄송하다며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서 나누어 주라고 했단다.”
- <작은아씨들>
작은아씨들에서 셋째 베스는 크게 앓는 상황에서 자신이 떠난 후 주변 사람들에게 소중한 물건을 나누어 주고 싶다고 얘기한다. 병이 옮을까 봐 다른 집에서 지내던 에이미도 베스를 떠올리며 유언장을 작성해 본다. 위기상황을 겪으면서 각자 죽음과 가족에 대해 생각한 것을 다급하게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막내 동생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 고비를 넘기던 차 매일같이 서울과 대전을 고속버스로 왔다 갔다 하며 나는 평소 종종 생각하던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 않고 한다고 해도 마음이 무거워져 기분이 가라앉지만, 나의 죽음은 오히려 농담처럼 여길 수 있었다. 죽음 이후의 모호함 때문에 ‘죽으면 끝’이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죽으면 끝이야.’
죽음을 생각할 때 걱정을 덜어 줄 수도 있는 명제이지만 문제는 죽고 난 뒤의 “나” 가 아니다. 작은아씨들의 베스와 에이미가 그랬듯이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여전히 죽은 후에 남겨질 사람을 먼저 떠올리나 보다.
나는 갑자기 구체화하고 싶어 졌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음이나 큰 사고에 대해서도 처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아야 하지 않겠나.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어떻게 될지 모르니. 유독 고속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긴 하다. 너무 무겁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 서울을 올라오던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평소 이런 상황이 왔을 때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를 흘려 써보게 되었다.
내가 만약 큰 사고가 난다면
그래서 의사결정을 못 하게 된다면 부디 나 대신에 나를 위한 선택을 해 줘.
그리고 제발 두 가지만 고려해 줘.
첫째.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예전처럼 건강할 수 없고 남은 날을 힘겹게 살아야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도 없을 거 같다면 나를 그냥 보내줘.
여기서 ‘이성적’이라는 건 한 달 혹은 그 이상 돈, 시간, 가족들의 체력이 한계에 오기 전에 ‘깨어날 수는 있다.’라는 희망만 가지고 나를 붙잡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야.
나는 항상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했어. 고민할 때쯤에도 나는 이미 모든 준비가 됐을 거야. 나는 행복하게 이만큼이나 살았고 후회 없어.
그러니 내 선택을 존중해 줘. 그러니까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편히 떠나게 해 줘.
둘째. 마음에 한을 품고 살지 마.
그리움은 가지고 살아도 한스러운 마음으로는 지내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을 털어버려.
못해줘서, 불쌍해서 자책하는 건 내가 편히 쉴 수도 없겠지.
모든 걸 유머로 승화시키고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사는 게 나를 기억하는 방법이 되게 해 줘. 왜냐하면 나도 그럴 테니까.
2019.1
이 유언과도 같은 글은 가까운 친구나 나를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나는 남겨질 엄마를 상상하면서 썼던 것 같다. 본심이 포함되었으므로 평소처럼 살짝 싸가지 없게. 한편으로는 엄마가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