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뉴스가 더 재밌는 요즘이다. 차라리 거짓말이면 좋았을 국내외 기막힌 소식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소식이 슬프고 우울하지만 그 중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소식은 바로 ‘돈’ 이야기이다.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벅찬 숨을 몰아쉬며 살아가고 있음을 아주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나는 갑작스레 ‘벼락거지’가 되었고, 비트코인(가상화폐)은 커녕 그 흔한 테슬라(해외주식)도 한 주 없는 ‘바보’가 되어있었다.
한 달에 커피 두 잔 값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늦은 점심,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아주 밝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국 XXX 입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왔다. 이 곳은 내가 얼마 전 SNS에서 관심있게 보고 지지서명을 한 ‘독립운동가 후손 주거개선 캠페인’ 봉사 단체였다.
(실제 내용을 재구성한 대화) -선생님 : 요즘 많이 힘드실텐데 이런 말씀 드리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해주신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마음을 담아 후원 해주실 수 있으실지 해서요. -나 : 아… -선생님 : 코로나 시국이라 다들 많이 어려우신데, 아주 작은 금액이나마 도움 주실 수 있으실지 하여 연락 드립니다. 한 달에 커피 한 두 잔 금액이라도 함께 해주시면 너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회사를 다니며 고정소득이 생기고부터는 힘을 더하고 싶은 사회문제(아동/노인복지, 환경 등) 관련 단체에 적은 돈이나마 정기후원을 해왔다. 그러던 중 이 전화를 받게 되었고 찰나의 시간 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추가 후원에 (심리적, 경제적) 부담을 느꼈고, 결론적으로 ‘휴직’이라는 나의 상황을 들어 아주 소.액.의 그것도 일.회.성 후원에 동참하기로 했다.
요즘 힘드시죠, 고생 많으십니다.
일회성 후원 절차 안내를 받고 전화 주신 선생님께 “요즘 너무 힘드시죠, 고생 많으십니다. 큰 도움이 못 되어드려 죄송해요.” 하고 끝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아…” 하는 탄식과 함께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방금 그 응원의 목소리가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네요.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은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해주셨다. 긴 이야기를 들어보니, 코로나로 후원액이 많이 줄어들었고 후원자도 많이 감소해 부득이 오늘과 같은 전화를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계심 가득한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후원을 부탁하는 것, 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누군가의 날카로운 말에 마음이 상하진 않았을지, ‘후원’을 이야기하는 순간 얼마나 긴장되고 떨렸을지, 그래서 오늘 하루가 얼마나 고단하셨을지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방금 전에 나 역시 그 작은 금액을 (그것도 일회성으로) 후원하면서 그 찰나에 '얼마나 이 선생님의 애간장을 태웠을까'하는 생각을하니 죄송한 마음에 마음이 아렸다. 그녀도 나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서로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하며 급히 통화를 종료했다.
돈은 다 어디로 간걸까?
아침에 일어나면 주식이 몇 배 올라있고 서울 집 값은 10억을 넘어섰다는데, 왜 봉사단체에의 후원은 중단되고 모금액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걸까?
생각하니 속이 팍 상한다.
정녕 사람들의 관심종목은 삼성전자, 테슬라 뿐인걸까. 집 값은 고공행진이고 코스피도 3000선을 넘나드는 오늘, 한 달에 만 원 후원하는 건 왜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돈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이어가는 ‘용기있는 의인’ 분들이 계심에 감사하고 동시에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몸과 마음이 저릿하다.
나의 단지(항아리)를 가꾸는 삶
각자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본인 만의 ‘장독대’에 크고 작은 단지(항아리)의 모습으로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에 담긴 가치는 현실적(금전, 직업 등)이기도 하고 이상적(꿈, 감정, 인간관계 등)이기도 할테다.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단지(항아리)가 있고, 금전(돈) 단지는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항아리에'만' 열과 성을 쏟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쩌면 이 단지는 이미 넘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삶을 구성하는 “단지(항아리)”를 고루고루 잘 가꿔 다양하고도 깊은 맛을 내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렇게 잘 숙성된 사람으로 익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돈은 은메달이지, 금메달일 순 없어
아는 선배가 “돈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요소야. 그런데 돈은 어떤 순간에도 2등일 뿐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제 1의 가치는 돈이 아닌 더 가치있는 것이어야 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장독대에 놓인 “단지(항아리)”에 소중히 담아둔 나의 가치들이 좋은 바람과 따뜻한 햇살, 생명력 있는 자연으로부터 건강히 발효되어 깊은 맛을 낼 수 있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장독대가, 그 속의 단지(항아리)가 그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