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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Oct 01. 2023

소금으로 이어진 과거와 미래

덴마크 래쏘 섬의 이야기

음식 비즈니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지역 커뮤니티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농어촌의 협동조합이 대표적 예로 현대 사회에 들어 그 모습은 다양하게 진화했다.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은 지역 농민과 장인이 자신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오버-더-라인 Over-the-Rhine 지역은 소규모 독립 양조장들이 생기며 되살아났다. 샌프란시스코의 식품 비즈니스 인큐베이터인 라 코치나 La Cocina는 저렴한 상업용 주방 공간을 지원해 여성과 유색 인종의 음식 비즈니스 창업을 도왔다. 불안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에게 요리와 생활 기술 교육을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뉴올리언스의 카페 레컨사일 Cafe Reconcile은 지금껏 2000 명이 넘는 청소년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런던의 커브 Kerb는 스트리트 푸드 트럭과 상인들을 모아 시내 이곳저곳에 정기 팝업 마켓을 열어 현지 스트리트 푸드 산업의 번영을 이끌고 지역민들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의 창의적 미식 경험을 제공했다. 뉴욕 이스트 할렘의 공공시장 라 마르케타 La Marguetta는 낙후된 시장을 문화와 음식이 융합된 데스티네이션으로 변모시켰고, 런던의 버러 마켓 Borough Market은 쇠퇴했던 식재료 도매 시장을 소매 시장으로 전격 탈바꿈해 다채로운 식문화의 상인들을 유입하며 런던의 주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사례들이 음식의 다양성과 혁신을 아우르는 미래적 가치를 보여주는 가운데 잊혔던 과거와 맞닿아있는 래쏘 Læsø 섬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북해 최북단에 자리한 인구 2000 명 남짓의 작은 섬. 하루 서너 편의 배로 본토와 이어지는 외딴곳. 래쏘 섬의 이름이 덴마크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배경에는 소금이 있다.



래쏘 섬의 위치. 섬의 왼쪽은 덴마크, 오른쪽은 스웨덴이다



이곳을 찾은 2월의 바닷바람엔 한기가 칼처럼 여며져 있었다. 흥미로운 소금 산지를 찾던 중 우연히 접힌 래쏘 섬의 풍경은 일반적인 염전과 거리가 멀었다. 맑은 날 보다 흐린 날이 더 많고 여름을 제외하곤 습도도 높은 기후. 과거 소금으로 번영을 누렸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 역사는 12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의 부흥을 이끈 왕 발데마르 1세 Valdemar the Great는 소년 시절부터 소금 생산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유럽 국가를 여행하다 목격한 자염 생산법, 즉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방식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 햇빛을 이용해 바닷물을 증발시키기 어려운 덴마크의 기후에 적합했기 때문. 왕으로 즉위하고 자신의 측근을 래쏘 섬이 속한 지역의 주교로 임명했고, 주교는 독일 수도승들에게 배운 자염 생산법을 활용해 1158년부터 래쏘 섬에서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로선 값비쌌던 소금을 인근 북유럽 국가들로 수출하며 수백 년간 부를 쌓았지만 탐욕은 그 끝을 불러왔다. 땔감으로 쓸 섬의 나무가 고갈된 것. 결국 17세기 덴마크 왕실의 금지령으로 소금 생산은 멈추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잊혔던 과거가 다시 세상 밖으로 드러난 건 두 명의 고고학자에 의해서다. 독창적이기로 알려진 덴마크의 고고학자 옌스 벨레우 Jens Vellev와 한스 랑발레 Hans Langballe는 1990년 우연히 래쏘 섬의 소금 이야기를 들었고, 섬의 문화를 꿰뚫고 있던 인물 폴 크리스텐센 Paul Christensen과 함께 발굴에 착수했다. 옛 오두막 터와 잔해에서 자취를 따라가던 그들은 소금 생산의 복원을 시도했다. 당시 지역의 실업청소년을 위한 단체를 이끌고 있던 크리스텐센은 청소년들과 연계하여 오두막을 짓고 소금 생산에 뛰어들었다.



래쏘 쏠트의 공방 (이미지 크레티트: Scan Magazine)


과거 래쏘 섬에서 자염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염도가 높은 지하수다. 해안가의 땅이 낮아 겨울 폭풍이 불면 바닷물이 범람하는데, 그 물이 지하로 내려가며 투과하는 모래 지반이 필터 역할을 해 불순물을 거른다. 땅 밑에 고인 물은 조금씩 증발하고 무거운 소금 결정이 침전하며 염도가 14 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인근의 바닷물 염도가 2-3 퍼센트인 데 비하면 엄청난 농축이다. 이 지하수를 끓여 고순도의 소금을 얻었던 것. 과거의 재현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하얗고 순수한 소금 결정 대신 텁텁하고 쓴 소금이 만들어졌다. 크리스텐센은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독일의 소금 박물관을 비롯 프랑스와 영국 등 각지를 누볐다. 결국 소금물을 단번에 끓이지 않고 서서히 졸이는 것이 해답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완성도 높은 자염 생산법에 도달했다. 소금물이 끓는 정도에 따라 온도를 다르게 하고, 소금물을 전부 끓이는 대신 새로운 소금물을 부어 졸이는 방법을 써서 만드는 이들의 소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금들과 어깨를 겨룰 만큼 품질이 좋다. 셰프들에게 사랑받는 영국의 자염인 말돈 Maldon 소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퀄리티라고 생각한다. 바삭하고 혀에서 녹는 식감이 일품이다.  



결정이 되어가는 래쏘 소금 (이미지 크레티트: Scan Magazine)



지역 문화 복원 프로젝트로 출발했던 래쏘 솔트는 소금 생산 공법이 안착되며 커뮤니티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일 년 내내 생산이 이뤄지고 2004년 손익분기점을 넘으며 한시적으로 제공되던 일자리는 영구적 일자리가 됐다. 이들의 소금 생산과정을 보러 연간 9만 명의 방문객이 섬을 찾는다. 여름휴가철엔 절정을 이룬다. 이로 인한 관광업과 접객업의 활성화도 불러왔다.





래쏘 솔트에서 만난 크리스텐센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처럼 잊혔던 소금 생산이 되살아난 배경을 설명하는 그의 눈은 연신 빛났다. "저희 소금은 무척 비쌉니다. 생산 과정을 반영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수익은 전부 지역에 돌아갑니다. 오로지 지역 청소년들과 주민들에게 재화 창출의 기회를 주기 위해 브랜드를 다져왔어요.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겸손한 그의 말에선 한 치의 꾸밈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금 생산에 들어가는 모든 자원은 지역에서 조달한다. 불을 때는 연료는 여전히 섬의 나무다. 다른 연료를 쓰면 20 퍼센트 정도를 절약할 수 있지만 나무를 고집하는 건 현지 일자리를 하나라도 늘리려는 이유에서다. 연료 생산의 전 과정을 생각하면 다른 현대적 연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덜하다. 베어낸 만큼 나무를 심어지니 탄소배출량 상쇄에도 도움이 된다. 소금을 담아 판매하는 천 주머니의 제작과 패키징의 실크스크린 인쇄 모두 지역 주민들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소금 생산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자 존재 이유다.



폴 크리스텐센



래쏘 섬에서 예전 그대로의 방식을 이용해 만드는 소금의 양은 연간 80톤 정도다. 2022년 대한민국의 천일염 생산량 26만 톤, 천일염으로 유명한 전남 신안의 생산량 20만 톤과 비교도 할 수 없게 적다. 덴마크와 스웨덴 왕실에 납품될 만큼 높은 퀄리티로 인정받은 래쏘 솔트를 찾는 이들은 많지만 생산량을 늘릴 계획은 없다. 지역 커뮤니티와 유기적으로 공생하려는 초심을 지키려는 것. 지속 가능한 생산에 매진하는 것 역시 수백 년 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함이다. 지난 한 세기동안 모두가 힘을 합쳐 이뤄낸 녹화 작업의 성과를 수포로 돌리지 않도록 하는 건 그 첫 번째다. 섬 내부의 정부 소유 녹지에서 땔감용 나무를 매입하는 데 많은 비용을 사용하고, 그 돈은 다시 섬의 숲을 위해 쓰인다. 소금물을 얻는 우물 역시 정부 관할의 보호구역에 위치한다. 수익을 위해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자연을 해치지 않는 적정선으로 유지한다. 덴마크와 인근의 스웨덴, 노르웨이로 유통을 한정하는 것 역시 이동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 때문이다. 소규모로 소금을 맛보고 싶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 상점에서는 국제 배송을 지원하고 있다고 크리스텐센은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이 저희 소금을 사용하고 싶다며 연락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고마운 말이지만 모두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도 수요를 따라갈 수 없을뿐더러 다른 곳에도 저희 소금만큼 질 좋은 소금이 많으니까요."



폴이 주었던 래쏘 솔트들. 1 킬로그램 자루는 아껴서 몇 년간 먹었고 작은 자루들은 아직 그대로다. 녹색은 채소, 파랑색은 해산물, 붉은색은 육류에 어울리는 향신료를 가미한 제품.



지역 문화유산의 외형적 재현, 무늬만 닮은 '옛날 방식 소금 만들기 체험'으로 그칠 수 있었던 프로젝트를 복원 그 너머로 가져간 래쏘 섬의 일화가 가능했던 건 남다른 열정 덕분이다. 잠들어 있던 역사의 발견과 고증은 고고학의 성과다. 하지만 문서 하나 남아있지 않던 수백 년 전 생산방식을 되살린 건 보이지 않는 자취를 집요하게 파헤친 크리스텐센과 동료들의 노력이었다. 많은 식품 비즈니스들이 더 낮은 가격, 더 높은 이윤에 매몰되어 중요한 가치들을 저버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음식의 본질과도 점점 멀어진다. 환경적 폐해를 남기고 사양길로 접어든 식재료 생산의 부활과 문제점 개선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지역사회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아낸 래쏘 섬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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