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에 담긴 계절의 바람, 농부의 땀, 마을의 온기
무더운 계절, 홍성을 여행한다면 꼭 들러야 할 로컬 브랜드가 있다. 시원하면서도 이색적인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양조장 ‘이히브루’가 바로 그곳이다. ‘남경숙’, ‘이연진’ 부부가 직접 마을에서 키운 쌀, 쑥, 보리수, 밀 등을 활용해 특별한 맥주를 빚어내고 있다.
푸르른 논밭을 지나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흙과 지푸라기로 지어진 작은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이히브루’ 양조장이다. 이곳에서는 제철 맥주가 익어가고, 마당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고 싶었어요.”
15년 전,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홍성으로 귀농했다. 환경단체에서 일하며 홍동을 찾을 기회가 많았던 남경숙 대표는 ‘언젠가 이런 마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품어왔다고 한다.
“첫 아이를 임신하면서 본격적으로 귀농을 고민했어요. 아이를 콘크리트 숲이 아닌, 진짜 자연의 품에서 키우고 싶었죠. 여러 지역을 거쳐 결국 ‘홍동’을 선택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아이들이 뛰놀고, 소농들이 서로 돕는 따뜻한 공동체가 있었어요. 우리 부부가 꿈꾸던 삶의 모습 그대로였죠.”
시골(지역)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있지만, 두 사람은 ‘농사’를 선택했다. 주체적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과 가장 잘 맞는 일이 농부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농사에 대한 배움과 지식은 부족했지만,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방식은 명확했다.
“농사 초기에는 선배 농부들에게 많은 걸 배웠어요. 하지만 농사의 상당 부분이 농기계 없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직접 손으로 농사짓자’ 고 마음먹었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뜻을 함께하는 농부들과 소비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기반을 다져갔다. 이후 ‘풀풀농장’을 운영하며 마르쉐 농부시장에 정기적으로 참여했고, 꾸준히 팬층을 쌓아 올렸다.
농사를 이어가던 중, 두 사람은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 노지 농사만으로는 꾸러미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힘들었고, 체력적으로 한계도 느껴졌다. 그러던 중 직접 만든 만든 맥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 음식(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게 많은 농부들의 로망일 거예요. 저희 부부는 7년 정도 집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셨어요. 좋아하는 재료를 활용해 세상에 없는 맥주를 빚는 즐거움이 컸죠. 우리처럼 특별한 맥주를 먹고 싶은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양조장 운영까지 마음먹게 됐습니다.”
양조장 이름 ‘이히브루’는 독일어 ‘나(ich)’와 ‘양조하다(brew)’의 합성어다. ‘나는 양조장을 운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라는 의미를 담았다. 농사에서 양조장까지 모든 부분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본인들의 삶의 방식과 생활기술로 지역에서도 충분히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히브루의 대표 맥주는 ‘비온뒤’, ‘어스름’, ‘별숲’, ‘여름은’, ‘긴긴밤’, ‘풀풀’, ‘라당스’ 등이다. 재료를 살펴보면 쌀, 쑥, 보리수 같은 익숙하지만 시중 맥주에서는 보기 힘든 재료들이 눈에 띈다.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우리 땅의 이야기를 담는 매개체라 생각해요. 계절마다 다른 맥주를 선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농사를 기반으로 한 만큼, 우리가 키우거나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두 사람의 진심을 담아 시작한 ‘이히브루’는 올해 100% 국산 재료를 사용한 ‘풀풀맥주’로 국제 맥주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업계 큰 주목을 받았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오로지 맛으로 승부를 본 대회였기에 그동안 우리가 고민하던 제조방법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수상 이후 마을 주민들과 친구들이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마을잔치처럼 축하해 주었는데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희가 마을의 일원으로서 이히브루가 주변 분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마을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양조장 마당에서 열리는 작은 축제”
흙과 지푸라기로 지어진 양조장 앞마당에서는 종종 팜파티가 열린다. 셰프가 구워내는 피자, 가수들의 공연, 모닥불과 바비큐 등이 맥주와 어우러지는 축제다. 마을 주민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와 이히브루를 함께 즐긴다.
“농장을 운영할 때부터 농산물과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매년 진행되는 이히브루 생일잔치는 주민들과 1년을 돌아보며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리가 됐죠. 행사를 준비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이기도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에 막혀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해 남경숙 대표는 경험을 선택할 용기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생에 실패는 없습니다. 경험이 있을 뿐이죠. 지역살이를 하다가 혹여 도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 경험이 본인의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두려움 대신 경험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한 셈이죠. 특히 ‘홍성’ 에는 어려울 때 의지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청년 창업자 등 다양하게 연결되는 커뮤니티가 있기에 마음속 두려움은 조금 내려놓고 귀농귀촌의 문을 두드려 보면 어떨까요.”
농사에서 시작해 양조장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여정은 단순히 한 잔의 맥주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땅에서 거둔 곡식과 풀잎이 술로 다시 태어나고, 그 술을 나누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됐다. 이히브루의 맥주에는 계절의 바람과 농부의 땀,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마을의 온기가 담겨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더디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빚어내는 용기, 그 태도가 이히브루에 담겨 있다.
홍성의 작은 언덕 위에서 빚어진 이히브루의 맥주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만의 삶을 빚어갈 수 있다는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