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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맹 Jan 10. 2023

가을방학이 끝났다.

한국에 남기로 했다.

엄마아빠와 함께 했던 가을방학이 끝났다. 이가 아파서 해외에서 돌아와 엉겁결에 갖게 된 가을 방학이었다.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날도 있었고, 온갖 것이 떠오르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기간을 ‘방학’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정말이지 쉼과 같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거창한 욕심 없이, 지키지 못할 계획, 답을 찾지 못하는 걱정 없이 그저 쉬는 날들이었다. 중고등학생 때 가졌던 방학은 언제나 부족한 공부나 어떠한 실력 향상을 위한 활동들이 베이스로 깔려 있었고, 대학생 때의 방학은 걱정 투성이었다. 알바를 해서 용돈벌이를 해야 했고, 끊임없이 진로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고민의 깊이가 좁혀질 줄 몰랐다. 고민거리는 쉼을 가질 때 더욱 커지곤 했기에, 이번 나의 방학은 참으로 특별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기간 부모님과 살 붙이고 지낸 적이 있었을까? 세끼를 함께 먹고, 치과를 함께 가고, 시장을 함께 갔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부터는 서로에게 일상이라기보단 시간을 내고 일정을 맞추어 만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모님의 일상 속으로 젖어들 수 있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밭일을 나누고 수확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 전에는 알지 못했던 보람이 잔잔하게 차오르는 날들이었다.


이번 가을 방학이 계기였을까?

방학을 끝내고 원래 있던, 나의 대부분의 짐이 있는, 생활을 이어가던 스위스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나는 스위스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거기엔 여러 가지 소소한 이유들이 있기도 하고, 하나의 굵직한 이유가 있기도 하다. 고민을 많이 했고, 여러 차례 이랬다 저랬다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것이 몸으로 드러나는 편이다. 한 번은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가 정말 심할 때 손가락이 아팠다. 문서 작업을 그만하라는 손가락의 표현법이었을까,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 봐도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다. 또 한 번은 발등이 아팠다. 한창 현장으로 나갔어야 할 기간이었는데, 가만히 좀 있으라는 발의 신호였을까, 역시 병원에서도 아무런 이유를 찾아주지 못했다.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온 결정적인 계기는 치아의 통증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문제가 많던 치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갑작스레 발생한 통증의 지속으로 지내고 있던 스위스를 잠시 떠나게 되었다. 그때의 ‘잠시’가 ‘완전히’가 될 줄을 그때는 차마 몰랐다.


‘너 너무 행복해 보여.’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위스는 참 아름다운 나라이다.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웃으며 잘 나온 사진만 올려놓으니, 행복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 그런지. 그리고 이번에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정말 단순하게 치아’만’ 아파서 돌아온 건지.


출국일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적어도 ‘행복한 것’에 있어서 나 자신을 속이지는 말자고, 어떻게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마음의 소리를 듣자고. 그렇게 나 자신과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고민의 무게에 비해 답은 꽤 빠르게 나왔다.


사정을 전해 들은 친구들이 잘했다고 응원해주는 것도, 잘 되었다고 기뻐해주는 것도 내게는 힘이 되었다. 오랜만에 인생의 큰 결정 중 하나를 마쳤다. 가을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이제는 나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질 차례이다. 또다시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도록 차근히 단계를 밟아갈 시간이다.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스스로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 구겨 넣을 필요도 없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원래대로였다면 스위스에서 보냈을 연말을 경북 상주에서 보냈다. 부모님과 먹는 올해의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며 슬퍼하던 시간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렇게 또 한 해의 마무리를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소중했다. 집 앞의 백두대간 산책로에는 눈이 얼어붙어 길이 꽁꽁 얼어 있었다. 두텁게 쌓인 눈에 발자국을 하나씩 새겼다. 마음만은 얼어붙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하며 새해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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