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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Sep 18. 2018

요리하지 않을 권리

요리 젬병, 마늘이 뭣이 중헌디?


나는 요리 못하는 여자다. 어릴 때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보지 않았고, 독립한 뒤에는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니 요리 비슷한 걸 만들어보기는 했으나 그 시간이 나에게는 노동이었다. 그래서 바깥음식을 자주 사먹었다. 샌드위치나 중화요리, 김밥 등등. 당연히 요리실력은 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요리 똥손이다.


결혼 후 소고기무국을 끓이려고 보니 마늘이 다 떨어졌다. 그래서 마늘 없이 만들었다. '마늘 중헌 줄도 모르고!' 이번 생에서 내 손으로 탄생시킨 최악의 국물맛을 꼽으라면 아마 마늘 빠진 소고기무국이 일등일 것이다. 남편이 증인이다. 그리고 이 괴상한 요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중이다. 심지어 라면도 내가 끓이면 맛이 없다.  

 

뭣이 중헌디!


하지만 나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났다. 내가 못하는 요리를 이제는 집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가 있다. 마트에 가면 조리된 반찬 한두가지씩은 사오곤 했는데, 얼마 전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반찬 배달주문을 해보았다. 전부터 반찬배달업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물을 볼 수도 없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재료를 쓰는지도 알 수가 없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 이용을 꺼렸었다. 차라리 내가 직접 반찬을 만들자 싶어 재료를 샀고, 장을 본 첫날 열의에 차서 요리를 하고, 다음날부턴 힘들어서 외식하고, 남은 재료는 냉장고에서 썩어가고, 썩은 재료 버리고 또 장 보고, 새 재료로 폭풍 요리하고, 지쳐서 외식하고,..... 무한 반복. 에잇!! 이럴 바엔 그냥 반찬을 사먹어라!!



반찬! 사 먹어, 말어?


조리된 반찬은 같은 양 기준으로 내가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든 것보다 비싸다. 그래서 반찬을 사먹을까 만들어먹을까 고민하며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1. 나는 요리에 흥미가 없고, 잘하지 못하고, 요리를 힘들어한다.
2. 식재료를 사서 반찬을 한 번 만들고 재료가 남으면 다음 요리를 해야 하는데, 남은 재료는 결국 썩어 없어진다. 재료를 버리는 건 결국 돈을 버리는 셈.
3.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고 요리에 도전한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만들어먹을 뿐, 원재료의 형태가 전혀 안 남아있는 가공식품과 자극적인 외식요리를 더 자주 먹게 된다. 배달반찬을 매일 먹는 것 vs 어쩌다 한번 직접요리와 잦은 외식, 어느 쪽이 건강할까?
4. 조리된 배달반찬을 사는 비용 vs 버리는 식재료와 외식 비용, 승자는?


이와 같이 고심한 끝에, 배달반찬을 사먹어보기로 했다.



반찬을 사게 된 이유


반찬을 사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을 때, 사먹기로 결정한 데는 남편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했다.


"반찬 없어서 외식하는 돈이나, 배달반찬 사먹는 돈이나!"라든가,

"식재료 다 못 먹고 버리느니 정량씩 파는 반찬 사먹는 게 나아."라든가,

"집에 뭐라도 있어야 끼니를 잘 챙겨먹지. 뭐가 없으니까 대충 먹거나 거르거나 외식하게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반찬을 사먹게 되었다. 요리하는 노동 시간이 줄어드니 나의 스트레스도 줄었고, 남편은 간만에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을 것이다.


이걸 먹을래? 아니면 (출처: pixabay)


물론 나도 내가 직접 만든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다. 그게 어쩌다 한 번이고 나머지를 정크푸드로 채워버리니 문제지. 배달반찬이 건강할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알 수 없으니 불안할 뿐이다. 그럼에도 버섯볶음, 나박김치, 코다리조림 등 배달반찬을 선택한 이유는 평소 정크푸드와 가공식품으로 채워진 우리 식단보다는 건강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매일매일 건강한 요리를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 그렇게 못 하니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밑반찬을 주문하면서 반조리 돈까스도 함께 시켰는데, 성분표를 보니 마가린이 포함돼 있는 거다. 다른 반찬에는 이렇다할 인상 찌푸려지는 성분이 없었다. 돈까스에 마가린이 들어갔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에는 걸러내면 그만이다. 아니면 돈을 더 들여서 프리미엄 반찬몰을 이용할 수도 있다(비용 때문에 고민중).


이거랑 밥 먹을래? (출처: 더반찬)


반찬 배달의 결과


결론은 비용면에서 먼저 났다. 조리된 반찬을 배달시킨 덕분에 외식비가 줄었다!! 거의 반토막으로 줄었다(남편의 야근이 늘어나 저녁식사를 함께 하지 못한 탓도 있기는 하나!). 그리고 외식을 제외한 식비도 조금 줄었다. 전에는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을 주로 샀다면 요즘은 과일과 구이용 고기, 쌈채소, 간식 위주로 장을 본다. 고기 굽는 것 정도야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으니까.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하면 늘 만들던 자신있는 것만 만들게 된다. (지겨워!) 반면에 반찬을 주문하니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끼니마다 밥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최고로 좋았다.


이건 열 번도 만들 수 있어! 백 번도 만들 수 있어!


누군가에게는 요리가 즐거운 일일 수 있다. 나도 가끔은 즐겁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지는 못한다. 나는 어쩌다 여자로 태어났고 어쩌다 '아내'의 역할을 맡았지만, 요리하는 것이 하나의 취향이 된 이 시대에 아내가 반드시 요리를 잘 해야 한다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다. 요리를 못해도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시집 어른들은 요리솜씨를 두고 나를 타박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좋은 점은, 요리를 못 하는 내가 가끔 음식을 만들어 내어놓으면 어른들이 기특하게 여기신다는 거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명절은 내가 뭔가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기보다 어른들에게 음식을 배워오는 시즌이다. 결혼한 지 만 5년이 된 나는 아직 배울 게 많다. 하나하나 배워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요리에 심취해서 안방셰프로 거듭날 수 있....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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