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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영 Aug 13. 2018

은행원이 사라진다

 바뀌어 버린 세상이 어느 날 문득 옆에 서 있었다


"은행원이 사라질 것이다."

몇 년 전 그런 얘기를 들었다. 책으로도 봤다.

그런데 바뀌어 버린 세상이 어느 날 문득 옆에 서 있었다.

   

은행은 아마도 그리 머지않은 날, 은행원이 없는 은행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지점은 10년 전 30여 명이 일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12명이 일하고 있고, 이제 또다시 2명 정도는 줄어도 지점 운영에 지장은 없을 듯하다.


"누구를 보내고 누구를 받지 않을 것인가?"

얼마 남지 않은 12월이 되면 아마도 심각하게 고민하겠지!!!


14년 전 대학원 논문 준비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책에선가 은행업무를 향후엔 인터넷 전문회사가 맡게 될 것이라는 글을 보고 '이게 뭔 말인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을 지켜보며,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예상치 못하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물결”속의 한 글이 생각난다. 책 중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수수료 절감이나 가격을 더 싸게 해 주겠다는 명목 아래 기업들은 직원이 하여야 할 일들을 일반인들에게 전가시키고 직원을 줄여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다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일반인들은 알뜰한 소비가 되어 지출은 줄어들겠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들로 일상은 점차 바빠진다. 정작 일을 하여 얻어야 하는 수입들은, 줄어드는 일자리로 인하여 갈수록 적어진다는 것.

현실로 나타난 것들을 예로 들어보면 아직도 재래시장에는 가게 사장님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라고 요구를 하지만, 웬만한 슈퍼마켓에서는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고르러 다니는 일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은행업무는 은행원에게 가지 않고 현금 자동입출금기나 pc 또는 스마트폰으로 대부분의 은행 일을 직접 처리하고 있다.

 

물건 값은 싸졌고 은행에 수수료는 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일자리는 계속 줄어 내가 설자리를 잃었다.  그러다 물건 값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결국 남는 것은 일자리를 잃은 초라한 나 자신뿐. 높은 학력의 일반인들과 넘치는 지식정보로 인하여 이제껏 전문분야로 인식되었던 것들이 점차 사소한 분야로 바뀌고 있음이 원인이다.  

   

은행원만 할 수 있었던 은행 업무는 이제 아무런 직무교육을 받지 않은 다른 직업을 가진 일반인들이 너무도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다. 단순 업무를 위한 은행원은 필요하지 않다.

필자는 1981년도에 처음 은행에 입사했다. 그때 가장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업무 중 하나는 시재 관리였다. 은행 지점에 하루에 사용할 현금을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게 관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업무였고, 자기앞수표와 당좌수표 그리고 가계수표를 발행하고 지급하는 일들이 아주 막중한 업무였다. 지금은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얘기지만, 성차별이 어느 정도 존재하던 당시엔 당좌수표나 어음을 발행하는 업무가 얼마나 막중한 업무라 여겼던지 여직원은 감히 손댈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좌수표와 가계수표는 거의 사라졌고, 자기 앞수표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선 현금도 사라졌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던 종이통장은 은행 내부규정으로 지난해에 폐지되었으며, 단지 혼란을 막기 위해 종이통장 사용을 병행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의 은행은 어떨 것 같은가?

지금 은행에선 그나마 사람의 영역이었던 상담이나 컨설팅 분야조차 AI(인공지능)와 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선도은행들은 일찌감치 준비를 서둘렀으며, 지금은 대부분의 은행에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처음엔 은행 업무를 은행원이 아닌 사람들과 나누어 가졌고, 그로 인하여 어마어마한 은행 인력구조조정이 가능했다. 이제 AI가 본격 도입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은행원들은 또다시 어떤 모습과 어떤 곳으로 내몰릴까?


신입직원들을 본다. 고학력과 능숙한 외국어 실력 등 엄청난 스펙을 가지고 입사를 했다. 부모님들은 요즘 같은 시기에 은행에 취직했다고 동네잔치라도 할 기세다. 그들과 나를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난 참 보잘것없어 보이고 어떨 땐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면 왠지 마음이 아프다. 나는 그동안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참 편하게 잘 살았던 것 같다.         


이 이야기가 은행원에만 한정된 이야기일까?

다른 직업군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제조업도 기계에 자리를 빼앗기고, 햄버거 가게조차도 우리들은 기계 앞에서 주문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외국에 나갈 일이 있어 공항에 들렀다. 비행기표를 내가 직접 발급받았고 짐도 직접 부쳤다. 항공사직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항공사 신입직원처럼 우왕좌왕하며 그 일들을 하고 있었다. 겨우 짐을 부치고 출국 비행기를 타기 위한 번호판 앞에 선 내가 느꼈던 감정은 '나이 더 들면 여행도 못하겠구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은행원이 사라지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은행원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며칠 전 "월요일이 사라졌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니콜렛 케이먼이 아이들에게 저지른 극악한 행동은 어쩌면 영화 속 얘기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은행의 지점에 직원이 늘어나면 수행해야 할 판매지표들이 늘어난다.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올 경우, 그 사람 몫을 동료직원들이 수행해야만 한다. 경영자인 나로서는 직원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자기 몫을 다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이 높아지니 생산성이 받혀주지 않는다면 사람을 줄이고 있는 것과 동일 선상이다.


선택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쩌면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나 자신 또한 누군가에겐 선택의 대상일텐데......


나 자신은 잉여 인간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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