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간을 보내며
*본 글은 가까운 이를 잃은 마음과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아직 이별로 많이 힘든 분에게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립니다.
지난 주에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버티고 버티던 친구가 너무 지쳤는지 손을 놓아버린 그 날 아침에도 우린 카톡을 주고받았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전한 마지막 말은, '오늘 목표는 숨 잘쉬기야!' 였습니다. 항상 미안하다 고맙다 답을 잊지 않았던 친구가 그 톡에는 답을 하지 않는 것에 좀 더 위기감을 느꼈어야 했을까요? 약속한대로 병원에 잘 갔겠지, 그렇게 오늘 하루를 또 버티면 점점 더 나아지겠지, 다시 한 번 입원을 권유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들 속에서 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친구 생각을 쉽게 떨치기 어려워 연구를 위해 만난 상담사 동료들에게 친구이야기를 하며 내가 힘든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오히려 상담사로서는 자살위기의 내담자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가 분명한데, 친구로서는 어디까지가 최선인지 참 어렵고 막막했거든요. 동료들은 늘 그렇듯 나의 최선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며 별 일 없을거라 다독여주었습니다.
그 때, 다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 친구가 걱정되어 전화했는데 친구가 아닌 경찰관이 전화를 받았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급히 전화를 해보니 울면서 받은 친구가 경찰관이 보호자가 아니라 친구의 상황을 알려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고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직감과 동시에 아닐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몰려와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전화한 친구가 걱정되어 혼자 있지 말고 아이 하원시키면 가족들과 함께 있으라고 당부했습니다. 동료들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해주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건지 알고 싶은 마음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 버거워 멍한 상태로 귀가했습니다. 일단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이리저리 펼쳐지는 생각들로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폰을 볼 때마다 무슨 연락이 와 있을까봐 긴장하게 되는게 느껴졌습니다. 애써 그 친구가 병원에 있고 우리가 찾아가 등짝을 찰싹 때리며 많이 놀랐다고 타박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 것만 같았고 그 외에 다른 생각은 막고 싶었거든요.
결국 다음 날 점심쯤 그 연락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친구가 어제 떠났다는 연락을. 아무리 막아도 밀려들던 예감이 있었음에도 새롭게 마음이 쿵 떨어졌습니다. 열심히 참아두었던 울음이 터졌습니다. 이 친구를 함께 알던 남편에게도 소식을 전했습니다. 남편에게 하원을 부탁하고 소식을 전해준 친구와 장례식장에 같이 가자고, 친구 부모님은 언제 장례식장에 도착하시는지 묻고 나서 당장 달려갈 수 없는 시간들이 막연해졌습니다. 연락을 받기 직전까지 하던 일들이 아무 의미 없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닥친 일들을 해 나가야되는 상황이 야속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른 친구와 만나 우리는 잠시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일부러 운전해서 가는 길은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장례식장에 들어가려니 또 떨렸습니다. 접객실 앞에 친구의 사진을 보니 순간적으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친구가 떠났다는 걸 너무 분명히 보여주니 더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무너지셨을 친구의 부모님을 위로하자고 다짐하며 들어갔는데 부모님은 의아할 정도로 태연하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친구의 영정 앞에서 너무 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애써 참으며 우리 뒤에 서 계신 친구의 부모님이 의식되었습니다. 거듭 고맙다 말씀해주시는 부모님께 친구의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부모님이 보시기엔 약하고 염려되는 아들이었을 수 있지만 힘든 시간을 정말 열심히 버티고 용기 있게 필요한 도움과 치료를 꾸준히 받아온 의지가 강한 친구였음을, 정말 그 어려운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실망하실까봐 본인의 상태를 차마 솔직히 말하지 못한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아침에 부모님께 인사하며 문을 나선 그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습니다. 등 뒤에 있어서 몰랐는데 아버님이 말씀해주셔서 보게 되었습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아버님이 직접 주문하신 화환을요. 엄마 아빠가 사랑한다는 말이 쓰여진 그 화환에 또 한 번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두 번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아버님은 어제 경찰 조사를 받으셨다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두 마디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더 잘해줄걸, 좋은 곳으로 갔기를.' 유일하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걸 보며 함께 울었습니다.
친구의 핸드폰이 잠겨 있는데 제조사에 가도 잠금을 풀 수가 없어 친구의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이 전 교회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라 최근까지 다닌 교회에 연락을 하고, 함께 교회를 다녔던 인연들에게 우리도 닿는 대로 연락을 돌렸습니다. 부모님은 우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면 두 분만 조용히 식을 치를 예정이셨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친구의 지인들이 모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는 듯 했습니다. 몇 년간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음에도 한 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순간만큼은 그 친구도 함께 하던 몇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그렇게 장례식장에서 밤까지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미처 예약 취소를 못 한 운동을 갔습니다. 이성적이라 너무 빨리 괜찮아질까봐 걱정했던게 무색하게 운동하면서도 자꾸 친구 생각이 나서 울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워 평소처럼 글로 풀어내고 소화하려고 모니터를 켰다가 한 두 문장을 쓰고는 닫았습니다. 아직은 그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가 느껴져 무리하면 안되겠다 싶어서요. 상담사로서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자책하지 말라, 스스로의 최선을 믿어줘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친구의 사망으로 인한 이별을 처음 겪은 저는 이제야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나의 최선에 대해 끊임 없이 되묻게 되더라구요. 왜 친구에게 달려가지 않았을까, 어디냐고 묻지 않았을까, 좀 더 입원을 강하게 권유할껄, 부모님한테 나라도 알릴 순 없었을까... 도돌이표 같은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 질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그러다 가뜩이나 슬픈 나를 괴롭히는 취조는 이제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런 질문이 들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만큼 이 일이 슬프고 아쉽구나. 그만큼 막고 싶었구나.' 라구요. 그 질문을 하게 되는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습니다.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많이 미안해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던 그 친구를 떠올리며 내가 너무 많이 힘들어하는 것도 미안해할테니 내 일상과 마음을 잘 지켜가며 기억해야지 다짐했습니다. 그게 마음처럼 잘 안될 때는 나만큼 그 친구와 가까웠던, 그래서 어떤 마음인지 가장 잘 아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보냈습니다. 일상에서의 다른 고민도 나눠가면서요. 생각보다 괜찮을 때도 회의감이 느껴졌고, 아직 안 괜찮다는 걸 느낄 때도 불안했습니다. 그러다 그냥 어떤 마음이든 어떤 상태든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다 자연스러우니 거기에 굳이 의미를 더해가며 무겁게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조금은 더 준비가 된 것 같아 글로 남깁니다. 어제도 그 친구의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은 겨울에 가까운 날에 내리는 봄비를 보며 봄이 올 때까지만 버텨주지... 따뜻해지면 좀 더 나아졌을텐데... 못내 아쉽고 슬펐습니다. 그 친구가 처음으로 울며 이야기하는 걸 듣고 식당에 들어가려던 걸 멈추고 밖에서 전화하며 서성이던 길도 보였습니다. 친구가 생각나면 속으로 말걸곤 합니다. 거긴 편안한지... 거기서는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길... 너는 적어도 나에겐 미안할 일 없었던, 고마운 존재였다는 걸 알아주길... 친구가 미안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리워하고 서운할 정도로 빨리 잊지는 않으며 보내야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