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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우리는 결국 손을 잡고 위를 봐야 한다

서로를 죽이고 죽는 게임을 멈추고

by AskerJ


*오징어게임 시즌2 스포 있음.


오징어게임 시즌2가 공개되고,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보았다. 일단 나는 재미있게 보았고, 끔찍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생생하게 보여준 것 뿐 실제는 이보다 훨씬 심할 수도 있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오히려 오징어게임을 통해 그간 내가 막연하게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느껴졌던 부분에 대해 단순히 내 느낌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게임에 참여한 개인의 선택인가


오징어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의 질문과 항의는 게임 진행자에게로 향한다. 상금이 얼마인지, 진짜 주는게 맞는지, 게임을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등등... 진행자의 안내는 명확하고 참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듯 보이며 얼핏 민주적으로 느껴진다. 동시에 계속해서 '이 모든 것은 너의 자발적인 선택'임을 강조한다. 마치 참여자 중 '진기명기'가 자신의 유투브 코인 주제 채널에서 '이 코인 안 사면 **' 등의 말들로 불안과 손실 회피심리를 잔뜩 자극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나서 마지막에 의례적인 멘트인 '모든 투자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로 책임을 피하는 것과 같은 태도다.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끊임 없이 불안을 조장하고 경쟁을 부추기며 박탈감을 유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은 자신만의 깊고 단단한 세계를 구축하기는커녕 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챙기며 살기도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사회는 (그리고 그 시스템을 만들어 이익을 보는 사람들) 끊임 없이 이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개인에게로 돌린다.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게임을 제시하면서 '싫으면 안하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 사회는 '결국 이 모든 건 너가 자초한 결과야'라고 말한다. 그러면 개인은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거나, 자신과 다른 편에 서 있는 듯한 다른 개인에게 화살을 돌리며 궁지에 몰린 압박감과 두려움을 공격으로 피하려 하게 된다. 결국은 그 대상도 또 다른 절벽에 서 있는 개인일 뿐인데도. 개인들의 불안과 혼란과 분열은 이 판을 짜고, 유지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세력들에게는 치열해질수록 이득(물질적인 이득뿐 아니라 우월감, 재미, 쾌락 등 심리적 이득까지)이 된다. 한 개인이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게임 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게임을 제안해서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끌려가는 걸 택하는 사람이 400명이 넘어간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일까, 이 말도 안되는 선택을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개인들이 넘쳐나는 사회의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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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가


오징어 게임에서 사람에게 숫자가 부여되는 이유 그리고 서로의 존재가 의미 있어지는 지점, 둘 다 '이름'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오징어게임에서 투표 때 O를 선택하는 100억빚을 진 아저씨를 포함한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알려주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사실 그들도 통성명 했는데 조연이라 안 나왔나...?). 이름 아닌 아이디로 온라인 상에서 소통을 할 때 우리가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라는 뻔한 사실이 언급되는 맥락도 마치 그걸 모르는 것마냥 서로를 인격체인 사람으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대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오는 말이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이 진행될수록 게임판을 짠 사람들 못지 않게 참여자들은 서로를 사람이 아닌 '내가 살아남아 상금을 늘리는 일'의 수단으로 보고 대하기 시작한다. 그건 게임을 더 원하는 사람들도, 그만두고 나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위협받는다고 느낄 수록 더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기 쉽다. 모든 개인이 애초에 서로에게 잔인하다기보다는 서바이벌이라는 구도 자체가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라는 게임 룰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사회도 끊임 없는 박탈감을 불러 일으키며 도태되면 안된다(남들이 나보다 앞서가면 자연히 나는 뒤에 서게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우리는 결국 '손을 잡고' 위를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바이벌에서도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묻고 듣고 서로의 생존을 응원하며 게임 밖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 성기훈씨야 이미 게임에 대해서 알고 나름의 대의를 위해 들어온거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자신만의 절박한 사연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뭐가 달랐을까. 다는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 있었다. 나 외에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 정배에게는 성기훈이 있었고, 모자에겐 서로가 있었고, 현주와 대호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준 사람들을 게임 안에서 만났다. 나만 살아서 나가면 된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아서 게임 밖으로 나가는 것이 목적이 된 사람들이다. 서바이벌이 아닌 연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게임 룰에 휘말려 서로를 적으로 보는 대신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우리는 이 게임 자체를 뒤로 물러 서서 바라보게 된다. 다 같이 살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게임을 만든 사람들, 구조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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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끔찍하고 아프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 없이 일어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 틈에서 서로의 손을 잡기 시작한 우리가 보인다.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한 와중에 서로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오가는 마음들이다.


꼭 어떤 큰 일에 대단한 도움이 아니어도 된다. 온라인상에서라도 서로에게 말을 건넬 때 한번 더 생각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남긴다고 생각하면서 건네는 노력,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날 선 아픈 말들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나의 불안,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멈추는 노력도 이 사회를 오징어게임이 되지 않도록 막는 중요한 일이다. 나와 상대를 어떤 목적의 수단으로 대하고 있진 않은지, 잘해주진 않아도 존중은 해주고 있는지 순간순간 멈추어 점검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노력들은 결국 우리 안에서 그치지 않고 연대해서 커진 힘으로 위를 바라보고 더 좋은 판을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그 모든 과정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존중하고 받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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