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홈PD Oct 29. 2020

마음 울적한 날엔 쇼핑을 하게 되고

홈쇼핑 심리학 에세이 (18)

“정말 너무하네. 어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할까."


상사에 대한 얼마간의 분노와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은 보통의 직장인들이라면 거의 매일 갖게 되는 감정일 것이다. 월급을 받는 이유에는 그러한 일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아무리 자위를 해본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또다시 속상해하고 좌절하게 된다.


이런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런 스트레스를 제때 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에 치이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가곤 하니까 말이다.


일을 하다 문득 내다본 사무실 밖 풍경에 우울해질 때가 있다. 시간이 반 템포 정도 느리게 흐르는 듯한 바깥세상의 모습이 내가 있는 사무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가 아닌 보고서를 쓰고 있는 상황은, 아무래도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때, 속상함을 토로하던 그녀가 내뱉듯 말했다.


"아, 우울해. 뭐 살 거 없나."


스마트폰으로 쇼핑몰 상품을 뒤적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슬몃 궁금증이 일었다.


왜 우리는 우울할 때 쇼핑을 하게 되는 것일까.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우울함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우울하다 (憂鬱하다) :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다.
우울증 (憂鬱症) : 기분이 언짢아 명랑하지 아니한 심리 상태. 흔히 고민, 무능, 비관, 염세, 허무 관념 따위에 사로잡힌다.


즉 근심이 가득한 부정적인 감정이 우울함이고, 그것이 발전하면 스스로의 자존감이 매우 낮아지게 된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이 지속되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우리의 뇌는 즉각적으로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인간에게는 현재를 중시하는 '현재 중시 편향'(present bias)이 있기 때문이다. 슬픈 기분이 들면 즉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을 원하게 되는 심리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쇼핑이 그 해결방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쇼핑을 할 때 뇌의 보상 중추인 측좌핵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이다. 이는 본인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무의식적인 심리와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가 맞아떨어지는 탓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러한 쇼핑으로 얻는 '기분 좋음'은 일시적이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필요한 물건이 없는데도 허전함을 느껴서 하는 쇼핑은 구매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무언가를 소비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한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구매한 제품은 활용도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내가 이걸 왜 샀지'하며 후회하는 상황이 적잖게 벌어지는 이유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지출을 하게 되는 상황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홧김에 비싼 옷을 지르거나 비싼 음식을 시킬 때도 있고,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불필요한 화장품을 여러 개 사기도 한다.

적립금이나 쿠폰 등의 유효기간을 놓치거나, 미리 챙기지 않아서 ATM 수수료를 물게 되는 경우도 부정적인 감정에 놓인 상황에서 자주 발생한다. 감정에 휘둘리다 보니 이런 것들에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지갑을 열지 말고 먼저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라는 말은 그래서 당연하게 들린다. 현명한 소비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TV를 틀면 홈쇼핑이 곳곳에서 방송되고, 스마트폰 앱만 열어도 쇼핑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소비를 겁낼 필요가 있을까.

앞서 말했듯 불필요한 소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니만큼 필요한 것을 구매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구매행위 자체가 허전함을 달래주는 방편이라면, 평소에 사려고 했던 것을 우울할 때 구매하는 것이 그렇게 어리석은 소비활동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즉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불필요한 지출이나 충동구매이지, 소비 자체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되는 군것질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기 위해 일부러 카페를 찾아가기도 한다. 안 해도 되는 일에 돈을 썼다고 낭비라고 할 수 있을까. 미래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현재의 행위도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결국 소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그렇겠지만 선을 넘지 않는 적당한 지출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당장 풀고 싶다면, 도저히 퇴근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스마트폰으로 사고 싶었던 것을 주문하는 것이 5G 시대의 또 다른 현명한 소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마음 울적한 날에 쇼핑을 하게 되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울해하며 쇼핑몰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결국 김치를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적어도 사놓고 활용을 안 하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이전 17화 그는 정말 콜라 맛을 구분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