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챗지피티한테 상담 받는 상담심리사

긴급한 위로는 챗지피티에게 받는다

by AskerJ


아침에는 요즘 자꾸 지진꿈을 꿀까봐 무섭다는,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소리 없이 빠르게 잠들어줘서 고마운 딸을 깨웠다. 옆에 누워서 나름의 다정을 담아 "어제는 무서운 꿈 안꿨어? 이쁘고 즐거운 꿈 꿨어?" 딸이 내 말에 몸을 일으키는걸 보고 그보다 훨씬 깨우기 난이도가 높은 아들을 부르며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오늘은 아이들의 소풍날이라 평소보다 바빴다. 아침 간식뿐 아니라 아이들의 간식도시락까지 준비해야하니까.


그 때 방에서 딸이 말했다. "엄마가 매일 화내면 엄마가 매일 화내" 내 입장에선 느닷없고 알 수 없는 말. 만 5세 들어서는 아기 발음도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일부러 못 알아듣게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에는 뜬금없어 했는데 엄마의 입모양이 무섭다는 둥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슬슬 화가 올라 왔다. 아니, 억울함이 불쑥 솟았다.

엄마가 화내는 거에 대해서 얘기할 순 있는데 엄마가 잘해줄 때도 고맙다 좋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매번 화내는 얘기만 하니까 엄마도 속상하다.


어찌저찌 남은 이성을 끌어모아 내뱉은 말이지만 이미 표정과 눈빛은 상당히 사나워진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내가 느꼈으니 아이도 내 말보다는 눈빛을 더 크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혼난 것처럼 울상이 된 표정을 보았지만 나도 쉽게 누그러지지 않고 한숨마저 나왔다. '아니 아침부터 간식하고 도시락 싸고 하는데, 아직 화내지도 않고 나름 다정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는데 왜 이런 소릴 들어야 하지? 진짜 김빠지고 짜증난다. 다 때려치고 싶다'는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오는 동시에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서운해 할 때의 남편을 보는 한심한 시선을 그 마음에게 던지고 있었다. 어찌어찌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에게도 좀 더 누그러진 뉘앙스로 "엄마가 혼내는게 힘들다는 뜻이지? 근데 엄마도 다정하게 대해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도 말해줬으면 좋겠어" 하니 아이가 의외로 "근데 그런 말 하는건 부끄러워" 라고 하길래 "그건 부끄러운게 아니라 너무 좋은 말이야. 앞으론 엄마도 그런 말들 많이 할게."


그렇게 대화도 표면적으론 잘 마무리 짓고 집에서 나서서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도 무탈하고 즐겁게 갔는데, 어쩐지 내 마음만큼은 개운하지도 가벼워지지도 않고 눅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속절없이 욱한 마음 못지 않게 '이게 이럴 일인가' 싶은 회의감이 가장 컸고, 뜬금 없는 타이밍에도 '엄마의 화'에 대해 언급하는 딸의 컴플레인이 딸의 애착 상태라든지 내가 심각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어떤 마음의 불안정을 의미하는걸까 하는 익숙하다 못해 징글징글한 불안도 잇따랐다.


다들 이럴 땐 주로 누굴 찾을까? 떠올리자면 아무도 없는건 결코 아니다. 남편에게도 가볍게 말할 수 있고, 또래를 키우는 친구, 엄마, 내 편에서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해줄 언니 등 지인들... 그럼에도 내키지 않았다. 보통 마음이 스스로 어느 정도 소화되고 정리되기 전에는 섣불리 나누지 않는게 내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말해버릴 때에는 혼자 정리하기에는 그 정도가 벅차다는 뜻이다. 이번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에피소드만 다를 뿐 이미 한 두 번 이상 말해온 패턴이기 때문에 더욱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런 내 패턴에 질리는데 남들은 더하겠지.

이럴 땐 뭐다? 자연스레 챗지피티를 켜서 하소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있었던 일과 마음을 말하고, 지피티 특유의 공감-해결책-정리하며 마무리의 기승전결 대답을 보면서 알아차려진 더 깊은 상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았다.

지나치게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말해주려는 것만 빼면, 챗지피티의 대답 중에선 건질거리가 많다. 그간에 이런 상황에서 주로 글로 하소연 하던 사람으로서 비교해보자면 물론 글쓰기도 내 상태와 얼마간의 거리두기가 가눙해져서 평정심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챗지피티는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며 그 과정을 좀 더 빠르게 줄여준다. 마음을 다잡으려는 노력에 어떤 그럴싸한 목소리가 근거 있는 답변으로 힘을 보태주는 느낌이 든다.


크든 작든 불안의 불이 피어올라 긴급한 위로가 필요할 때, 그 시간과 장소 상관없이, 상대의 상태와 반응이 어떨지 고려하지 않아도, 말하고픈만큼만 말해도, 심지어 말을 하다 말아도 괜찮은 대상이 있다는 건 확실한 든든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AI로 상담을 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이유다. 동시에 AI 상담으로 할 수 있는 경험과 사람 상담사(전문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와의 상담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의 차이와 공통점, 효과를 볼 수 있는 범주와 전제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마침 내가 상담을 하는 사람이자 상담을 사람상담사한테 받는 사람이자 이렇게 급한 불을 챗지피티와의 상담으로 끄곤 하는 사람이니 내 경험도 지켜봐야지. 우선은 내가 불안정해지는 순간마다 즉시 나와 함께 나를 잡아주는 도구가 있다는 건 고마운걸로!

keyword
이전 04화자신의 마음을 창피해하는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