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어요? 밥!”
엄마가 옆 침대 아기 엄마에게 큰 소리로 물어봤다. 일반실로 이동 한 며칠 사이에 원이의 몸에 달고 있던 주삿바늘도 몇 개 줄었고, 밤마다 엄마를 괴롭히던 경직도 조금씩 줄고 있었다. 잠깐 집도 다녀오고, 가끔 쉴 여유도 생긴 엄마는 이제 병실 옆 침대의 이웃들에게도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작은 몸집에 이제 첫돌을 넘긴 것 같은 아기와 내 또래의 어린 아기 엄마. 엄마는 젊은 아기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고, 남편은 무슨 일을 하길래 병원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건지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 애기가 조용해서 다 나았나 싶더니만 요새 계속 울고 열이 끓는대.
언제 원이 때문에 속 썩었냐는 듯 옆 침대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엄마.
“울지 마 아가~. 괜찮아, 괜찮아”
젊은 엄마는 베트남어가 아닌 한국말로 갓난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엄마는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나에게 빨래 거리를 주고 속옷이나 필요한 것들을 챙겨 오라고 일렀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엄마는 이모나 아빠가 오면 가끔 집에 가서 씻고 오거나 낮잠을 자고 돌아왔다. 마침 병원에 들러 엄마와 점심을 먹은 아빠가 나를 집에 태워다 주기로 했다. 병원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지 않지만 왔다 갔다 하는 대중교통은 상당히 불편했고 집에서 엄마의 짐을 챙길 동안 아빠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병원으로 태워다 주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빨래를 돌리고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화장실 변기에서 찌린내가 나고 물때가 누렇게 껴 있었다. 세면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볼일을 보지 않고 그냥 나왔다. 주방을 살펴보니 설거지통에 라면을 먹은 냄비와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가득 찬 음식물 찌꺼기에서도 냄새가 났다.
'이게 뭐야?'
나는 엄마와 아빠 둘 다에 대한 분노로 숨이 턱 막혔다. 이렇게 엄마가 힘든 상황일 때 한번, 단 한번 만이라도 엄마가 집안일에 신경 안 쓰도록 처리 해 놀 수는 없었던 건가? 엄마가 여행을 갔을 때 나에게 세탁기 작동법을 물어보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났다.
엄마에게도 화가 났다. 엄마는 병원에 있는 동안 아빠한테 빨래 부탁을 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대전을 오는 나를 기다렸다가 옷을 맡긴 거였다.
- 청소 좀 해놔. 엄마 쉬러 들렀을 때 집안일하게 만들지 말고.
집에서 나와 아빠가 기다리던 차에 탄 나는 숨을 한번 가다듬고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참지 못하고 둘째에게 전달했다. 성격이 불같은 동생은 분노로 그치지 않고 아빠한테 갖은 욕을 한 모양이다. 평소에도 두 사람은 자주 부딪치는데, 붙같은 두 사람이 어떻게 다퉜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곧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네가 치울 거 아니면 가만히 있어라. 왜 나서서 분란을 만드니?”
동생한테 욕 얻어먹은 아빠는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 아빠에게 이번 사태는 본인이 먹은 그릇을 치우지 않고 변기에 묻은 오줌을 닦지 않아서 비롯된 갈등 이 아니라 두 딸을 버릇없게 키운 엄마의 양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게 지론이었다.
- 엄마는 그동안 분란 만들기 싫어서 이렇게 살았잖아.
동생과 나는 엄마한테도 지랄을 했다.
가족의 싸움은 끝없이 반복된다. 왜 항상 이 모양인지, 엄마는 왜 그렇게 사는지 동생과 나는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변기를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 일거라는 게 머리에 그려졌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