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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binciii Oct 17. 2019

포틀랜드가 궁금해

포틀랜드와 에이스 호텔 - 1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힙한 도시로 회자되는 도시가 있다. 바로 미국 오리건주의 포틀랜드다. 작년 여름 서점에 갔을 때도 포틀랜드에 대한 책이 한가득이었을 정도로 핫한 이 도시가 '대체 왜 그리도 핫한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나이키의 도시, 킨포크의 도시, 자전거의 도시라는 별명들을 제쳐두고도 포틀랜드는 고작 사진 몇 장으로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연중 강우량이 높은 날씨와, 주변이 산과 광활한 자연으로 둘러 쌓인 환경 속에서 포틀랜드가 독보적인 도시가 된 게 참 흥미로웠다.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나서도 도시의 느낌이 변질되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그렇게 포틀랜드에 대한 궁금증을 한국에서 뉴욕까지 데려왔다. 서울만큼 바쁜 이 도시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맨하탄의 꺼지지 않는 전광판과 끊임없이 몰려드는 인파에 치여 지칠 때쯤, 나는 포틀랜드에 가기로 결심했다.










새벽부터 존에프 케네디 공항으로 향했다. 연이은 과도한 업무에 컨디션이 좋지도 않았고, 새로 산 연고 때문인지 피부는 뒤집어졌다. 눈이 팅팅 부은 채로 공항으로 향했다. 시작부터 피곤함 가득이었다. 공항에서 대충 베이글을 사서 비행기에 탔는데, 봉투에는 딱딱한 베이글과 버터가 들어있었다. 나는 분명 크림치즈를 주문했는데.. 기내식도 거르고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쿠키만 좀 먹다가 잠이 들어 꼬박 다섯 시간을 비행했다. 이제 거의 도착했겠다 싶어서 창문을 열어보니 눈 앞에 펼쳐지는 후드산 꼭대기에 할 말을 잃었다. 포틀랜드 여행의 시작이었다.





포틀랜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무려 5개월 만에 만난 대학 동기이자 여행 메이트인 오빠(친오빠 아님)와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 예약한 숙소에 짐만 던져 놓은 후 다운타운으로 가는 우버를 탔다. 고대하던 포틀랜드에 왔다는 사실 하나로도 우리는 신이 났다. 이 멋진 여행을 위해 각자 뉴욕과 엘에이에서 날아왔으니 신이 나야만 했다.












뭐든 배 먼저 채우고 봐야 하는 법. 다운타운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브런치를 먹으러 Tasty & Alder로 향했다. 워낙 유명한 가게라 웨이팅은 필수였기에 기다리는 동안 다운타운을 살짝 돌아봤다. 포틀랜드의 다운타운은 작고 조용했다. 길을 걷다 사진에서 수없이 봤던 반가운 트램도 만났다.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포틀랜드에 와있구나 !







꽤 긴 웨이팅을 감수해야 했지만, 살구 메이플 시럽을 얹은 토스트와 체다 에그 앤 스테이크는 기다린 시간을 후회 없게 만들어주는 맛이었다. 그야말로 입에서 녹았다. 우린 연신 '맛있어!'를 연발하며 음식을 전부 해치웠다.










포틀랜드에 기대한 것들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중 손에 꼽게 기대했던 것이 바로 에이스 호텔(Ace Hotel)과 스텀프 타운 커피(Stumptown Coffee Roasters)였다. 포틀랜드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렀다 가는 곳. 포틀랜드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곳. 대체 사람들은 왜 스텀프 타운 커피에 열광하고 에이스 호텔 로비에 앉아 처음 보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창 밖을 바라보는 여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나같이 포틀랜드의 랜드마크로 이 호텔을 꼽는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해져서, 가장 먼저 에이스 호텔로 향했다.





깔끔한 메뉴보드와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패키지




에이스 호텔 로비와 이어져있는 스텀프 타운 커피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블루보틀, 인텔리젠시아 커피와 함께 3대 커피로 손꼽히는 이 커피 브랜드는 여기 포틀랜드가 고향이다. 뉴욕 맨하탄 에이스 호텔 안에도 스텀프 타운 커피가 있어 이미 맛보았지만, 그래도 포틀랜드에서 시작한 커피인 만큼 본고장의 맛이 궁금했다. 스텀프 타운은 카페 내부의 깔끔한 디자인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두 패키징이 꼭 포틀랜드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아이스 라떼를, 오빠는 콜드브루를 시켰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스텀프 타운 커피샵과 이어져있는 에이스 호텔의 로비로 넘어왔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너무 좋았던 포틀랜드의 에이스 호텔 로비.




로비 한가운데 놓인 널찍한 테이블, 모두 가운데를 향하고 있는 소파와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바로 옆 스텀프 타운 커피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향은 잠시라도 앉아 여유를 부릴 구실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꽤 많은 부티크 호텔들을 다녔지만 에이스 호텔은 로비부터가 좀 달랐다. 호텔에 묵는 사람이 아님에도 누구나 로비로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노트북으로 웹서핑을 하고,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이 공간 자체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나무 벽과 카키색 계열의 소파, 그리고 이와 딱 맞춘 듯 어우러지는 색감의 카펫이 모여 에이스 호텔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샹들리에와의 조화도 인상적이었다.




에이스 호텔의 안내 타이포와 로비 내부. 포틀랜드 에이스 호텔은 투숙객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준다.  



화려하거나 비싸 보이지 않아도 무엇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것 없이 안정적이고 조화로웠다. 나는 포틀랜드를 닮아있는 이 호텔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포틀랜드 에이스 호텔이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에이스 호텔의 시작은 시애틀이었다.

1999년 시애틀에 처음으로 문을 연 에이스 호텔은 2007년 포틀랜드에 2호점을 열었고 현재 뉴욕, 교토, 시카고 등 총 열 개의 지점을 지니고 있다. 에이스 호텔은 지점을 낼 때마다 도시에 맞게 각기 다른 형태로 키워나가며 신선한 호텔의 모습으로 미국 내에서 주목받아왔고, 모든 지점들은 끊임없이 이벤트가 열리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에이스 호텔은 지역의 낡고 오래된 공간을 개조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키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뉴욕의 에이스 호텔 로비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의 에이스 호텔은 포틀랜드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공동 작업공간의 느낌이 강한 이곳은 각양각색의 뉴요커들이 노트북과 책을 들고 모인다. 나 역시 스텀프 타운 커피에서 라떼를 들고 로비에 앉아 한참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떴다. 다음번엔 노트북을 가져와 디자인 작업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두운 느낌의 로비가 아늑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포틀랜드의 에이스 호텔 로비와는 확실히 달랐다는 게 가장 재밌는 점이었다. 같은 호텔 브랜드이지만 도시에 따라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는 게... 내가 가본 두 곳도 확연히 달랐는데, 또 다른 도시들의 에이스 호텔은 어떨까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에이스 호텔 웹사이트



그래서 찾아본 웹사이트. 에이스 호텔을 직접 가보기 어렵다면 에이스 호텔만의 에이스 호텔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웹사이트에 도시마다 다른 타입 페이스로 호텔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재밌다. 심지어 각 지역들과 잘 어울린다.(나는 아직도 포틀랜드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는지 포틀랜드 타입 페이스가 제일 예쁘다) 웹사이트에는 호텔에서 열리는 여러 가지 이벤트들도 소개되어 있으니 페이지를 들락거리며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간다.


ACE HOTEL Website : https://www.acehotel.com/





심지어 웹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에이스 호텔의 굿즈들마저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에이스 호텔에 머물렀다면 굿즈를 몇 개 지르고도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웹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에이스 호텔의 굿즈들







Ace Hotel is a collection of individuals, multiple and inclusive,
seeking to embrace the cities we’re in by building spaces for collective gathering. Whether thoughtfully reinterpreting historic buildings or imagining radical new structures, our aim is always to make something energized, human and useful.




포틀랜드에 에이스 호텔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다소 침체되었던 다운타운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호텔이 가진 힘은 대단하다. 에이스 호텔의 웹사이트에 소개되어있는 문장들처럼, 호텔이 그저 숙박의 공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소통하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모임과 창조의 장소가 되어 도시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 참 매력적이다. 포틀랜드에 가면 꼭 에이스 호텔에 들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만큼 도시에 대한 이해와 존중,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한 고민이 보이는 공간이었다.


이번 포틀랜드 여행에서는 호텔의 로비와 카페를 구경하는 것에만 그쳤지만 포틀랜드 감성을 닮은 객실 내부와 모두 로컬 브랜드로 이루어진 어매니티 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포틀랜드 여행 첫날, 에이스 호텔을 나오며 마음으로 수십 번 다짐했다. 다음에는 에이스 호텔이 있는 도시라면 꼭 그곳에 체크인을 해야겠다고.







- 포틀랜드 여행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직접 찍은 사진들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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