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느슨하게, 홍성에서 피어난 복담다 이현일 대표 이야기
홍성에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왜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자 [우리는 이렇게]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년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봉사하는 자영업자(봉자)’ 모임을 진행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을 가진 홍성의 소상공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약 20~30명의 사람들이 각자 준비한 물건, 음식 등을 십시일반 모아 지역 취약계층에게 선물을 배달한다. 봉사활동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지역의 소상공인들과 관계를 맺고 안부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저희 딸이 젤라부를 좋아해요.’
소상공인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중에 혼자 참석하는 분, 자녀들과 함께하는 분 모두가 힘을 모아서 모임을 준비한다. 이른 아침부터 초등학생 딸과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복담다’ 이현일 대표와도 봉자모임을 통해 처음 인사를 나눴다. 홍성에서 ‘보자기 포장’과 ‘한식 디저트’를 한다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있었는데, 모임 이후 접점이 없어 인스타그램을 통해 주로 안부를 나눴다.(인스타로 내적 친밀감은 충분히 쌓았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한번 보면 엊그제 만난 것처럼 오래된 사이처럼 편안한 사람.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와 표정, 말투 등으로 자연스레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다 ‘우리는 이렇게’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자연스레 복담다를 떠올렸다.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한 인연,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가는 삶의 결이 궁금해졌다.
이현일 대표는 홍성 출신이다. 광천에서 생활하다가 대전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며 고향을 잠시 떠났다가 졸업 후 다시 홍성으로 돌아왔다. 전공을 살려(사회복지학) 광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서른살 되던 해 결혼을 하며 당진으로 이주했다. 새로운 곳에서 출산과 육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이유로 다시 홍성으로 돌아오게 됐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충남권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결혼 후에는 당진에서 출산과 육아에 전념했죠. 아이가 6~7살 되던 해 다시 홍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와 가족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일이었죠. 그래서 당진에서 생활을 정리할 겨를 없이 홍성으로 내려오게 됐네요.”
이 대표는 죽음의 문턱까지 위협하는 병마와 싸우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혹독한 치료에 몸과 마음은 지쳐갔지만, 아이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엄마이고 싶었기에 고된 과정을 강하게 버텼다.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던 1년,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시간이었다.
“그땐 그저 성실하게 사는 게 전부인 줄 알았어요. 평범했던 오늘과 내일이 또 오겠지라는 막연한 자세였죠. 그러다 크게 아파보니 보장된 내일이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오가면서 건강이 회복된다면 무조건 더 재미있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죠. 매 순간이, 매일이 즐겁지 않더라도 느슨하지만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이전에 했던 사회복지 일도 적성에 맞았지만, 본인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평소에도 전통적인 아이템, 빈티지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치료 후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고 등등 여러 가지 요소에 부합되는 것을 찾다 보니 ‘보자기 공방’에 도달하게 됐죠. 무언가 해내고 싶은 열정과 결심이 강했기에 마지막 치료가 끝나자마자 바로 관련된 수업을 찾아다녔죠.”
보자기 포장과 한식 디저트 관련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차근차근 창업을 준비했다. 그녀의 열정과 결심 때문이었을까 일찍이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바로 공방을 오픈하지 않았다. 자격증만 가진 무늬만 전문가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만족하는 실력과 전문성을 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조급하지 않았다.
“거짓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더라도 제 스스로가 온전하지 않았죠. 내 작업물에 당당해지고 사람들 앞에 선보일 수 있을 때까지 광천에서 홈클래스를 운영하면서 실력을 쌓았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나아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3년이 흐르고, 천천히 공방 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지금의 공간을 만나게 됐습니다."
홍성 초등학교 맞은편, 빨간 벽돌로 된 건물 한편에 ‘복담다’가 위치해 있다.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공간, 아이들이 하교하며 떠드는 웃음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복담다에서는 금귤정과, 곶감단지, 호두강정, 양갱 등 다양한 한식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다. 복담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예쁘고 정갈하게 만들어진 모습에 자연스레 군침이 흐리기도 한다. 복담다에서는 단순히 한식 디저트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홍성의 특색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우, 마늘, 김 등 다양한 홍성 특산물이 있지만 관련된 디저트는 없었어요. 경주나 공주 등 다른 관광지처럼 홍성의 특색을 담은 디저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홍성 12경 중 홍주읍성 조양문을 보고 약과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직접 도안을 만들고 커터도 제작하면서 모양을 잡아갔습니다. 단순히 모양뿐만 아니라 홍성에서 생산되는 쌀과 농산물을 사용하여 그 가치를 더하고자 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결심하고 시작한 창업,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다. 공방에서 디저트를 만들고 때로는 외부에서 교육을 진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현일 대표는 ‘사람과의 연결’이 지역에서 창업하는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가진 재능의 범위는 정해져 있죠. 새로운 분야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만약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한다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지역사회의 큰 장점은 사람들과의 네트워크인 것 같아요. 도시에 비해 좁은 사회이기에 다양한 사람과 바로 연결될 수 있죠. 함께 협업하거나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수월한 편이에요. 반면 그만큼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야겠죠.”
지방소멸의 시대, 여러 지자체에서는 인구유입을 위해 다양한 청년정책과 창업지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도시에서 지역으로 이주하는 청년 창업가들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지역 창업가로서 지역 토박이로써 이현일 대표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새로운 시도도 중요하지만 기존 주민들과 신규 주민들의 융합도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인구 유입을 위해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열정 가득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멋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무 청년들에게 집중되어 그들만의 울타리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 아쉬울 때도 있어요. 기존 주민들과 새로운 청년들이 함께 화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정책과 사업이 함께 추진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10일
복담다에서 전통 디저트를 주문해서 픽업하기까지 최소 필요한 시간이다. 주문과 동시에 재료수급이 이뤄지고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만들기에 다른 디저트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 소비자들이 제작과정을 알 수 없지만, 본인 스스로가 정직하게 진심을 담아낸 결과물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전달되기에 항상 바른 마음가짐으로 복담다를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하는 손님들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재료부터 만듦새까지 더욱 신경을 쓰고 있어요. 복담다를 운영하는 마음가짐은 제 삶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일을 해야겠다 다짐했을 때부터 최종 목표는 정해져 있었어요. 지금은 그 목표를 향해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조급하지 않아요. 진심으로, 나답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멋진 내일이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복담다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이현일 대표가 만들어낸 디저트 하나하나에 깃든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재료를 고르고, 정성을 들여 모양을 빚고, 조심스레 포장하는 손길 속에는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진심을 다해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사람.
복담다의 문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삶도, 누군가를 위한 작은 디저트처럼 정성과 마음을 다해 준비할 때 비로소 빛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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