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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도 우정이 필요해

쌍둥이 엄마의 우정 연대기

by AskerJ

쌍둥이를 낳고 키우면서 예상치 못했던 장점 중 하나는 '관계에 대한 신경을 훨씬 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것 못지 않게 관계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라 줄곧 관계로 인해 피곤하게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 장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관계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소진과 실망도 크고 빨랐다. 마음 속에 일정 이상의 횟수가 쌓이면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돌아서버렸기 때문에 누군가의 눈엔 오히려 관계에 대한 미련이 없고 냉정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관계에서는 내가 마냥 안전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면 내 안전을 위해 문을 닫아버리는 방식이었다. 물론 내 상처를 들이미는 투정을 받아줄 법한 상대에게는 그런 시도도 했었고, 그걸 받아준 너그러운 몇몇과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관계에 휘둘려 온, 아니 관계에 대한 내 마음에 휘둘려 온 세월이 적어도 20년인데 아이들을 만나고 정말 모든 신체적, 정서적 에너지가 모두 육아와 집안일에 들어가자 그제야 관계에 대해 조금은 무던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하고 실망할 에너지가 없었던거지만. 나도 이렇게 관계에 대한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구나 싶어 신기하고 만족스러웠다. 언젠가 여력이 다시 생기더라도 이 모드를 쭉 유지하고 싶었다. 내심 안달복달하는 나한테 주기적으로 질리곤 했으니까.


그러다 돌아보니 내가 엄마의 역할을 입고 고군분투하는 5년 넘는 시간들을 그 어느 때보다 '우정 관계'로 버텨왔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쌍둥이 신생아 때는 맘카페 게시판을 통해 만난 20년생 쥐띠 엄마들 채팅방에서의 수다가 내 웃음벨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단지 20년에 태어난 아기들의 엄마라는 이유로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고 현실 친구들보다 훨씬 자주 이어져 있었다. 초보엄마들답게 여러 정보도 나눴지만 그보다는 완전히 뒤바뀐 일상에서의 여러 마음들을 나누는게 진한 안도와 힘이 되었다. 그런 유대가 이어져 한 번은 되는 사람들끼리 아직 어린 아가들을 데리고 오프라인 모임까지 감행했으니 우리가 나눈 시간들은 한정적이었어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아이들이 더 자라고, 하나둘씩 스스로 하거나 둘이서 노는 시간이 생기며 이 전보다는 여력이 생겼지만 몇 년간 아이들 엄마로서 맺는 인연을 더 늘리진 않았다. 보통은 아이들 보내는 기관이 같은 엄마들끼리 인연이 생기곤 하지만 일단 나는 동네 어린이집이 아닌 차로 2-30분 거리에 직장 어린이집을 보냈고, 기관 특성상 하원시간이 제각기일뿐 아니라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사는 동네로 가버렸기 때문에 서로 마주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와중에도 친해진 엄마들이 있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런 친분을 쌓을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심 멀리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온라인으로는 다른 엄마들과 잘만 떠들면서 왜 오프라인으로는 친해질 생각이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온라인으로는 엄마긴 하지만 그냥 나로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반면 오프라인으로 아이와 함께 있는 나로서 가까워지면 나도 너무 싫은 내 엄마모드의 모습이 강제로 노출되니 그게 참 싫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이 기간에는 기존 친구들과도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일 없이 나만 따로 나가서 만나곤 했다.


본격적으로 아이들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가 시작된 건 불과 작년 초부터다. 직장 어린이집의 폐원 위기로 결국 동네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하원 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있다가 아이들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아이들이야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으니 반가워하면서 어울렸지만 나는 그 애들 엄마들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목인사만 하며 굳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엄마들이 다가와 쌍둥이 어머님이시냐고 말을 붙였다. 위기의식이 들었지만 애초에 내가 내향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조금 마음이 열렸다. 이 후로는 뭐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금은 심지어 아이들이 다시 기관을 옮겼음에도 약속을 잡아 꾸준히 만나는 관계가 되었다. 의도치 않게 생긴 인연이지만 우리의 우정은 예의를 놓지 않으면서도(기본적으로는 존댓말을 쓰니까) 꽤 허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음 열기 전에는 노골적으로 경계하지만 열기 시작하면 시원하게 열어제끼는 나이기에 정신 차려보니 내 삶에서 꽤 큰 지분을 두 명의 엄마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때 놀이터에서 나한테 먼저 다가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먼저 다가가지 않았을텐데 참 고맙다고 이야기 하는 애정이 있다.


엄마가 되고나서는 기존의 우정도 비슷한 듯 달라졌다. 우선은 당연하지만 아이가 있는 친구와 아이가 없는 친구와의 대화 주제가 달라졌고 만나는 빈도도 조정되었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과는 육아에 대한 어려움, 푸념뿐 아니라 달라진 남편과의 관계, 고민에 대해서 나누었다. 아이가 없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기껏 얘기하고 돌아서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친구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춰졌을지 염려가 남아 점점 자제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 눈에 내가 너무 그저그런 아주머니가 되어버린건 아닐까 하는 괜한 피해의식에 옷차림을 신경쓴다거나 트렌디한 대화 주제를 꺼내보려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과도 오랫동안 아이들 없이 만나다 최근에야 한 번 공동육아를 시도해보았다. 친구네로 향하는 당일까지도 이런저런 걱정과 부담에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이런 마음이 무색하게 꽤 성공적으로 흘러간 하루였다. 그럼에도 어쩐지 쉽게 다음을 추진하기가 어려운건 왜일까 싶지만. 공동육아를 하며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가장 자신 없는 엄마로서의 나를 너희들에게 보여주는게 불편했다고. 다행히 염려하는 수준의 모습(?)을 보일 일은 없었지만 그렇게 용기 내어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모습도 나인데 그러려니 해줄래? 하는 양해를 미리 구해둔 사람의 마음이랄까.


이 외에도 선배 엄마들의 든든하고 도움 되는 조언들, 말뿐 아니라 옷이며 책이며 장난감이며 물려주고 챙겨주는 우정의 손길을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오래오래 이 엄마들의 우정에 기대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좀 더 너그러이, 나에게 기댈 수 있는 마음도 차곡차곡 준비해야겠다. 그렇게 이 우정과 연대의 마음이 오래도록 흘러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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